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산업혁명 직후 유럽의 많은 사용자들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열악한 환경 속에 노동자를 몰아넣고 하루 15시간에 달하는 노동을 강요했다.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은 그렇게 잉태됐고 1802년 영국 의회를 필두로 각국이 ‘공장법(factory law)’을 제정하는 기폭제가 됐다.
5월1일이 국제 노동절(May Day)로 지정된 데에도 노동시간 단축 투쟁이 관련돼 있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1889년 7월 파리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설립대회에서 참가자들은 1890년 5월1일을 ‘노동자 단결의 날’로 정하고 하루 8시간 노동 쟁취를 위한 국제 시위를 결의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시간을 줄여온 실제 주역은 노동 투쟁이 아닌 ‘불황’이었다.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 복지의 질적 향상보다 실업 해소 등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진전돼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에 의해 추진된 ‘일자리 나누기 운동’은 1929년 들이닥친 대공황에 대한 초등 대응에서 나왔다. 법안 제안자인 마르틴 오브리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의 이름을 딴 프랑스의 유명한 ‘오브리법’(주 35시간 노동법) 역시 치솟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더불어민주당 등 원내 교섭단체 4당은 최근 주당 법정근로시간을 현행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청년실업 문제를 푸는 유력한 방안으로 나온 카드로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자는 취지다. 기본적으로 대량 청년실업과 초과노동 사이의 모순을 시정한다는 점에서 근로시간 단축은 명분을 가진다. 더욱이 한국의 근로시간은 OECD 국가 중 가장 길다.
문제는 근로시간 단축이 실제 고용 증대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고용을 거의 변화시키지 않거나 오히려 감소시킨다는 연구 사례도 많다. ‘하루 6시간 근무 실험’으로 잘 알려진 스웨덴에서조차 6시간 근로가 별 효과가 없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스웨덴의 지자체 근로자 노동조합(Kommunal)이 주당 30시간 근로를 관철하기보다 주 40시간 노동 안에서 근로조건 개선이나 임금상승 문제에 집중한다는 내부 방침을 확립한 이유다.
단축 효과가 국가별로 달라진다는 점도 주목해 볼 대목이다. 초과근로시간 비중이 높은 일본이나 영국은 근로시간 감소가 고용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독일이나 미국에선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실질적인 고용 증대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무엇보다 단축 효과가 신규 고용이 아닌 기존 근로자의 초과근로시간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 기업의 노동비용만 높일 뿐 고용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일각에선 “청년실업의 유일한 해법은 근로시간의 경직적인 단축 뿐”이란 주장도 나온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부작용이 크게 나타난다는 게 중론이다. 중소기업은 평균근로시간에 대한 초과근로시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고 정상근로시간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중소기업들이 근로시간 단축에 더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근로시간 단축이 청년실업을 푸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세심한 사전준비나 보완장치 없이 법안 처리만 서두를 경우 자칫 포퓰리즘 정책의 실패 사례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