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 천만원짜리 1인 회사가 YTN 새 주인이 됐다

'5년간 400억원' 투자 약속, 보도·편성 불개입, 자산매각 금지 등 승인조건 제대로 이행할까

7일 YTN의 새 최대주주로 방송통신위원회 승인을 얻은 유진이엔티는 지난해 10월17일 설립된 신생 법인이다. 유진그룹 지주사인 유진기업이 51%를, 유진그룹 계열사인 동양이 49%를 각각 출자해 만들었다. 자본금 1000만원에 대표이사만 있고 직원은 없는, 1인 회사다.

YTN 지분 인수를 위해 특수목적법인(SPC)으로 만들어진 유진이엔티는 설립 엿새 만인 지난해 10월23일 YTN 지분 경쟁입찰에 참여, 경쟁사보다 최대 2.5배 높은 3199억3000만원(1300만 주, 30.95%)을 써내 낙찰을 받았다.

유진그룹 조직도. 이제 여기에 미디어 사업부문으로 YTN이 추가될 예정이다. /유진그룹 브로셔

이후 지난해 11월10일 한전KDN, 한국마사회와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닷새 뒤 방통위에 YTN 최다액출자자 변경승인을 신청했다. 방통위는 바로 다음 날 변경승인 심사 기본계획을 의결했고, 1주일 뒤 심사에 착수해 3박4일만에 심사를 완료했다.

그리고 사흘 뒤인 11월29일 국회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이동관 당시 위원장이 마지막으로 주재한 회의에서 두 방통위원은 ‘승인 보류’를 결정했다. 이동관 위원장은 당시 방송 카메라기자 등을 회의장으로 불러 “야당과 일부 언론에서 처음부터 졸속심사다 짜맞추기 심사다 이런 정치공세를 한데 대해선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는 이틀 뒤 사퇴했다.

‘보류’ 이후 ‘승인’까지 70일…추가 ‘심사’ 없이 ‘자문’만

이후 70일간은 베일에 가려 있었다. 7일 방통위는 그간의 경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먼저 지난해 12월12일 유진이엔티에 방송의 공정성·공적책임 실현과 YTN 발전을 위한 투자계획 등 자료 제출을 요청했고, 올 1월 제출받은 자료에 대해 보완 요청 등을 거쳤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심사위원회에 참여했던 8명의 심사위원 모두에게 자문을 받았으며, 투자계획의 적정성 등은 별도로 회계 전문가에게 자문을 얻었다. 지난 2일엔 상임위원이 심사위원 4명과 따로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그러니까 유진이 추가로 제출한 자료를 방통위가 검토하고 기존에 심사를 진행한 심사위원 등에 ‘자문’을 얻었을 뿐, 추가 ‘심사’는 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는 지난해 11월 신청 당시 유진이 제출한 사업계획 등의 내용이 미흡해 승인이 보류됐던 만큼, 추가 자료에 대해 다시 심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심사 없는 승인’은 위법하단 것이다.

방통위는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신승한 방통위 방송지원정책과장은 7일 회의 후 브리핑에서 “그때(지난해 11월) 심사는 끝난 것”이라며 “보류 이후 이제 판단을 하기 위해 전문가 자문을 추진했는데, 그때 심사에 참여했던 분들에게서 자문을 얻는 것이 결정을 내리는 데 더 합리적이고 연계성이 있는 부분이라고 판단해서 자문을 얻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심사위는 “방송의 공정성·공적책임 실현, YTN 발전을 위한 투자계획 등이 구체적이지 않고 재무적 위험성이 있다는 의견”을 “비중 있게 제시”하면서도 승인이 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려 ‘부실 심사’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승인조건 안 지키면 페널티 있을까?

방통위는 “방송의 공적책임 등과 관련해 제기된 사회적 우려 등 제반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보도전문채널의 사회적 기여도를 높일 수 있도록 엄격한 조건” 10개를 부과해 변경승인을 의결했다. △미디어 분야 전문경영인으로 YTN 대표이사 선임 및 독립된 사외이사와 감사 선임 △유진그룹에 유리한 보도·홍보성 기사를 강요하는 등 YTN의 보도·편성에 개입하지 않을 것 △YTN에 대한 증자 및 투자계획 이행 △YTN의 재무건전성을 해할 수 있는 자산매각과 내부거래를 하지 않을 것 △YTN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은 YTN을 위해 사용할 것 등이다.

그러나 이 같은 조건을 지키지 않으면 최대주주 변경승인을 취소한다거나 하는 단서 조항은 없다. 그간의 관례를 볼 때 방통위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승인조건 이행 등의 시정명령과 위반 시 과태료 처분 등이다. 김홍일 위원장이 회의 말미 “올해 있을 YTN 재승인과 연계해서 방송의 공정성과 공적책임을 잘 실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지만, 이는 ‘발언’ 혹은 ‘의지’ 이상 의미가 크지 않다.

앞서 지난 2020년 방통위는 SBS의 최대주주를 SBS미디어홀딩스에서 TY홀딩스로 바꾸는 최대주주 변경승인을 의결하면서 5가지 조건 부과와 함께 “그 이행실적을 2020년 SBS 재허가 심사에 반영한다”는 문구를 의결주문에 포함했다. 당시 TY홀딩스 승인 조건엔 ‘경영 계획 수립 시 SBS 종사자 대표와 성실하게 협의’하라는 내용 등도 포함됐는데, 유진이엔티엔 이런 조건이 부과되지 않았다.

정형택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은 이날 방통위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당시) 사실상 동일 사업자에 대한 지배 자격을 묻는 심사였는데 기억해 보니까 1년 3개월이 걸렸다. 사전 심사를 했고 최종 심사를 했다. 그때마다 종사자 대표인 노조위원장인 제가 직접 방통위 심사위원들을 만나서 최대주주 변경의 적절성에 대한 종사자 의견을 전달했다. 그만큼 방송을 지배하는 자본의 성격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며 “그때와 비교해 보면 모든 게 졸속이고 불법이라는 걸 여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의결주문에서도 빠진 ‘재승인 심사와 연계’ 점검

유진이엔티는 1차로 제출했던 사업계획서와 지난달 제출한 추가 개선계획 등에서 향후 5년간 400억원의 투자 등을 비롯해 △저널리즘연구소 설립 △데이터 저널리즘 지원팀 운영 등의 계획을 밝히고, 유진이엔티 대표와 유진그룹의 실질적 지배자인 유경선 대표 공동명의로 작성한 이행각서와 확약서도 제출했다. 이에 방통위는 “이행각서를 성실히 이행하고 전년도 이행실적 자료는 방송통신위원회에 매년 4월30일까지 제출”하라는 조건을 부과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YTN 사옥 /김고은 기자

그러나 이행각서 역시 위반 시 직접적인 페널티는 없고 “부득이한 사유로 사업계획 및 추가 개선계획, 이행각서의 주요 내용을 변경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승인”을 받으면 된다. 해당 이행각서의 법적인 효력을 묻는 말에 신승한 방통위 방송지원정책과장은 “재승인 연계라든가 여러 가지 법적인 사항을 통해서 책임 이행 여부를 저희가 확인할 것이고, 만약에 이행이 되지 않으면 여러 가지 장치를 검토할 것”이라고만 답했다.

방통위는 이날 의결된 최다액출자자 변경승인 사실을 이달 중 유진이엔티에 통보할 예정이다. 방통위 승인 절차가 완료됨에 따라 조만간 유진이엔티가 한전KDN, 한국마사회에 잔금을 지급하면 주식 거래는 종결된다. 이후 유진그룹은 관련 공시를 통해 최대주주 변경 사실을 알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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