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5일 KBS 지배구조 개편을 골자로 한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어 방송문화진흥회법과 한국교육방송공사법이 차례로 국회 문턱을 넘으며 이른바 ‘방송3법’이 완성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 사장이 바뀌던 잔혹사를 끊어내고 방송의 독립성을 제도로 보장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입법을 주도한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국민에게 공영방송을 돌려드리게 됐다”며 새 역사의 시작을 선언했고 언론계도 반겼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기대했던 새 역사는 어디에도 없다. 개정 법률은 부칙에서 3개월의 유예기간까지 명시하며 공영방송 이사진 재편과 보도전문채널 사장추천위원회(사추위) 구성을 요구했다. 하지만 시한을 8~9개월 넘긴 지금도 KBS 이사회는 정원 15명 중 8명만 구성해 과반을 겨우 채웠고, 방문진과 EBS 이사회 역시 미완성이다. YTN과 연합뉴스TV의 사추위 구성도 지지부진하다.
거창했던 입법 취지가 무색해진 배경에는 정치권의 파행과 행정 무능이 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공영방송 이사 후보자 공모를 끝내고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에 최종 명단을 내놓지 않는 방식으로 법 작동을 방해했다. 공영방송 3사에 배정된 야당 몫 이사 추천을 통째로 해태하는 것은 명백한 법치주의 거부다. 법을 집행해야 할 방미통위 역시 출범 후 반년 가까이 정족수조차 채우지 못해 행정 공백을 자초했다.
방송계 내부 갈등도 겹쳤다. KBS 사측은 종사자 대표 자격 다툼을 이유로 추천 규칙을 정할 편성위원회 개최를 거부하며 임직원과 시청자위원회 몫 이사 5명의 공모를 방치하고 있다. 연합뉴스TV는 노사가 합의한 사추위 정관 개정안이 1대 주주 반대에 부딪혀 공회전하는 중이고, YTN은 최대주주 자격 논란이 정리되지 않아 사추위 협상도 진전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이 모든 파행 속에서도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주체는 입법을 주도한 여당일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결격사유가 있는 인사들을 공영방송 이사로 추천했다가 뒤늦게 철회·교체하며 논란을 빚었다. 오태규 방문진 이사 사태는 자가당착의 정점이다. 대선 자문 활동 논란에도 민주당은 사실관계 확인을 회피하며 14일을 버텼다. 정치권의 임명 지연을 막으려 개정안에 넣은 ‘14일 자동임명’ 조항이 자격 미달 인사를 밀어 넣는 꼼수로 악용됐다. 언론계에서조차 “자기 진영 인사는 눈감아주는 것이 민주당식 언론개혁이냐”는 목소리가 높다.
1년 전 방송법 개정안은 과방위 상정부터 본회의 통과까지 단 34일 만에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여졌다. 하지만 속도전의 결과를 돌아보면 대체 무엇을 위해 그토록 서둘렀는지 알 수 없어진다. ‘공영방송을 국민에게’라는 성과만 과시한 채 법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도록 책임질 의무는 완전히 팽개쳤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공영방송 독립성이 허망한 정치적 구호로 남지 않으려면 현장을 겉돌며 오작동하고 있는 법을 전면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결격사유 검증을 무력화하는 ‘14일 자동임명’ 조항에 안전장치를 신설하고, 노사 합의 불발 시 적용할 기본안과 상법 충돌 문제 등 입법적 허점을 즉각 보완해야 한다. 방미통위 역시 법 위반 상태를 방관하지 말고 엄정한 행정력을 집행해야 할 것이다. 방송의 독립성은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치밀한 제도의 운용으로 완성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