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비빔밥, 한옥마을, 국제영화제. 많은 이들이 전라북도를 찾는 이유다. 관광객들과 달리 전북 기자들의 시선에서 보면 지난 30년 지역언론 보도를 관통하는 이슈는 ‘새만금’이다.
새만금은 전북 서해안에 33.9km에 달하는 세계 최장 방조제를 건설해 갯벌과 바다를 육지로 만드는 간척 사업이다. 새만금방조제는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1년 공사를 시작해 19년 만인 2010년 완공됐다. 지금도 새만금 일대 개발 사업이 한창이다.
전북 기자들은 새만금방조제가 첫삽을 뜬 순간부터 환경문제로 두 번 중단됐던 공사가 마무리되기까지, 또 이후 개발 과정을 고스란히 기록하고 있다. 1도1사 전북일보를 제외하고 1987년 민주화 이후 지역 일간지 전북도민일보(1988년), 전라일보(1994년) 등이 창간됐으니 이곳 기자들은 새만금 30년 역사와 줄곧 함께해온 셈이다.
박찬익 전주MBC 기자는 “전북 언론의 시작과 끝은 새만금”이라며 “15년 전 입사할 때부터 지금까지 새만금을 취재하고 있다. 관련 보도를 몇 번 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이어 박 기자는 “전북 경제가 새만금에 거는 기대는 큰데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해 안타깝다”며 “행정구역상 새만금일대의 70%가 군산시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중단과 올해 GM공장 폐쇄로 지역 경제는 더욱 우울하다”고 설명했다.
20년차인 장태엽 전라일보 기자는 “전북하면 낙후, 소외 같은 말이 따라온다”며 “전북 언론이 새만금에 집중하게 된 건 수십 년간 그것밖에 할 이야기가 없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북 언론환경에 대해 장 기자는 “작은 동네인데 언론사는 많고 처우도 좋지 않아 배고픈 기자들이 많다”며 “지역 신문사엔 노조가 없다. 기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지 못한 데 저와 같은 선배들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기자들은 지역 일간지가 많은 것과 신문기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전북 언론의 특징으로 꼽았다. 지역 언론사의 어려움이 전북만의 사정은 아니지만, 특히 여기서 두드러진다고 입을 모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정기간행물 등록 현황’(2017년 12월 기준)을 보면 전북에 등록된 일간 신문사는 16곳이다. 반면 도세가 비슷한 충북은 7곳이다. 전북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일간 신문, 주간지, 인터넷 신문을 모두 포함한 전북 소재 언론사는 2011년 88곳에서 2017년 7월 기준 119곳으로 계속해서 늘어났다.
언론시민단체는 언론사가 넘쳐나는 환경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손주화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은 “방송에 비해 지역 신문 기자의 처우는 너무나 열악하다”며 “유력 일간지 기자들마저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데다 인력도 부족해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지면을 16면 발행하면서 취재기자가 10명이 안 되는 곳도 많다”고 지적했다.
손 사무국장은 “전북엔 광고·협찬비를 줄 기업도 없는데 신문사가 난립하다 보니 다들 지자체 홍보예산에 의존하고 있다”며 “지자체가 홍보비를 끊는 순간 전북 언론사의 생명은 끝난다고 보면 된다. 혁신과 투자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지역 언론학계에서도 우려를 표했다. 언론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생산적인 경쟁보다 지역 언론의 하향평준화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전북 언론계의 시장 기능은 사실상 마비됐다. 함량 미달 언론사, 자격 없는 기자여도 지자체 홍보비로 버티는 상황”이라며 “지역민의 혈세가 사이비 언론사로 흐른다. 언론 환경과 지자체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 교수는 지역 언론 시장의 진입장벽이 너무 낮다고 지적하면서 지자체가 홍보비 지급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언론 시장의 진입과 퇴출이 원활해야 건강한 환경을 만들 수 있다”며 “최소한 최저임금을 지급하는지, 사주가 범법행위를 저질렀는지, 일정 이상의 자산이 있는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는지 등 지자체가 홍보비 집행 기준을 만들어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북기자협회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기자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책무를 다하기 위해 지난 2014년 ‘폴리널리스트 재입사 금지 규약’을 제정하기도 했다. 선거 캠프와 지자체에 몸 담았던 기자가 2년 간 협회 소속 언론사에 재입사할 수 없는 장치를 만든 것이다.
임상훈 전북CBS 기자는 “특히 신문사 임금수준이 낮다보니 정치적인 입지보다 생계를 위해 폴리널리스트가 된 이들이 많다”며 “동료로서 이해는 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역 기자의 자존심과 의무감을 발현하기 위해 협회가 만장일치로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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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언론, 미래 있나?”
주니어 기자들 생각은
“열악한 처우는 그대로일 듯”
10년차 이하들 부정적 답변
“10년 뒤 전북 언론계는 어떤 모습일까?” 지역 언론사 10년차 이하 기자 5명에게 물었다.
“열악한 처우는 그대로일 것 같다” “신문사 젊은 기자들은 모두 그만뒀을 것 같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질 것 같다” 부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젊은 기자들도 전북 언론의 문제를 체감하고 있었다. 명함은 있지만 기자가 아닌 기자, 신문은 발행하지만 언론이 아닌 신문사를 언급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가장 큰 문제로 낮은 임금을 꼽았다. 기자의 꿈을 안고 입사한 신입들이 얼마 못 가 그만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A 기자는 “지역에서 가장 큰 신문사조차 최저임금 수준”이라며 “올해 최저임금이 상승하니까 매년 2차례 주던 명절 상여금을 12개월로 나눠 지급하면서 명목상으로만 기본급을 올린 신문사도 있다”고 지적했다.
B 기자도 “법정 최저임금이 전북 신문업계에선 최고임금”이라며 “신문사엔 신입 기자뿐 아니라 10~15년차도 텅 비어있다. 먹고 살려면 통신사, 방송사로 이직하거나 지자체 홍보담당이나 캠프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젊은 기자들은 ‘본받고 싶은 기자 선배’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좋은 기사보다 광고비 같은 젯밥에 더 관심을 보이는 선배들. 한편에선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
C 기자는 “주요 출입처 홍보실에 있는 선배들을 볼 때마다 괜히 마음이 안 좋다”며 “기자를 계속 하고 싶었던 분들도 있었을 텐데 임금 때문에 언론사를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D 기자는 “중간층 선배들이 없으니 그간 쌓여온 자료나 취재 기법 등을 전수받지 못하는 것 같다”며 “다른 신문사에서도 월급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려운 선배들의 아쉬운 소리만 들린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전북 언론계가 10년 뒤 건강하게 살아남기 위해선 임금 현실화, 기자들의 자성, 지자체 홍보비 지급 기준 신설 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 기자는 “작은 지역이다 보니 기자들도 지자체들도 부적격 언론사까지 안고 가는 것 같다”며 “언론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광고·협찬비에만 혈안인 곳들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B 기자는 “지금처럼 가다간 전북 언론의 희망과 미래는 없다”며 “10년 뒤 우리가 중견이 됐을 땐 권력을 견제하면서도 기자 월급만으로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