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열린 제55회 한국기자상 시상식에서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특수활동비 등 검찰 예산 최초 공동검증’ 보도로 한국기자상 상패를 받은 수상자는 3명이었는데 시상 직후 기념촬영엔 17명이 연단에 섰다. 이 보도는 뉴스타파와 부산MBC, 경남도민일보, 뉴스민, 뉴스하다 등으로 이뤄진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이 협업했다.
한국언론상을 대표하는 제55회 한국기자상 시상식이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1964년 창립한 한국기자협회는 뛰어난 보도활동과 민주언론 창달에 뚜렷한 공적이 있는 기자를 격려하고 포상하기 위해 1967년 한국기자상을 제정했다.
올해 한국기자상 수상작은 KBS의 ‘정순신 자녀 학교폭력 소송전’ 등 8편이다. 심사위원회는 지난해 이뤄진 보도 가운데 후보작으로 올라온 110편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통해 최종 8편을 선정했다. 한국기자상 대상은 나오지 않았다. 연합뉴스 선양특파원 재직 당시 순직한 고 조계창 기자를 기리기 위해 한국기자협회와 연합뉴스가 공동 제정한 ‘조계창 국제보도상’은 부산일보의 ‘8000원혼 우키시마호의 비극’이 받았다.
박종현 한국기자협회 회장은 이날 시상식에서 “언론은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을 때 고개를 들어야 하지만 혼자 힘으로 버거울 수 있다”며 “고개를 들고, 손을 잡고 연결하면 연대의 위대함을 체험할 수 있다. 연대의 힘이 잘못을 바로잡고, 언론과 사회의 위상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어 “평가는 엇갈리지만, 미국 공화당 소속으로 1970~80년대 10년 가까이 연방의회 하원의장으로 활동했던 토머스 오닐은 ‘모든 정치는 당신이 사는 지역에서 시작된다’고 했다”며 “기자들에게도 똑같은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우리가 있는 곳, 우리 현실이 마주하는 곳에서 최선을 다할 때 우리 언론의 현재와 미래가 좀 더 명확하고 밝아질 것”이라고 했다.
최영재 한국기자상 심사위원장은 “언론이 상업적으로 포획되고, 언론인의 직업적 삶의 환경이 핍진해지는 하수상한 세월을 살고 있다”며 “하지만 오늘 수상하는 한국기자상 기사들과 또 100여편의 수상 후보작을 보면서 ‘역시 한국 기자들의 정의감과 근성은 살아 있다. 아니 선배 세대보다 더 불타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 큰 위로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기자상 수상작 8편, 조계창 국제보도상 선정 이유
△정순신 변호사 자녀 학교폭력 소송전-KBS 최형원 최유경 이도윤 기자
“정순신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과거 자체 취재 보도 내용과 연결해 보강 취재함으로써 학폭 문제를 이슈화함은 물론 교묘하고 부당하게 행사하는 권력을 감시하고 저지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LH 부실시공과 전관특혜-KBS 김지숙 이지은 김보담 박상욱 기자
“LH 아파트 부실시공 이면에 LH의 오래된 관행인 ‘전관특혜’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폭로한 최초의 보도였을 뿐만 아니라 전관 감리 회사가 부실시공으로 4년 동안 6차례나 벌점을 받고도 LH 사업을 계속 수주한 사실을 고발해 부실시공의 고질적 원인인 ‘전관특혜’를 근절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서이초 교사 극단적 선택…교권이 무너졌다-한국경제신문 이혜인 안정훈 기자
“단순 발생 사건으로 지나칠 수도 있는 사안을 놓치지 않고 보도해 사회적 의제로까지 끌어올렸고, 보도 이후 수만명 교사들이 집회와 시위를 통해 생존과 교권을 위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교육 당국은 관련 법 제·개정을 발표하는 등 교권 강화를 위한 사회적 반향을 이끌어 냈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청부 민원’ 의혹-MBC 이재욱 배주환 이혜리 기자
“대통령과 관련된 보도를 한 방송사들에 대한 방심위의 무더기 과징금 의결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방심위의 정파적 편향성과 의결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 결여 문제를 결정적으로 폭로한 기사라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로 가는 지역 암 환자, 고난의 상경치료 리포트-한겨레신문 박준용 권지담 채반석 조윤상 기자
“지역과 서울의 의료진 능력 차이가 명확하게 검증되지도 않은 상황임에도 환자들이 서울로 집중되는, 지역 의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깊이 있게 입체적으로 다룬 수작이다.”
△특수활동비 등 검찰 예산 최초 공동검증-뉴스타파 박중석 임선응 강민수 조원일 강현석 연다혜 전기환 김지연 신영철 박서영 기자, 부산MBC 류제민 김욱진 기자, 경남도민일보 이승환 김다솜 박신 이동욱 최석환 기자
“누더기 정보를 공개한 검찰 횡포에 맞서 감춰진 정보들을 재판과 협업을 통해서 밝혀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신문 방송 인터넷 언론사라는 이종 매체의 협업과 재판을 통해서 정보공개청구를 이뤄낸 것은 타 언론사에게도 모범 사례가 되었다.”
△해병대원 실종, 구명조끼 없이 수색-연합뉴스 대구경북취재본부 김선형 윤관식 박세진 황수빈 기자
“해병대원들이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고 허리까지 차올라 흐르는 급류에 무리하게 들어가 수색하다가 실종됐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했고 특히 구명조끼 미착용 사실을 해병대원들의 사진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사망 원인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확인해 줌으로써 이 사건이 중요한 정치 사회 이슈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3자가 된 피해자-‘부산 돌려차기’ 등-부산일보 안준영 양보원 변은샘 기자
“일명 ‘부산 돌려차기’ 사건을 최초 보도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 1년간 피해자의 행적을 동행하며 그가 부딪혀야만 했던 제도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취재진은 부산지역에서 발생한 강력 범죄 피해자들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 수사기관 내부규정 및 준칙 등 현행 사법체계의 문제점을 짚어내는 등 피해자를 위한 ‘회복적 사법’으로 나아가야 할 길도 제시했다.”
△조계창 국제보도상-8000원혼 우키시마호의 비극-부산일보 이승훈 변은샘 손희문 기자
“78년 전 일본 땅에서 한인 강제 징용공 등 8000명이 숨진 세계 최대의 해양사고였지만 진상규명은커녕 유해 발굴과 송환, 나아가 추모도 없었던 비극을 현재 시점에서 상기시켜준 수작이었다. 지면 1면의 광고를 없애 주목도를 높인 과감한 편집이 눈길을 끌었고, 일본 큐슈 최대 신문사인 서일본신문과의 장기 합동 취재도 협업 모델로 돋보였다.”
한국기자협회가 주최하고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후원한 한국기자상 시상식에는 성기홍 연합뉴스 사장과 박정찬 전 연합뉴스 사장, 최우성 한겨레신문 사장과 김영희 편집인, 박성호 방송기자연합회장, 박장호 MBC 보도본부장, 최재현 KBS 보도국장, 고 조계창 특파원 부친 조상익씨와 조 특파원의 두 아들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