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핑 파문과 초저금리의 함정

[스페셜리스트 | 금융] 유병연 한국경제신문 차장

스포츠계가 ‘도핑(dopping)’ 파문으로 떠들썩하다. 연초부터 ‘마린 보이’ 박태환의 도핑 논란이 국내 스포츠계를 흔들었다. 해외에선 케냐의 ‘마라톤 여제’ 리타 젭투의 금지 약물 투입 소식에 마라톤계가 발칵 뒤집혔다.


한계에 도전하며 기록을 다투는 스포츠 선수들에게 약물은 치명적 유혹이다.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한 훈련이 고된 만큼 신체능력을 단기간에 강화시켜 경기력을 높여주는 약물의 유혹은 달콤하다. 하지만 약물은 신체기관 손상, 정신질환, 면역약화 등의 부작용을 수반해 선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 


경기를 살리기 위한 저금리 처방도 약물과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다. 금리 인하야말로 가장 광범위하고 강력한 경기 부양 수단이다. 당장은 달콤하고 단기간에 ‘반짝 효과’를 준다. 


금리는 전통적인 금리경로를 통해 실물경제에 파급효과를 갖는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콜금리 등 단기시장금리가 즉각 떨어지고, 은행 예금·대출 금리 등 장기시장금리도 하락 압력을 받는다. 이런 금리 움직임은 소비 투자 등 총수요에 영향을 미친다. 금리가 내려가면 투자비용이 낮아지고, 그만큼 수익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기업은 투자를 늘린다. 개인도 금융비용 부담이 줄기 때문에 대출을 늘려 소비에 나서게 된다.


기준금리 조정은 소위 ‘부(富)의 효과(wealth effect)’를 통해서도 실물경제에 영향을 준다. 금리 인하는 통상 주가를 올리고, 부동산 가격 상승을 야기한다.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가격이 오르면 그만큼 부가 늘어나 소비를 늘릴 수 있는 여력이 커진다. 가계 자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개인들은 이전보다 부유해진 것으로 생각하며 소비 지출을 늘리게 된다.


금리는 환율에도 파장을 미친다. 기준금리를 낮추면 국내 원화표시 자산의 수익률이 낮아져 해외자본이 유출되고, 원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원화가치 하락은 대체로 한국 기업의 수출가격 경쟁력을 높인다. 


저금리는 이처럼 달콤한 약효를 갖고 있지만 약물과 마찬가지로 중독이 되면 경제를 망가뜨릴 수 있다. 저금리는 필연적으로 경제에 ‘거품’을 키운다. 당장의 싼 금리에 현혹돼 개인과 기업이 빌려 쓴 돈은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 주체들의 숨통을 죄어간다.


2008년 세계 경제를 암흑으로 몰아넣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2000년대 초반 초저금리 정책에서 잉태됐다. 당시 IT 버블 붕괴와 대 아프간·이라크 전쟁 등으로 경기가 악화되자 미국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초저금리 정책을 폈고, 거품이 가속화됐다. 2004년 미국이 저금리 정책을 종료하면서 거품은 꺼지기 시작했고, 서브프라임으로 상징되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몰고 왔다. 때문에 금리 인하는 근본적인 처방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사상 유래 없는 초저금리 시대를 맞고 있는 가운데 또다시 금리 인하 논쟁이 한창이다. 금리 인하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기업 구조조정 등 한국 경제의 체질 개선이 선행되거나, 최소한 동행돼야 한다. 금융비용은 투자나 소비를 결정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기업 투자는 오히려 미래의 사업전망이나 경기 상황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개인들에게도 소득이나 신용 전망이 더 중요하다. 고용이 불안한 상태에선 금리가 낮다고 돈을 빌려 집을 살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아무리 돈을 풀어도 돈이 돌지 않아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에 빠지기 십상이다. 경제체질 개선 없는 금리 인하는 버블을 잉태한 ‘좀비 경제’를 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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