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분리? 특정종교'만' 문제일까

[언론 다시보기]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통일교 금품 수수 의혹을 받는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내 자신의 사무실에서 경찰의 압수수색을 지켜보고 있다. /뉴시스

“정교분리는 중요한 원칙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다. 그런데 정교분리 선언이라니, 지금이 정말 21세기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일이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통일교의 국정농단 사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통일교라는 특정 종교가 정치적 로비 문제로 회자되기 시작한 건,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부정부패와 연루되면서다. 통일교는 해외 교세 확장을 위해 윤석열 정부 측에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청탁했다. 이 과정에서 김건희 측에 총 8000만원 상당의 샤넬 가방과 그라프 목걸이가 전달됐는데, 전성배씨(건진법사)가 전달책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통일교는 또한 YTN 인수와 유엔(UN) 제5사무국 한국 유치, DMZ 평화공원 설치,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 교단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청탁을 벌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통일교의 정치개입은 현직 국회의원이 구속될 만큼 심각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통일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통일교는 국민의힘에 집단 입당해 당대표 선거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통일교의 로비 창구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의 이름이 거론됐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품수수 의혹으로 해양수산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임종성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과 함께 피의자로 입건됐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이름도 등장했다. 끝이 아니다. 그리고 이제는 문재인 정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여러 인사들의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끔찍한 장면이다. 특정 종교가 이렇게까지 정치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매우 부적절하다. 문제는 단순한 로비를 넘어섰다는 점이다. 한겨레21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에서 캄보디아 대외협력기금(EDCF) 지원액이 갑자기 7억 달러에서 30억 달러로 폭증했다. 김건희 여사의 코바나콘텐츠 후원업체였던 희림이 해당 사업에 참여했다는 점도 수상하다. 특검은 이것이 통일교가 당시 캄보디아 메콩강 주변에 ‘아시아·태평양 유니온 본부’ 건립을 추진했던 사업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데도 여야는 통일교의 국정농단 사태를 두고 서로 겨 묻은 개 논쟁만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 정작 ‘정교분리’와 관련한 중요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있다. 바로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한국 사회에서 ‘혐오’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거론했던 명동에서의 혐중 시위가 대표적이다.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깽판”이라던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해당 발언 후 명동에서 혐중 시위는 사라졌다. 하지만 혐오는 대림동으로 옮겨갔다. 대림동은 중국 동포들의 일상적인 거주 공간이라는 점에서 어쩌면 더 위험할 수 있다. 여성·장애인·성소수자를 비롯한 소수자를 향한 혐오 문제 또한 심각하다. 이런 혐오에 대응하기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그러나 이 차별금지법, 누가 막고 있나. 보수 기독교계다. 이들은 기독교인들의 ‘집단 표’를 무기로 정치권을 압박한다. 6월, 더불어민주당이 온라인상에서의 혐오표현을 규제하기 위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철회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법 개정안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철회된 배경은 ‘성적 지향’이 포함된 것에 보수 기독교계가 반발했기 때문이다. 명백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보수 기독교인들의 이런 떼쓰기에 계속해서 굴복해 왔다. 2007년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됐던 차별금지법이 아직도 제정되지 못한 까닭이다.


고위공직자들은 때로 ‘공직’을 본인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수행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최근 국가인권위에서 벌어지는 ‘반인권’ 행보의 대부분은 안창호 위원장의 ‘종교적 신념’과 맞닿아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임용권 규제는 기독교 사학의 존재 이유 자체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사립학교법 재개정을 추진하겠다던 발언은 또 어떤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극렬하게 막았던 인사들 역시 기독교인이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이쯤 되면 한국 정치가 과연 종교와 분리된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그러면서도 이제 와서 새삼 ‘정교분리’를 이야기하는 꼴이 한편 우스꽝스럽다. 정교분리가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미 달성됐어야 할 원칙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물어야 한다. 정교분리, 과연 통일교만의 문제인가? 그리고 정교분리만큼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언교분리’가 아닐까. 종교재단을 주주로 둔 언론사 기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건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보도가 아니라, 저널리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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