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靑春). 한때 그것은 낭만의 언어였다. 젊음은 특권이었고, 시대는 청년의 저항과 도전을 넉넉히 받아 주었다. 그런데 요즘의 청춘은 우울의 표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고 기록을 경신 중인 청년실업률과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청년자살률 때문만은 아니다. 88만원 세대의 우울은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를 넘어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오포세대’로 확장되고 있다. 기성세대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다독였지만, 돌아온 것은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반문과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냐’는 조소였다.
지금의 청년들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체험한 산업화 세대, 민주화의 과실을 경험한 386세대와도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 IMF 사태 이후 학창시절을 보내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해 대학에 들어가거나 취업전선에 뛰어든 이들에게 강요된 것은 살벌한 경쟁이었고, 남은 것은 파편화된 개인과 피폐해진 삶이었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은 요즘의 젊은이들을 가리켜 “패기와 열정이 없다”거나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모르겠다”며 혀를 끌끌 찬다. 압축성장의 폐단이 세대 간의 공감 결여로 이어진 결과다.
그래서 청년들이 직접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기성세대를 향한 ‘투정’이 아니라 시민이자 주체로서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청년유니온, 민달팽이 유니온 같은 청년 단체들은 당장 경제 구조를 바꾸는 대신 주휴수당 지급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찾기나 주거의 질을 개선하고 향상시키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오세연 청년유니온 사무처장과 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이사장은 “청년 세대가 ‘작은 승리’의 경험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은 때론 왜곡되고, 정책 입안 단계에서 누락되거나 무시되기도 한다. 언론은 단편적인 현상만 쫓는 우를 범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들은 문제제기를 멈출 수 없다. “공동의 경험을 쌓아나가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언론, 본질적 접근 없이 자극적 사례만 나열해
자발적 선택 강조하며 허무주의 조장 ‘무책임’
청년 권리침해 얘기하면 “도와달라”로 받아들여
어떤 요구, 어떤 활동 하는지 다양하고 깊게 접근해줬으면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았다. 부산 출신에, 공대를 나왔다는 점도 닮았다. 게다가 청년유니온과 민달팽이 유니온은 ‘청년허브’라는 공간에 이웃해 있다.
청년유니온, 민달팽이, 알바연대알바노조…. 최근 최저임금 문제나 주거 문제와 관련해 언론 지상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체들이다. 80~90년대 청년문화의 상징은 학생운동이었고 전대협, 한총련을 위시한 학생운동 조직은 이념적 색채가 짙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청년들이 주도하는 사회운동 단체들은 이념적 성격은 물론 단순한 세대 구분까지 넘어서고 있다. 이들은 대학 등록금 문제에서 시작해 열악한 주거 환경 개선, 비정규직과 최저임금 문제 등 자신의 삶과 직결된 문제들을 해결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세연 청년유니온 사무처장과 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이사장은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들이다. 상근활동가 2년차인 오 사무처장과 그를 ‘누나’라고 부르는 권 이사장은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과 TV 뉴스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대면 얼음처럼 변하며 쑥스러운 웃음을 흘리곤 했다. ‘불금(불타는 금요일)’에도 회의와 집회 참여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두 사람을 지난 24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카페에서 어렵게 한 자리에 앉혀 놓고 얘기를 들었다.
기성세대, 청년 다그칠 ‘자격’ 있나
청년(靑年). 사전적 의미로는 ‘신체적·정신적으로 한창 성장하거나 무르익은 시기에 있는 사람’을 뜻한다. 각종 법령이나 통계자료에선 만19세에서 34세, 혹은 15세 이상 29세 이하를 청년의 범위로 정하고 있다. 청년유니온 조합원 가입 자격은 15~39세로 그보다 범주가 넓다. 인구수로만 따져도 상당수이고 투표권도 가지고 있지만, 청년 문제는 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그래서 따지면 기성세대들은 “너희가 표를 결집시키지 못해서”라고 나무란다.
현상적으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역대 선거에서 20대 투표율은 늘 최저였다. 2012년 대선 때는 19세 투표율보다 낮았다. 이는 50대 이상의 높은 투표율과 대비되어 야권 패배의 책임을 일부 20대 탓으로 돌리는 결과를 만들기도 했다. ‘어른’들은 “요즘 젊은 애들은 정치에 너무 무관심하다”며 혀를 끌끌 찬다. 과연 그럴까. 권지웅 이사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정치적 무력감이 큰 탓이죠. 내가 해서 될까? 이런 거죠. 젊은 세대들은 집단적 행위를 통해 뭔가를 얻은 경험이 크지 않아요. 정치적 행위를 통한 성공을 경험해본 적 없는 정체 상태의 시민에게 왜 투표하지 않느냐는 다그침이 통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투표에 관심이 없거나 할 수 없는 사람의 조건을 바꿔주는 방식으로 투표하게 해주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지요. ‘투표하라’고 다그칠 게 아니라 ‘왜 투표하지 못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그는 오히려 기성세대들이 다그칠 ‘자격’이 있는지를 되물었다. “IMF 이후 우리가 받은 메시지는 대체로 ‘몰려다니지 말고 혼자 공부나 해라’ 이거였어요. ‘공부해서 더 큰 사람이 되어 베풀면 된다’며 집단을 부정하고 뛰어난 개인이 되라고 명령만 했죠. 집단을 부정한다는 건 정치를 부정하는 것과 맞닿아 있어요. 그것이 우리 세대가 가지고 있는 경험이고 우리 안에 깊숙이 있는 이데올로기 같은 거예요. 우리가 자발적으로 형성한 것만은 아니라는 거죠.”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오세연 사무처장도 “386세대가 사회 변화에 일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음 세대를 비난할 만큼 물려준 것이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80년대와 경제, 문화적 조건이 완전히 달라진 만큼 ‘소중한 한 표’ 행사를 넘어 다음 단계의 민주주의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20대 때 투표 안 했던 친구들이 30대가 넘으니까 열심히 하더라고요. 투표를 꼭 해야 하는 접촉점들이 생긴 거죠. 직장 다녀 보니까, 애를 낳아 보니까, 자기 문제화가 되는 겁니다. 정책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이 와 닿아야 투표 동기 부여도 되는 거예요. 20대 때는 공동의 문제를 같이 해결하거나 아젠다로 형성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차단돼 있죠. 우리 삶을 구체적으로 변화시킬만한 정치와 정책의 힘이 작동하는지 사회가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해결 나서며 ‘힘의 게임’ 실감
두 사람이 사회 운동에 뛰어든 계기도 ‘자기 문제’에서 비롯됐다. 오 사무처장의 삶은 ‘장그래’와 비슷했다. 같이 공대를 졸업한 친구들은 대부분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그는 한 번도 정규직이었던 적이 없었다. 2011년부터 만 2년은 방송사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포털과 SNS, 제보 관리를 담당했다. 둘러보니 비정규직은 많았다. 청소노동자부터 부서별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 당연히 정규직이겠거니 했던 인터넷 뉴스 진행 아나운서까지 모두 파견직이거나 계약직, 즉 비정규직이었다. 2012년 청년유니온 조합원으로 가입한 그는 지난해 상근 활동가가 되면서 비로소 정규직이 됐다. 그리고 또래의 수많은 ‘장그래’들을 만났다.
부산 출신인 권 이사장은 대학 2학년 때 경제적으로 독립하면서 주거 문제를 실감했다. 월 40~50만원의 주거비를 벌기 위해선 한 달에 100시간을 일해야 했다. 그는 주거권 또한 교육권의 일환이라고 생각했다. “등록금만 낮출 것이 아니라 학생의 주거권을 보장해 모두가 평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감대는 빠르게 확산됐다. 학내 작은 동아리 수준에 불과하던 조직은 대학생주거권네트워크라는 연대체를 거쳐 청년 일반의 문제로 확대되면서 2014년 3월 민달팽이 유니온 창립으로 이어졌다. 약 400명의 회원을 둔 민달팽이는 셰어하우스라고도 불리는 협동조합 주택을 2호점까지 공급하며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청년유니온은 출범 5년 만에 조합원 1000여명, 후원회원 1500명을 둔 조직으로 제법 탄탄한 모양새를 갖췄다. 피자배달 30분제 폐지, 주휴수당 지급 등 청년유니온이 적극 문제를 제기해 변화를 이끌어낸 값진 승리도 있었다. 올 초 패션업계 등을 떠들썩하게 했던 ‘열정페이’ 논란 이후엔 근로감독관 파견 등의 작은 성과를 내기도 했다. 청년이 당사자로서 직접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사회가 반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했다. 단순히 ‘주장’을 넘어서 문제 해결의 ‘주체’로 뛰어들면서 그들은 ‘힘의 불균형’을 실감하고 있다. “시의원, 국회의원을 만날 때 ‘너희가 힘들구나’ 여기까진 동의가 됐는데 실제로 예산을 조정해 달라고 하면 ‘그건 어려운데?’ 이렇게 되는 겁니다. 치졸하지만 힘의 게임이 시작된 거죠. 여기까지 들어오는 건 성공했는데, 막상 테이블을 움직이려다 보니 더 큰 게 필요해진 겁니다.”(권지웅)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여하게 된 청년유니온이 느끼는 무게감은 더 크다. “열정페이 문제만 해도 패션업계와 쌍방 협약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나 국회 도움, 산업을 바꾸는 문제 등이 다 연관돼 있거든요. 실제 정책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선 현장성과 당사자성뿐 아니라 전문성까지 갖춰야 합니다. 문제제기는 하지만 해결은 어렵다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오세연)
청년문제 다양하게 다뤄져 의미 있어
청년 문제는 언론 공통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청년 관련 담론이 많아지고, 젊은 독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신문 지면에 공을 들이기도 한다. 오 사무처장은 “전에는 청년실업률 통계 정도만 나왔다면, 최근에는 청년 문제가 다양하고 구체적으로 다뤄지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극적인 사례와 기사가 중심이고, 문제가 해결되어 가는 과정이나 전망 등 본질적인 얘기는 많이 다뤄지지 않는 것 같다”는 따끔한 질책이 이어졌다.
권 이사장은 “언론이 청년을 다루는 방식은 청년을 객체로 놓거나 피해자화 하는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데서도 사람이 사는구나’ 라든지 청년들이 힘들고 불쌍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사례를 찾아내려고 하는 거죠. 언론이 필요로 하는 건 고시원에 사는 친구 인터뷰 이상을 넘어가지 못해요. 청년이 ‘주체’로서 주장하는 바가 있는데, 그건 언론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어요. 청년인 시민이 자기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거지, 제발 도와달라는 얘기만 하는 게 아니거든요.”
언론은 청년 세대를 다양한 식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그 중 조선일보가 이름 붙인 ‘달관세대’는 크게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무책임하고 악의적이라고 생각해요. 청년을 위로하는 것도, 문제의 해법을 찾는 것도 아니잖아요. 지금 처지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자족적인 철학을 새로운 해결 방식으로 제시하는 보도를 보면서 기분이 상했어요.”(오세연)
“‘달관’은 결과적 상태인 거죠. 사회적 조건 등을 바꾸는 데 전혀 영향을 못 미치겠다고 판단한 개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취한 몇 가지 조치들이 이를테면 사회 구조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자, 긍정해보자 이런 거예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을 마치 원인인양 놓고 ‘이 사회가 별로 문제가 아닌 거다, 이렇게 잘 살고 있지 않냐’고 오역한 거죠. 실제 청년들이 삶에 만족하고 있고 크게 불편하지 않아서 그렇게 산다는데 동의하지 않아요. 오히려 어떤 무력감의 마지막 상태라고 생각합니다.”(권지웅)
오 사무처장은 언론이 정치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허무주의를 조장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물론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원하는 경우도 있고, 프리랜서처럼 살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건 자신의 선택에 맡겨야 하는 문제지 이걸 두고 청년들이 비정규직을 원한다고 할 순 없는 거죠. 직장에 더 다닐 수 있는데 그만 두는 것은 자율적인 선택의 문제지만, 2년 계약이 종료돼서 그만 두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죠. 사회 분위기와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자발적인 선택의 영역만 강조해선 안 됩니다.”
청년을 대상화, 도구화 하는 것은 시민으로서의 청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은 ‘공감’의 언어를 만날 때 뜻밖의 반가움을 느끼곤 한다. 권 이사장은 자신을 인터뷰했던 한 경제지 기자를 떠올렸다. “30대 기자 분이셨는데, 인터뷰를 마치고 바로 민달팽이 유니온에 가입하고 출자금까지 냈어요. 다른 기자 분들도 관례상 가입을 하기도 하는데, 그 분은 진짜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감동을 받은 거예요. 그렇게 공감하며 대화가 될 때 기분이 좋죠. 시민단체로서 어떤 기준을 만들려고 하고 언론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볼 때 위기의식이 통하고 세상이 이래서 되겠냐, 잘 해보자 하고 뜻이 맞으면 뿌듯합니다.”
오 사무처장은 “예전에 비해 청년 문제에 대해 의미 있는 기사를 써주는 것이 고맙다”면서도 “힘든 현실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를 넘어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청년들이 충분히 힘들다는 건 많이 알려졌잖아요. 이제 주체로서 청년들이 어떤 요구를 하고 있고,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다양하고 깊게 접근해줬으면 합니다. 청년 관련 특집이 많아지긴 했는데 관성적인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청년 실업률만 보더라도 일자리가 늘어서 끝나는 게 아니라 경제구조와 경제 생태계까지 연결된 문제잖아요. 주거 역시 마찬가지죠. 청년들이 직접 주거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 접근해보는 기획도 가능할 텐데 우리의 요구나 인터뷰가 보도되는 걸 보면 아쉬운 측면이 있어요. 일자리 문제를 넘어 산업의 문제까지 깊이 있게 다뤄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