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26일에도 두 명의 정보공개센터 활동가가 밤을 새웠다. 날짜만 하루이틀 차이가 날 뿐, 이렇게 밤을 새운 게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른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해마다 3월 말이면 고위공직자의 재산내역이 관보를 통해 공개되는데, 이걸 데이터로 만들기 위해서다. 자정이 지나 정부가 PDF로 된 공직자 재산공개내역 파일을 올리는 순간부터 우리의 야근이 시작된다. 수백 페이지의 PDF를 열고 표를 긁어 엑셀파일로 바꾸고 행과 열을 맞추는 작업을 한다. 혹시 데이터로 정제하는 과정에 실수는 없었는지 검증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쉽게 국회의원 재산 데이터를 볼 수 있도록 구글 스프레드시트로 만들어 홈페이지에 올리고 나면 어느새 새벽이 된다. 이 과정에서 매번 드는 생각이 있다. ‘정부가 처음부터 엑셀로 공개하면 될 것을!’
야근 안 하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정부가 재산공개 표 양식만 바꿔 엑셀로 내보내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 정부는 해마다 활용하기 불편한 PDF를 올리고, 우리는 해마다 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뜯어서 다시 데이터로 만든다. 이 소모적인 작업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공직자 재산공개제도는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과 함께 도입됐다. 고위공직자가 권력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챙기는 것을 막고, 시민이 이를 감시·견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당시 ‘재산공개’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고위 관료까지 권력을 쥔 공직자는 재산을 드러내야 한다는 원칙은 한국 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제도의 취지는 분명하다. 고위공직자의 재산 변동을 시민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금의 공직자 재산공개제도는 취지에 한참 어긋나 있다. 한국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전자정부 선진국으로, 이미 6년 전에 전자정부에서 디지털정부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정부문서는 전자적으로 생산·관리되고, 인공지능(AI)을 통해 업무를 고도화하고,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시민들에게는 폰트와 표 형식이 깨지지 않아 인쇄해서 볼 때나 의미 있는 PDF로만 공개하는 것이다.
PDF는 사람이 눈으로 읽기 위한 형식이지, 컴퓨터가 분석하기 위한 형식이 아니다. 특정 공직자의 재산이 몇 년간 어떻게 변했는지, 어떤 유형의 자산이 얼마나 늘었는지 파악하려면 수백 페이지의 PDF를 직접 읽거나, 아니면 누군가 정제한 데이터를 구해야 한다. 결국 공직자 재산을 제대로 감시하려면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를 갖춰야 한다. 데이터를 직접 정제할 능력이 있거나, 정제된 데이터를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을 알거나. 이 두 가지 모두를 갖추지 못한 보통의 시민에게 재산공개 자료는 ‘바쁜 내가 볼 일은 없는 정보’일 뿐이다. ‘공개’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닫혀 있는 정보인 셈이다.
물론 언론들에서 공직자 재산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분석하고 의미를 짚는 보도를 많이 낸다. 누구의 재산이 가장 많은지, 한 해 동안 누구의 재산이 가장 많이 늘었는지와 같은 기사를 거의 모든 매체에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공직자 재산공개의 취지를 벗어난 재산 고지 거부 사례는 얼마나 늘어나고 있는지, 정부가 다주택자 규제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지금 국면에서 다주택 소유 당사자인 공직자들은 누구인지, 특정 지역의 이해관계자들만 알아챌 수 있는 토지 소유와 개발 이슈의 상관관계는 무엇인지, 언론에서 미처 다루지 않지만 공직자 재산내역을 통해 톺아봐야 하는 것들, 시민들의 집단지성으로 함께 살펴보면 보이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누구나 공직자 재산을 쉽게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해법은 간단하다. 정부가 공직자 재산 자료를 처음부터 분석 가능한 데이터 형식으로 공개하면 된다. 엑셀이나 CSV 같은 형식으로 공개하면, 수많은 이들이 밤을 새워야 했던 데이터 정제 작업의 필요가 단번에 사라진다. 기자는 기사 쓸 시간이 생기고, 활동가는 분석할 시간이 생기고, 시민은 직접 들여다볼 기회가 생긴다. 아마 내년에도 3월 말 자정이 지나면 기자의 노트북에서, 활동가의 사무실에서, 누군가의 방 안에서 동시에 PDF를 뜯으며 한숨 쉬는 소리가 날 것이다. 그만하고 싶고, 그만해야 한다. PDF 뜯는 그 밤은 감시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바치는 일종의 헌신이지만, 동시에 정부의 태만이 만들어낸 낭비이기도 하다. 공직자 재산공개제도가 30년이 넘었다. 이제는 공개의 방식도 그 취지에 걸맞게 바꿔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