먹방, 맛집 열풍에서 요즘은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된다. ‘맛있겠다’라거나 ‘나도 따라 해봐야지’가 아닌 음식을 둘러싼 ‘일상’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모든 음식재료를 자급자족해야 하는 산골마을로 들어간 연예인이 삼시 세 끼를 해먹는 예능 프로그램이 TV에 등장했고, 직접 키운 재료로 소박한 식탁을 차려내는 이효리의 일상은 매번 화제다. 급부상하고 있는 사진 공유 SNS 인스타그램도 고급 레스토랑이나 맛집 ‘인증’보다는 집에서 음식을 직접 만들거나 친구들과 함께 먹는 감성 사진이 즐비하다. 한때 각종 식당을 헤매며 맛집 정보에 ‘인증 샷’을 날리던 사람들이 이제는 집에서 직접 만든 음식을 찍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대체 2015년 우리에겐 무슨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걸까?
여기엔 ‘킨포크’의 인기가 한몫했다. 킨포크는 ‘친족’이라는 의미로 2011년 미국 포틀랜드에 사는 한 남자의 블로그에서 시작해 지금은 세계 각지 사람들의 부엌과 집, 손수 만들어 먹는 식사 등을 다루는 ‘계간지’로 발전했다. 음식과의 완벽한 교감, 집 밥 맛있게 먹는 법, 야생화로 꽃꽂이하는 법, 건강한 식탁 차리기, 겨울의 부엌, 소박하지만 멋있는 홈 파티 등 생활에 대한 에세이와 인터뷰, 개인의 이야기를 감성적으로 다룬다. 좀 서툴더라도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 한 끼, 집에서 친구들과 음식을 나눠 먹는 삶, 속도보다는 ‘방향’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런 느리고 느긋한 삶을 동경하는 이른바 ‘킨포크족’까지 탄생했다.
소박했던 그 시작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좀 다른 시각도 있다. ‘돈 좀 있어 집 꾸미고 사는 사람들의 유행’, ‘그럴싸하게 세팅된 식탁만 있고 설거지하는 뒷모습은 없는 허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킨포크는 아름답지만 현실은 킨포크란 잡지를 펼칠 때처럼 늘 아름답지만은 않다. 전세금은 매매가의 턱밑까지 치솟고, 그나마도 월세로 바뀌는 추세. 느리고 느긋한 삶은 비싸고 킨포크의 삶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일 뿐이다. 도심에서 미간을 찌푸리고 잰걸음으로 걸어다니는 사람들에게는 제때 모여 앉아 함께 밥 먹을 시간조차 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직접 내 밥을 지어 상을 차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강조하는 ‘킨포크스러운 삶’은 역설적이게도 ‘사치’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많은 사람이 달라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바쁘게 일하는 삶을 동경하고, 밥을 지어 먹는 것과 같은 소소하고 평범한 일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던 가치관이 좋은 차, 비싼 옷보다는 내 몸을 위하고, 가족을 아끼며, 친구와 더불어 즐겁게 식사하는 것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본래 평범하고 흔했던 가치가 이제는 손에 쥐기조차 힘든 특별한 가치임을 많은 이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먼 미래에 살 수 있을지도 모를 커다란 집, 비싼 물건도 좋지만 지금 내가 불행하다면 다 무슨 소용일까.
킨포크의 존재를 알든 모르든 현대를 사는 사람 대부분은 킨포크처럼 여유로운, 느긋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누구나 킨포크처럼 살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제안한다. 일단 조금만 ‘나’를 위한 시간을 내어 친구를 초대해 보는 거다. 거창할 필요는 없다. 간소한 ‘한 그릇 음식’에 ‘천 원짜리 그릇’도 괜찮다. ‘같이’ 밥 먹고, ‘정’을 나누는 것만큼 좋은 게 어디 있을까? 그 한두 시간으로 우리 삶이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