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가 한류에 푹 빠졌다. 우리 정부의 외교현장에 한류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지난 2일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현지에서 케이팝(K-Pop) 콘서트에 참석해 현지인들과 어울렸다. 이날 콘서트에는 샤이니, f(x), 방탄소년단, 블락비, 아이오아이 등 한류 아이돌그룹이 대거 참여해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다. 박 대통령이 열광하는 1만3500명의 관객들 틈에서 박수를 치는 모습이 국내 언론에 소개됐다.
앞서 박 대통령은 아프리카 순방중이던 지난달 29일에도 우간다 세리나호텔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케이컬처 인 우간다(K-Culture in Uganda)’에 얼굴을 내비쳤다.
확실히 군사나 경제력을 앞세운 하드 외교에 비해 문화를 앞세운 소프트 외교는 여러 면에서 저항감이 적다. 앞서 소개한 일련의 장면들만 놓고 보면 우리 정부가 한류라고 하는 문화상품을 외교 영역에서 잘 활용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한류 외교가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걱정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 민간 차원의 자연스런 교류가 아니라 정부가 앞장서 정책적으로 한류 확산을 주도하는 듯한 모습은 역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 뿐만이 아니다. ‘한류의 확산=민족의 우월성’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기라도 하는 듯 국내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 것도 무척 위험하다. 상대국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한류는 언제든 혐한으로 바뀔 수 있다.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일본 문화 개방이 이뤄지면서 한·일 문화교류가 활성화됐다. 일본 문화상품이 한국에 들어오면서 자연스레 한국의 드라마와 음악도 일본에 흘러들어갔고, 이것이 초기 한류붐을 만들어냈다. 특히 겨울연가, 가을동화 등의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일본의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들이 한국 드라마를 앞다퉈 방송했고, 한국의 아이돌그룹들의 공연장에는 수많은 일본팬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한국 정부가 마치 스포츠를 육성하듯 문화를 집중 육성해 해외에 퍼뜨리려는 듯한 정책을 쓰는 것에 대해 일본 내에서 반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실제로 2012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등을 계기로 한·일 관계가 악화를 겪자 일본에서 한류는 직격탄을 맞았다. 한류 공연도 시들해지고 한국 드라마의 방영도 크게 줄었다. 일본 전국 각지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도쿄 신주쿠의 오오쿠보 한인타운으로 물려들던 관광객의 발길도 뚝 끊겼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자극 받은 듯 일류(日流)를 세계로 확산하기위한 ‘쿨재팬 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일본과 달리 중국에선 여전히 한류 열풍이 불고 있지만 이 또한 안심할 수 없다. 중국 정부는 한류와 한국정부를 연관지어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의 한반도 배치 등으로 한·중 관계가 악화될 경우 곧바로 얼어붙을 수 있다.
정부가 한류 초장기에 해외 진출을 돕거나 해외 진출 인프라를 구축해주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정부가 외교 채널을 통해 한류 마케팅을 하는 듯한 모습은 이제 줄여야 한다. 그보다는 민간차원의 교류 활성화를 통해 한류가 자연스럽게 퍼지도록 해야 한다. 이미 상당한 규모로 성장한 한류 산업이 산업의 논리에 따라 발전하도록 맡겨야 한다. 한류가 정치와 민족주의를 벗어나야 세계로 더 뻗어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