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2박3일 취재? 무슨 수학여행인가!"

유럽 주재 특파원들 성명 내 "전쟁 실상 취재해 알릴 책무 있다" 입국 제한 재고 요청

재한우크라이나모임 회원들이 지난달 12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앞에서 열린 러시아 규탄 및 전쟁 중단 촉구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입국 취재를 제한하는 우리 정부의 조치에 대해 유럽 주재 특파원들이 “언론 자유에 대한 통제”라고 성토하며 현지 취재를 보장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파리와 베를린 등에 체류 중인 KBS,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국내 언론 특파원 6명은 15일 ‘유럽 주재 한국 특파원단’ 명의로 성명을 내고 “외교부는 여행금지 국가의 취재를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전역이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국내 언론의 입국 취재 역시 매우 제한적으로만 허용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이들은 “지난 2월24일 전쟁 발발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뉴스로 다뤄지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한국 언론사들은 제대로 취재해 보도할 수 있는 길이 막힌 것”이라고 호소했다.

외교부는 지난달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익적 취재 목적의 ‘예외적 여권사용’을 허가하면서 ‘외교부 출입 언론사 대상, 하루 4명 이내, 방문 기간 3일 이내, 체르니우치주 지역 한정’이란 조건을 내걸었다. 이에 따라 하루 언론사 두 팀, 각 2명(취재+촬영기자)의 입국 취재가 허용됐고, 지난달 18일 KBS와 SBS를 시작으로 연합뉴스, YTN, 동아일보, JTBC, MBC 등이 각각 3일씩 현지 취재를 한 바 있다. (관련 기사: <‘체르니우치’로 제한한 우크라이나 현지 취재 논란>)

유원중 KBS 파리 특파원(가운데)이 지난달 18일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 지역에 들어가 취재를 하는 모습.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그러나 유럽 특파원들은 “외교부가 제시한 허가 조건을 보며 정부의 ‘국민 알 권리 보호’에 대한 수준 이하의 인식과 언론 자유에 대한 몰이해에 대해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들은 “BBC와 CNN, NYT 등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은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리비우를 베이스캠프로 두고, 수도 키이우는 물론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동남부 도시들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하고 있고 그 밖의 다른 나라 언론사들도 리비우나 키이우 등에 특파원을 보내 그들의 시각으로 전황을 자국민들에게 알리고 있다”면서 “(그러나) 외교부는 예외적 입국을 허용한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전선과 가장 먼 서남부 체르니우치주 지역에서만 한국 언론의 취재가 가능하도록 규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연 현대사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는 큰 의미가 있는 이번 전쟁에 대한 실상을 2박 3일로 취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라며 “외교부는 결국 ‘공익적 목적의 취재와 보도’를 허용하는 척하면서 언론의 기능을 ‘수학여행’과 같은 행위 정도로 격하시켰다. 안전을 내세워 국민들의 알 권리 신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다른 나라 특파원과 비교해 창피할 수준…재고해 달라”

이들은 또한 “우크라이나를 비롯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예멘 등은 여행금지 국가에 선정돼 한국 언론의 접근이 불가능한 나라다. 외신에만 의존한 뉴스에는 공습으로 폐허가 된 곳만을 주로 보여주고 있지만, 대략 2억명의 주민이 이곳에 살고 있다”면서 “전쟁의 참상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인권과 궁핍의 문제 등은 언론이 주목해야 할 이슈이다. 여행이 금지된 이 나라의 상황을 우리 국민을 대신해 알릴 책무가 언론인들에게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일단 전쟁이 난 곳이니 한국인은 누구도 들어가지 말라는 식의 보신주의적인 행정 규제는 후진적”이라며 “외교부가 충분한 정보력을 갖고 위험지역을 세분화해 설정한다면 현재와 같은 일방통행식 금지는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른 나라 특파원들이 누리는 언론의 자유와 비교해 창피할 수준의 보도 기능을 허가하고 있는 한국 정부의 처사에 재고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번 성명에는 김귀수 베를린 특파원, 김대원(촬영기자)·유원중 파리 특파원, 조영중 파리 PD 특파원(이상 KBS)과 김윤종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정철환 조선일보 파리 특파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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