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전세사기'를 파헤치다

한국일보 '파멸의 덫, 전세 사기' 기획 뜨거운 반응…'깡통전세' 등 유형·수법 추적

네이버 지식iN(지식인)에서 ‘전세 사기’를 검색하면 최근 한 달간 등록된 글만 3000여건에 달한다. 최근 신축 빌라를 계약했는데 전세 사기가 의심된다며 조언을 요청하는 글부터 전세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까지 다양하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집주인이 전세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사고액이 지난달 872억원으로 월간 기준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특히 전셋값이 매매가를 웃도는 ‘깡통전세’가 많아지면서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달 전세 사기를 ‘일벌백계’하겠다며 엄포를 놓은 이유다.

한국일보가 지난 1~3일 상중하로 보도한 '파멸의 덫, 전세 사기' 기획 보도 중 한 편.

한국일보가 지난 1~3일 연재한 ‘파멸의 덫, 전세 사기’는 바로 이 전세 사기가 어떤 구조로 이뤄지는지, 그것이 어떻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남기는지를 들여다본 기획이다. 전세 사기 피해 사례 증가, 그리고 이에 대한 높은 우려와 관심을 방증하듯 기사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3회차에 걸쳐 연재된 기획 기사와 보도 후 쏟아진 제보를 바탕으로 추가된 네 번째 기사까지 각각 당일 네이버 한국일보에서 가장 많이 읽힌 기사 상위 4위 안에 들었고, 여러 카페와 블로그 및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공유됐다.


그동안 전세 사기 관련 기사가 피해 금액 규모 등 심각성을 전하는 수준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면 한국일보 기획은 전세 사기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구조’를 드러내고, 주요 유형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국일보는 ‘내부자’ 제보 등을 통해 전세 사기의 핵심인 ‘동시진행’ 매물을 추적하고, 취재기자가 직접 세입자인 척 중개업자에 접근해 ‘깡통전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아냈다. 동시진행은 세입자 전세금으로 분양대금(매맷값)을 치르는 걸 말하는데, 깡통전세가 이에 해당한다. 거금의 이사지원비로 세입자를 유혹하면서 그 몇 배의 수수료를 중개업자(컨설팅업체)가 챙기고, 명의는 ‘바지 집주인’에게 넘기는 방식이다. 만약 신축 빌라 전세를 구하는데 중개업자가 거액의 이사지원비를 주겠다고 한다면? 깡통전세를 의심해야 한다. 한국일보는 한 분양 관계자의 말을 빌려 “서울·수도권에서 진행 중인 신축 빌라 분양은 90%가 동시진행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전했다.


경제부 부동산팀 소속인 김동욱 기자는 “실제로 꾼들, 업자들 간에서 이뤄지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서 전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며 “그런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겐 이런 건 피해야겠다는 경각심이 들 수도 있고,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동시진행' 추적 (그래픽=한국일보)

보도 이후 제보도 많이 쏟아졌다. 이를 바탕으로 전세보증반환 제도의 허점을 지적하는 후속 기사를 지난 4일 보도했는데, 네이버에서 댓글만 1000개가 넘게 달릴 정도로 역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취급하는 전세금반환보증에 가입했더라도 “이사 당일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를 받은 경우”만 구제한다는 설명이 많은 이들의 분노를 불렀다. 김 기자는 “처음에 기사를 준비할 때만 해도 몰랐던 내용인데 비슷한 제보가 많이 들어와 후속으로 썼더니 독자분들이 많이 공감하고 화가 난 것 같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또 스타트업 빅밸류에 의뢰해 전세 사기 의심 거래 수를 분석했는데, 올 상반기 깡통전세 거래가 가장 많이 이뤄진 지역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313건)으로 압도적 1위였고,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108건) 등이 뒤를 잇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지역에서 전세를 구하고 있는 독자라면, 한국일보 기사를 먼저 꼼꼼히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김 기자는 “정부에서 9월에 전세 사기 대책을 내놓는다고 했으니, 정부 대책을 포함해 여러 아이디어들을 검토하면서 필요하면 추가적인 기사로 다루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