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품격! 위로를 팝니다?

[스페셜리스트 | 문화] 심연희 KBS 기자

“자, 이제부터 미지의 세계로의 모험을 함께 시작해보겠습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놀이공원에서 들을 법한 얘기가 ‘마크 로스코전’의 오디오 가이드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사실 이 말은 연극 ‘레드’의 대사다. 하지만 맥락 없는 인용 탓에 느닷없게 들리고 말았다. 전시장 벽에는 작가의 어록과 작품 설명이 빼곡히 들어찼다. 눈을 감고 명상하라, 자리에 앉아 명상하라고 권하기도 한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배우 유지태가 녹음한 오디오 가이드를 들려주며 “이 그림이 바로 위로를 주는 치유의 그림”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한 시간 이상 지시를 충실히 따랐는데 오디오 가이드가 마지막에 다시 속삭인다. “위로 받으셨나요?” 출구에는 위로 받았다는 연예인의 방명록이 한 가득이다. ‘최고를 경험하는 가치와 자부심, VIP존’이란 입간판, 특별 의전 등 최고의 품격을 준비했다는 전시회 VIP 패키지 상품 광고는 마지막 결정타를 날린다. 


마크 로스코는 누구인가? 잭슨 폴록과 함께 추상표현주의라는 새로운 미술 사조를 개척한 선구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형상의 재현이라는 관습을 뛰어넘어 이전과는 전혀 다른 회화를 만들어냈다. 거대한 캔버스 위에 사각 형태의 색 덩어리들이 적절하게 안배돼 먼저 자리를 잡고, 그 위를 얇은 색면층이 차례차례 덮이면서 깊이감을 주는 방식이다. 경계가 모호한 색면들은 어떤 형태를 드러내는 것 같으면서도 사라져버리는 것 같고, 또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 같으면서도 치열하게 싸우는 것 같다. 누군가 로스코의 그림을 보면서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로스코가 말한 ‘교감’의 순간이다. 


“그림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작품 속에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대중에게 설명해주는 어떤 글이 나올까봐 걱정하고 있다. 이는 얼른 보면 친절하고 유용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고와 상상력을 마비시키고 예술가를 너무 일찍 가두어 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무언가를 꼭 믿어야 한다면 나는 관습적인 이해로부터 자유로운 감상자의 섬세한 영혼을 믿는다.” 로스코가 진정 원했던 감동은 바로 그의 이 말에 함축돼 있다. 


“관람자와 내 작품 사이에는 아무것도 놓여서는 안 된다. 작품에 어떠한 설명을 달아서도 안 된다. 그것이야 말로 관객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이다. 내 작품 앞에서 해야 할 일은 침묵이다.” 오로지 작품으로만 관객을 만나고 싶어 제목도 달지 않았으며 자신의 작품이 어디에 어떻게 걸리는가를 작품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했던 예술가가 바로 로스코다. 뉴욕의 값비싼 레스토랑이 아닌 런던 테이트 갤러리를 선택했던 것도, 미술관에 자신의 작품을 내어주면서 전시실의 조명, 그림이 벽에 걸리는 위치까지 세세하게 지시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마크 로스코전’은 인상파에 치우쳤던 전시 레퍼토리의 지평을 넓혔다.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화가’라는 문구를 닳도록 이용한 것도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한 노력이라고 긍정적으로 이해해보려 했다. 하지만 지나쳤다. 전시회의 ‘기획’이 작가의 본래 의도를 왜곡하고, 작품을 보며 느끼는 ‘순수한 감동’을 방해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정답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를, 관습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유롭게 사고하기를 원해 작품에 제목조차 달지 않았던 마크 로스코의 뜻은 한국에서 ‘치유와 위로, 잡스’ 같은 흥행 코드와 ‘최고의 품격’이라는 낯 뜨거운 마케팅에 묻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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