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샤 검사장을 찾아온 그들

[스페셜리스트 | 법조] 박민제 중앙일보 기자

사무실 문을 열자 샴페인과 꽃을 비롯한 온갖 선물들이 그를 맞이합니다. 알리샤 플로릭 주 검사장. 6년 전 순진무구한 전업주부였던 그에게 주 검사장은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든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로펌 동료들의 환호도 잠시, 불편한 손님들이 줄줄이 찾아옵니다. 갑부 레드메인은 검찰청의 차장검사로 자신이 선호하는 변호사를 임명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마약왕’ 비숍은 진행 중인 자신에 대한 수사를 멈춰달라 요구하죠. 하루 전만해도 그들은 모두 알리샤의 당선을 위해 정치자금을 대주던 ‘은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채권자’로 돌변한 그들의 요청에 대한 그의 대답은 ‘NO’였습니다.


“권력을 가진 것 같겠지만 그게 아니란 걸 곧 알게 될 거요.” 그들은 자신의 요구를 거절한 알리샤에게 서늘한 경고를 남긴 채 떠납니다. 선거참모인 일라이는 안 된다고 하지 말고 검토해보겠다고 말하라고 충고합니다. 선거운동기간 거액의 정치후원금을 냈던 그들을 적으로 돌려세웠다간 미래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결국 알리샤는 그들을 다시 불러 “모든 선택지는 열려 있으며 제안을 앞으로 검토해보겠다”는 내키지 않는 답을 하게 됩니다.
2009년부터 방영된 미국 인기 드라마 ‘굿 와이프(The Good Wife)’가 최근에 다룬 내용입니다. 막대한 재산을 가진 이들이 선거자금을 대주고 이를 바탕으로 선거를 치른 선출직에게 향후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현실을 잘 풍자한 대목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많이 깨끗해졌다고는 하나 큰 선거가 끝나면 어김없이 불법 선거자금 논란이 반복되는 걸 보면 고질적 병폐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성완종 전 회장이 지난 9일 자살하면서 남긴 메모 한 장과 육성인터뷰 내용이 불러일으킨 파장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검찰의 기업 횡령 수사에서 시작됐지만 성 전 회장의 자살이라는 변곡점을 거쳐 여러 방면으로 확산돼 이제는 이명박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과거 성완종 회장 특별사면 관련 책임 공방으로까지 번졌습니다. 누군가가 사법처리돼 일단락이 되지 않는 한 의혹과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을 기세입니다. 


본질은 선거를 치르면서 성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적 정치자금을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받았는지 여부입니다. 언론 보도 상으로는 돈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강력한 정황들이 상당수 불거졌고 이로 인해 핵심 당사자 중 한명인 이완구 총리는 사임까지 했습니다. 외견 상으로는 당장 대규모의 사법처리가 가능할 듯 보이지만 법조계 안팎의 분위기는 수사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지를 두고 반신반의하는 쪽이 오히려 더 많습니다. 


뇌물·정치자금 사건에서는 통상 공여자의 진술이 핵심증거로 기능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뇌물공여자인 성 전 회장이 사망한 상태라 핵심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돈을 받는 걸 본 제3자나 받은 돈을 실제 사용한 측근들의 진술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검찰 안팎에서 공여자가 진술해도 무죄가 나오기 십상인데 진술만 남기고 사망한 사건을 어떻게 완벽하게 입증하겠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 사건의 최종 결말이 사법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올진 잘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나오든 많은 이들을 사법처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형평성 논란이 불거지고 피해를 입었다고 보는 쪽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규탄하는 등 후폭풍도 예정된 수순이겠죠. 그렇다면 기왕에 하는 수사가 진영을 가리지 않고 정치권의 ‘민낯’을 철저하게 드러내 구조적 대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 다시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정도의 사회적 비용은 감안해야 하는 것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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