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이 만약 '사용자'라면
어떤 노동자가 일하던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녀는 노동위원회에 해고가 부당하다며 구제신청을 냈다. 다행히 노동위는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해고가 부당하니, 즉시 원래의 직으로 복직시키라는 이른바 원직복직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이 판단에는 전제가 있었다. 바로 회사가 그동안 프리랜서로 취급해왔던 그녀가 사실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법률적 판단이었다. 그러니 입사 당시부터 근로자라고 판명난 그녀가 돌아갈 자리는 프리랜서가 아니라 정규직 근로자일 것이다.그런데 회사는 그녀를 정규직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로 복직시켰고 근로계
못 하는 걸까, 안 하는 걸까
근사한 재즈 바와 달콤한 튀르키예 간식이 있는 곳. 익숙한 풍경에 내가 한창 이태원 골목을 쏘다니던 딱 그 또래 청년들이 쓰러져 있었다. 심정지 인원만 수십에 달한다는 속보를 봤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언론에서 사망이 아닌 심정지라고 하니 기다려보자라는 말들이 오갔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현장에서 심정지로 분류된 환자 대부분 사망판정을 앞두고 있다는 걸 사회팀 기자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마음을 이태원에 보낸 채 뜬눈으로 밤을 샜다.새벽 내내 언론은 참혹한 참사현장을 빠르고 생생하게 전달했다. 빠르고, 생생해선 안 될 것들이었
안다만의 회색바람까마귀
2004년 12월26일,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한 쓰나미로 15만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 쓰나미는 리히터 규모 9.0으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강력했다. 피해를 본 나라만도 인도부터 베트남까지 12개 국가였으며, 그 물결이 아프리카의 서부 해안에 닿았을 정도였다. 이 참사로 북반구의 매서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동남아시아에 여행을 왔던 관광객들도 속절없이 죽어갔다. 재난은 TV를 통해 실시간 중계되었고, 희생자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하며 초혼했던 시기였다.그러나 이 쓰나미에서 재산을 잃었어도 목숨은 부지한 사
11월 중동이 뜨거운 두 가지 이유
11월 동안 거대한 국제 이벤트가 두 개나 열린다. 하나는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이다. 명실상부 올림픽보다도 더 큰 지구촌 스포츠 축제다. 손흥민과 김민재를 필두로 한국이 역대 3번째 조별예선 통과가 가능할지 기대감에 부풀었다.또 다른 이벤트는 지난 6일 시작해 2주차 진행 중인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다. 1995년을 시작으로 매년 개최해 올해 27번째다. 전 인류가 책임지고 협력해 해결해야 하는 기후위기를 유엔당사국과 기업, 시민사회가 모두 모여 협의하는 매우 중대한 자리다. 2015년 21번째 당사국총회에서 파리협정
공공임대주택 예산 5조7000억 삭감? 반드시 막아야
최근 윤석열 정부는 2023년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전년도 대비 5조7000억원 삭감하는 예산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일 공공임대주택 예산 6993억원을 보전하는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조원 삭감하자는 말과 다름없어, 정부 예산안과 도긴개긴이다.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반지하 참사를 두 거대 양당이 모두 까맣게 잊은 모습에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공공임대주택이 아닌 민간 주도 개발을 활성화하고 종부세법인세 등 재벌과 다주택자의 세금을 감면하는 조치가…
불매운동의 피해자들
최근 한국 친구와 함께 저녁을 먹은 후 친구가 후식은 파리바게뜨에서 먹자고 했다. 파리바게뜨 점주가 지인인데 갑자기 매출이 떨어져 도와주고 싶다는 것이다. 가보니 역시 매장에 손님이 없고 곧 영업 마감 시간인데 많은 빵이 남아 있었다. 점주는 케이크와 커피를 주문한 우리를 보고 힘없이 웃어줬다.SPC 계열사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숨진 사고를 계기로 시작한 SPC 상품 불매운동의 영향이다. 한산한 파리바게뜨 매장을 보고 점주는 무슨 죄냐고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파리바게뜨 가맹점…
뉴스레터와 페이월이 실패하는 이유
말콤 글래드웰 같은 스타 작가들을 앞세워 야심차게 출범했던 메타(페이스북 운영사)의 이메일 뉴스레터 서비스 불리틴(Bulletin)이 1년 반 만에 문을 닫기로 했다. 이 분야의 원조 스타 서비스인 서브스택은 구독자 100만명을 넘기며 승승장구한다는 소식을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자금조달 계획에 차질이 빚어져 감원에 돌입했다고 한다.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디지털 경제뉴스 매체 쿼츠는 3년 만에 디지털 유료 구독(페이월)을 폐기하고 무료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유료 구독 모델을 완전 폐기하고 광고 모델로 회귀하는 셈이다. 최근 쏟
2022 '댓글' 교육과정
교육부는 2022 개정교육과정 시안에 대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지난 8월30일 국민 참여 소통 누리집을 개설하고 15일간 의견을 수렴하였다. 누리집은 2022 개정교육과정 총론과 교과 교육과정 시안, 개발 지침 등을 제공하고 국민의 판단을 돕고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교육부는 수렴된 의견을 교육과정 개발진에게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국민 참여 방식이 최선이었을지 의문이 남는다.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댓글 등의 방식으로 표현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가치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
언론은 그들을 외면했지만
우리는 부품처럼 사용되다가 어느날 갑자기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교체됩니다., 법원에서 근로자 지위가 인정된 후 정규직 노동조합에 찾아가 노조 가입 절차를 문의했더니 우리는 아직 프리랜서라서 가입이 안 된다고 거절당했어요., (비정규직들이 법률 대응에서 승소하는 사례가 생겨서인지) 갑자기 멀쩡히 출근하던 회사에 나오지 말고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라더군요. 괴롭혀서 내보낼 생각일까요?며칠 전 국회에서 열린 방송 비정규직 토론회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무려 6명에 이르는 현장 노동자들이 증언을 위해 참석한 것. 토론자로 참석했던…
국가발전과 최태원 회장, 그리고 SBS
볼만한 게 없는지 탐색하면서 TV 리모컨을 열심히 누르다가, 익숙하지만 낯선 얼굴을 목격하고 엄지손가락 운동을 멈췄다. 예능 속 유명 연예인들과 나란히 앉아 토크를 주고받던 사람. 출연자들은 그를 단장님이라 부르며 여느 방송인 대하듯 했지만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방송인 전현무, 가수 이찬원 등 방송에서 흔히 보는 인물들과 MC석에 앉아있던 사람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었다.해당 방송은 SBS 예능 프로그램 식자회담으로, 최 회장은 식자단장이란 역할로 출연해 진행을 맡았다. 주제는 국가발전 프로젝트로 추진되는 한식의 세계화였는데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