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마 사살’이 남긴 질문

[스페셜리스트 | 문화] 박돈규 조선일보 주말뉴스부 차장

박돈규 조선일보 주말뉴스부 차장 | 2018.10.03 15:45:14

박돈규 조선일보 주말뉴스부 차장. 지난 달 18일은 동물 뉴스 역사상 큰 획을 그은 날이었다. 외신들은 남북 정상회담과 ‘평양 공동선언’을 속보로 전하느라 바빴다. 정작 우리 국민을 붙잡은 뉴스는 달랐다. 대전 어느 동물원에서 일어난 ‘퓨마 사살’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질주했다.


사육장을 청소하고 문을 잠그지 않는 바람에 퓨마 한 마리가 달아났다. 8년생 암컷, 체중은 60kg이었다. 대전 시민들은 ‘외출 자제’ 재난문자를 받았다. 퓨마는 마취총에 이어 엽총을 맞고 5시간 만에 사살됐다. “왜 죄없는 퓨마를 죽였느냐”는 동정론이 인터넷을 점령했다. ‘동물원 폐쇄’ ‘엽사 처벌’ 같은 국민청원도 높은 지지를 받았다.


이 사건은 논쟁을 불렀다. “동물 권리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견해와 “맹수인 퓨마를 반려동물쯤으로 여기고 감정이입을 한다”는 시각이 충돌했다. 퓨마가 풍토도 안 맞는 낯선 땅에 끌려와 인간의 실수로 수난을 당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과학책 번역가 김명남씨는 트위터에 “이국적인 동물 위주로 라인업을 짜는 동물원은 없어져야 마땅하다”며 “제국주의 시대 인류학 같은 동물관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했다. 우리가 사는 곳에 서식하는 동물들을 더 잘 알고 배우고 올바르게 접촉하며 동물과의 관계를 재설정하자는 것이다.


어떤 동물은 억울하다. 동물학자 루시 쿡은 신간 ‘오해의 동물원’에 “나무늘보는 자연선택이 만들어낸 가장 별난 창조물”이라고 썼다.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혹독한 정글에서 살아남았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기발한 방법을 갈고 닦았기 때문이다. 빠름의 미덕은 과대평가돼 있다. 나무늘보는 그런 세상에서 시선을 거둘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가상현실(VR)을 적용하면 이 동물을 정글에서 데려와 가두지 않아도 그 창의적인 삶을 관찰하고 배울 수 있다.


문명은 동물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18~19세기 대도시 가로등을 밝히고 방적공장 기계를 돌린 건 고래기름이었다. 양은 털과 고기를 내어주면서 지식을 전파하는 임무까지 맡았다. 양가죽으로 책을 만들던 중세에 성서 한 권을 묶기 위해 양 200마리가 필요했다.


영화 ‘마션’에서 화성에 고립된 식물학자는 “어디서든 식물을 재배하면 그곳을 점령한 것”이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인간이 길들인 짐승이 문명을 지탱했다. 우리가 입고 있는 바지는 수천 년 전 유목민들이 말을 타면서 발명한 것이다. 모든 제국은 짐을 실어 나른 말과 당나귀, 낙타 덕에 세워질 수 있었다.


현대의 동물원은 더 이상 유희의 공간이 아니다. 멸종위기종을 보존하고 연구·교육하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 비행기가 추락하면 블랙박스를 찾아내 사고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퓨마 사살 사건은 우리 시대 동물원의 형식과 내용, 기능을 재점검하고 문제를 바로잡을 기회다. 우리 종은 만물의 영장이고 지구의 주인이니까. 새로운 동물원을 궁리하고 적용하는 데 그 똑똑한 머리를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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