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나쁜 소식이니 보도하지 않는 편이 능사일까? 기사에서 ‘자살’은 절대 언급해선 안 될까? 그건 오해다. 자살보도는 필요하지만 신중한 태도와 판단을 요구하는 건 자살 사건을 잘못 다뤄선 부작용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언론이 자살에 대한 보도 기준을 그저 족쇄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옛 중앙자살예방센터)이 7일 주최한 ‘2024 사건기자 세미나’에서 현장 기자들과 전문가들은 전날 개정돼 발표된 ‘자살예방 보도준칙 4.0’의 취지와 의미를 토론했다. 전국의 사건기자와 보건복지부 관계자, 언론학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한 이번 세미나는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금호리조트에서 진행됐다.
세미나에서 기자들은 금지 문언이 많은 보도준칙이 취재와 보도를 위축하지 않을지 우려했다. 준칙 개정을 주도한 유현재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자살예방 보도준칙은 심각한 부작용들 때문에 원칙을 정한 것이지 심층 취재를 막으려는 목적이 아니”라며 “언론인들이 이런 원칙들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고민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살예방 보도준칙은 기자협회와 보건복지부, 생명존중재단이 함께 2004년 처음으로 만들었다. 2013년과 2018년 그리고 올해 세 차례 개정을 거쳤다. 기존에는 ‘자살보도 권고기준’이었지만 이번 개정으로 ‘권고’를 ‘준칙’으로 바꿔 강제성을 높였다.
이번 보도준칙은 기존 권고기준의 다섯 가지 원칙을 알기 쉽게 네 가지로 다시 정리했다. “자살 사건은 가급적 보도하지 않는다”를 첫 번째 원칙으로 내세웠다. 그 아래 모방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는 배경과 대안적 지침을 자세히 추가했다. 이번 준칙의 제목에 ‘예방’을 넣은 것도 모방 자살을 막자는 목적을 강조하는 장치다.
오동욱 경향신문 기자는 “준칙에는 자살 동기나 유서 자체를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도 있는데 과한 규정은 아닐까 생각한다”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유 교수는 “송파 세 모녀 사건(2014년) 때 유서가 보도돼 ‘세모녀법’(개정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입법됐다”며 “이건 언론이 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답했다. 유서를 절대 노출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준칙을 오독한 것이라는 뜻이다.
다만 준칙은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때라도 자살 사건이 수단화되지 않게 신중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개인적 문제든 사회적 문제든 자살이 해결 방안의 하나로 비치게 되면 자살을 예방해야 한다는 준칙의 가장 중요한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금지 규정들이 억지스러워 보여도 준칙이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넛지(촉매)가 된다”며 준칙을 정한 취지를 이해해 달라고 당부했다. “보도를 신중하게 하려고 언론인들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면 그 자체가 국민에게는 '자살을 쉽게 여기면 안 된다'는 강한 암시가 되기 때문"이다.
토론에 참여한 김익태 제주기자협회장(KBS제주)은 준칙이 취재 보도를 피하려는 편리한 방편이 돼선 안 된다고 짚기도 했다. 김 회장은 “유족 취재가 얼마나 어려운데 자살 사건이라는 이유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건 일선 기자들에게 ‘행복한 원칙’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적극적인 취재가 필요하지 않은지 잘 선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제주국제공항에서 일하는 경비원이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했는데 대체로 단순 1보로 멈췄다”며 “KBS제주는 이를 더 취재해 사망자의 산업재해 인정을 재심으로 받아냈다”고 사례를 들었다. 그러면서 “자살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문제라는 선입견이 있다. 돌봄의 문제를 공공적으로 관리하려는 관점을 놓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튜브처럼 변질된 방송이 자살을 유발한다고 발제한 임영호 부산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도 같은 지적을 했다. 임 교수는 “고 이선균 배우에 대해 KBS는 유흥업소 직원의 주장을 근거로 보도했는데, 상대가 정치인이었다면 이런 방식은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어떤 인물은 과하게 보호장치가 걸리고 어떤 직종은 마구 보도한다. 그 불균형을 교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정신질환에 대한 바람직한 보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주제도 논의됐다. 기자협회는 보건복지부,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과 함께 조만간 ‘정신건강보도 권고기준’도 새로 제정해 발표한다. 다섯 개 원칙 가운데 첫 번째로 “정신질환은 치료와 예방이 가능하며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회복할 수 있다”를 가안으로 준비하고 있다.
정신건강보도 권고기준 제정 위원인 서미경 경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구에 따르면 정신질환을 회복한 기사는 한 건만 읽어도 편견이 줄어드는 효과가 컸다”며 “무언가를 보도하지 말라는 기준보다는 되도록 회복에 대한 긍정적인 보도를 해주시기를 바라 첫 번째 원칙을 정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