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층 사각지대 '빈곤 청년' 목소리 들어보니

[통계·정책서 사라진 청년들 조명]
CBS·국민·경향 등 기획 잇따라

최근 경제, 정치 영역 등에서 화두로 떠오른 청년세대를 다루는 담론은 ‘MZ세대’ ‘이대남’ ‘2030의 투자열풍’ ‘공정 이슈에 민감한 세대’ 등이다. 이런 수도권 소재, 4년제 대학 중심의 청년 담론에서 벗어나 청년 빈곤 문제를 조명한 언론 기획이 주목받고 있다. 청년 담론에서 주목받지 못한 소외 계층 청년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통계나 정책에 가려진 사각지대 속 청년들을 포착한 기획들이다.


CBS 영상 브랜드 씨리얼이 지난 6월부터 지난달 19일까지 선보인 <용돈없는 청소년> 시리즈에는 공부대신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아픈 부모를 부양해야 했던 10대 시절을 보낸 청년들이 등장한다. 빈곤을 거쳐 어른이 된 청년들은 영상에서 “꿈보다는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를 생각했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이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느냐의 차이”라고 목소리를 낸다. 누구나 개천에서 난 용을 말하며 노력하면 된다고 하지만 최소한의 선택지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이들이 청소년기의 경험을 들려주는 기획이다.


<용돈없는 청소년> 시리즈는 지난해 11월 특성화고 문제를 다룬 <특성화고 학생들이 정부에 따질 수밖에 없는 이유> 기획이 계기가 됐다. 씨리얼팀은 “소위 ‘좋은’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한민국 청소년의 전형과는 다른 학생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설문조사를 통해 이들의 사연을 받았다. 신혜림 씨리얼 PD는 “특성화고 관련 콘텐츠에 댓글이 4000개 정도 달렸는데 당사자들이 직접 혹독한 현실을 증언하고 문제의식을 노출하더라. 아무도 대변해주지 않는 이야기를 해줘 감사하다는 피드백을 계속해서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미디어에서 노출되는 ‘영끌’ 한다는 청년, 청소년은 소수고, 다수는 빈곤을 겪었을 텐데 실재하는 빈곤을 외면하고 살고 있는 것 같다”며 “청소년기에 겪는 기회 격차는 어떻게 이후의 삶으로 이어지는지, 용돈을 받지 못한 청소년은 어떤 삶을 살게 될지를 묻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12~30일 보도한 <빈자의 식탁> 기획에서 저소득층 청년의 끼니 문제를 사회의 새로운 사각지대로 조명했다. 저소득층은 무엇을 먹고 사는지를 기록한 해당 시리즈 중 청년들의 사례만 묶어 ‘가난한 청년의 밥’을 낸 이유다. 국민일보는 “식품영양 전문가들은 영양 불균형의 새로운 사각지대로 저소득층 20대 1인 가구를 꼽는다”며 “최근 코로나로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서 밥을 제대로 못 먹는 청년은 급격히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인터랙티브 서비스로도 선보인 이번 기획에는 알바로 연명하며 겨우 끼니를 때우고, 미래를 위해 밥을 포기한 청년들의 여러 사례와 함께 1000~5000원대가 대부분인 일주일간 식사 사진도 소개됐다.


권기석 국민일보 이슈&탐사2팀장은 “기본적인 식사 문제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많다는 걸 알리는 게 중요했다”며 “어르신이나 중장년층 분들은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었지만 청년층은 특정 단체와 복지관을 통해서야 섭외가 가능했다. 어떻게 보면 이분들은 관리 하에 들어온 분들이고,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사례가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권 팀장은 “민간 기관에서 도움을 주고 있긴 하지만 공적인 영역에서도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논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경향신문은 지난 7월 <경계 청년> 기획 시리즈를 통해 실업자 통계와 일자리 정책에 외면된 취업과 실업의 경계에 놓인 청년들의 노동 문제를 다뤘다. 경향은 “1시간이라도 임금을 받고 일하면 취업자로 분류하는 일자리 통계”에 의문을 제기하며 “‘MZ세대’가 직장 소속감이 낮다지만 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제공하는 일자리 질이 얼마나 좋은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낮은 임금, 불안정한 지위 때문에 채용 사이트를 뒤지며 노동시장 내 사다리 오르기를 시도하는 ‘경계 청년’이 늘어날수록 한국 사회의 양극화와 저출생 문제 역시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사에는 구직활동을 지속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알바를 전전하고,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위험에 노출돼 취업과 실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제조업 생산직 청년들의 이야기도 담겼다.


박상영 경향신문 기자는 “기획재정부 출입을 하는데 통계청 실업자 구분에서 포착되지 못하는 어떤 중간지대에 있는 청년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함께 기사를 쓴 윤지원 기자가 독자들에게 연락을 받았는데 직접 청년들이 겪은 이야기를 보고,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기뻐하는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 중간지대에 있는 분들이 통계에 잡혀야만 여기에 맞는 청년 일자리 정책이 나올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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