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피해 아동의 권익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아동학대 언론보도 권고기준’에 일선 기자들과 전문가들이 공감했다. 한국기자협회와 아동권리보장원은 8일 제주도 서귀포시 금호리조트에서 ‘2024 사건기자 세미나’를 열고 2022년 보건복지부와 함께 만든 아동학대 보도 권고기준의 원칙과 적용 방안을 논의했다.
권고기준 제정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참여한 송경재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인구 변화에 따라 아동은 줄고 있는데 학대 신고는 오히려 늘고 있다”며 “사건의 현상에 집중해 보도하려다 보니 피해자인 아동의 권익에는 소홀했다”고 권고기준을 만든 배경을 먼저 설명했다. 당사자인 피해 아동의 처지에서가 아니라 경찰이나 행정기관의 발표대로 기사를 써온 관행이 문제를 키웠다는 것이다.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19년 4만 1000여건이었는데 지난해에는 4만 8000여건으로 최근 5년 사이 조금씩 느는 추세를 보였다. 2021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신고 건수는 처음으로 5만 건을 넘어 5만 4000건 가까이 기록되기도 했다.
역시 제정위에 참여한 김지영 이투데이 기자는 권고기준을 현업에 적용하는 방안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권고기준의 세 가지 원칙으로 본문이 구성돼 있다. 권고기준은 가장 먼저 독립된 인격체이자 직접적인 이해관계당사자인 피해 아동의 권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첫 번째 원칙에 대해 김 기자는 “(가해자가 부모가 아닌 경우) 부모가 아동을 대신해 인터뷰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모는 관찰자일 뿐”이라며 “이를 기사에 반영할 때는 사실이 아니라 부모의 짐작으로 구분해야 하고, 아동의 진술 기록을 볼 때도 정보에 권리가 있는 아동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고기준은 두 번째 원칙으로 보복을 걱정하는 신고자는 물론 가해자로 의심받을 수 있는 주변 사람에게도 2차 피해가 가지 않게 유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학대 방법을 자세히 묘사하면 다른 아동도 모방 범죄를 당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신고 건수 10건 중 4건만이 실제 학대로 판단되는 만큼 학대가 맞는지 예단하거나 전후 사실관계를 상상하고 추정해서는 안 된다.
세미나에 참석한 기자들은 피해 아동을 직접 만나는 방식의 취재가 현실적인지 의문을 드러내기도 했다. 학대를 당한 아동이 취재에 응할 여력이 없을 수 있고 아동보호기관에서도 피해 아동을 언론과 연결해 주는 관행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 전문가로 토론에 참여한 허애지 대전북부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보도의 시점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답했다. 허 관장은 “피해 아동이 사건 직후에는 매우 불안해해서 경찰 조사를 받아야 해 취재까지 응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며 “보도 목적에 따라 적절한 기간을 둘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경혜 한국장애인개발원 원장이 기자협회와 함께 준비하고 있는 ‘장애인 보도 권고기준’(안)을 소개하기도 했다. 장애인 보도 권고기준은 다음 달 발표 되고 내년에 구체적인 내용이 추가될 예정이다.
세미나 일정을 마친 뒤 참석자들은 중증 장애인 3명이 일하고 있는 '아이갓에브리씽 카페오놀점'을 방문했다. 아이갓에브리씽은 장애인개발원이 장애인 채용 사업으로 추진하는 카페 브랜드로, 이곳은 8월에 문을 연 95호점이다. 장애인개발원은 전날인 7일에도 경기도 용인시에 97호점 카페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장애인개발원이 지원하는 장애인직업재활 사업장 ‘에코소랑’도 둘러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