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의 ‘권력행’이 남긴 과제
한 방송사 간부 기자의 ‘청와대행’이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언론인의 청와대행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거의 일상화된 느낌이다. 직전까지만 해도 정부와 사회를 감시·비판하는 언론의 공적기능을 수행하던 기자들이 하루아침에 정부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겨 정부의 논리를 대변하고 언론을 역비판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놀라움과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일각에서는 이를 언론의 위기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하기도 한다. 언론이 당면한 위기를 거론하면서 급변하는 미디어환경이라는 외부적 요인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변화
왜 떳떳한 돈을 몰래 관리했을까
몇 달 전, 후배들을 만난 자리에서 술값으로 호기롭게 40만원을 결제했다가 아내에게 추궁을 당한 일이 있다. 내 핸드폰에 저장된 카드결제내역 문자메시지를 본 아내는 결제금액보다 그 돈이 어디서 났는지 따졌다. 그 돈은 월급을 부부공동의 생활비 통장으로 보낼 때마다 몰래 조금씩 떼어 모아둔 비자금이었다. “꼭 써야 할 때 궁색해 보이기 싫었다”고 변명했지만 “꼭 필요할 땐 군말 없이 줄 테니 말을 하라”는 핀잔만 들었다.‘정당한 비자금’은 존재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어느 모로 봐도 정당하다는 말은 비자
선대의 유업에 사로잡힌 동북아 정치
최고 권력자들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자기 가문의 유업을 이루기 위해 역사 역주행의 가속 페달을 밟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최근 한반도와 그 주변의 답답한 상황이다.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가 큰 맥락에서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의 뜻을 이어받는다는 의미의 유훈통치를 펼치고 있다. 인민들에게 김일성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려는 듯 할아버지의 걸음걸이와 연설 제
‘좋아하는’ 일과 ‘작은’ 성공
최근 동덕여대에서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다. 2학년 학생 450명을 대상으로 한 교양강의였는데, 당연히 처음에는 사양했다. 여고 문예반 시화전에 초대받았다가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돌아왔던 고교 시절의 참사가 생각나서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소위 ‘헬조선’ 시대를 살고 있다는 우리 시대의 청춘들에게 줄 수 있는 도움말이 아득해서였다는 게 정직한 이유일 것이다.특강 청탁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곳은 통영의 작은 출판사, ‘남해의 봄날’이었다. 얼마 전 기사로도 인용했지만, 2년 전 경남 통영의 이 작고 예쁜 출판사를 찾아간 적이
싸이월드 : 흔적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글렌굴드의 골든베르그 변주곡은 한동안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20여 년 전 우리 집엔 무려 100장이 넘는 클래식 전집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사건’이 있었다. 새롭게 일을 시작한 엄마 친구가 장기할부로 떠맡기면서 엉겁결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교향곡보다는 독주에 끌렸고, 유독 글렌굴드의 피아노 음반에 손이 갔다. 피아노 소리 저 어디선가 흐느낌이 들려 귀신 소리인지 환청인지 싶고, 특히 밤에 혼자 들을 때면 살짝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음반, 이른바 ‘굴
금융 vs IT : 융합없는 핀테크 정책
핀테크(FinTech) 열풍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핀테크란 금융을 뜻하는 파이낸셜(financial)과 기술(technique)의 합성어. 모바일 결제 및 송금, 크라우드 펀딩 등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금융 기술을 말한다.미래 부가가치 산업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핀테크를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 애플과 한국 삼성이 각각 모바일 결제 서비스인 ‘애플페이’와 ‘삼성페이’를 내놨고, 구글과 페이스북도 자체 금융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은 핀테크의 결정판으로 통한다. 미국과 일
세실과 쿠르디 그리고 국제여론
국제부에서 일하다 보면 보도사진의 위력을 실감할 때가 적지 않다.전쟁과 기아, 시위, 환경오염, 자연재난 등에 대해 장문의 기사나 보도영상을 쏟아내도 꿈쩍도 하지않던 여론이 스틸사진 한 장에 성난 파도가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쿵저러쿵 장황하게 떠드는 것보다 사진 한 장이 사건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최근 시리아 난민 꼬마 에이란 쿠르디를 통해 다시 한 번 사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가족과 함께 소형 고무보트를 타고 유럽행 피난길에 올랐던 세 살배기 쿠르디는 터키 휴양지 보
모든 성범죄가 ‘김길태’ ‘조두순’은 아닐텐데
성범죄와 관련된 기사는 매일 오전 열리는 편집국 회의에서 가장 채택되기 쉬운 주제다. 그동안 성범죄 처벌에 관대했다는 전국민적 반성은 현재진행형이다. ‘조회수’로 이어지는 공분(公憤)을 확보하기도 수월하다. 기사의 방향은 미리 정해져 있다. 형량이 상대적으로 낮아 보이면 법원을 비판하면 되고, 형량이 적당하다 판단되면 범죄자를 ‘죽일 놈’으로 만들면 된다. 앞의 경우에는 ‘솜방망이 판결’, 뒤에는 ‘인면수심 성범죄자’라는 제목이 달릴 것이다.언론이 ‘조회수’를 먹고 살듯이 ‘표’를 먹고 사는 국회의원들의 인식구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와 경영계는 노동개혁을 할 생각이 있나
보수-진보, 노-사, 여-야 모두 저성장과 고용대란을 해결하려면 노동시장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노총도 결국 노사정위원회 복귀를 결정했다. 하지만 노동시장 개혁에 성공할 것으로 낙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지 않다. 최경환 부총리는 최근 언론사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가 내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인 10일까지 노사정위원회가 노동시장 구조개혁 관련한 합의를 이뤄달라”고 공개 요청했다. 노동시장의 질서를 새로 짜는 중차대한 논의를 불과 열흘 안에 끝내라는 억지다. 노동계에서는 벌써 고무도장 역할이나 하라는 얘기
문화부 기자가 ‘회장님’을 부러워할 때
군산에 다녀왔다. 국립중앙도서관(관장 임원선)의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 프로그램 때문이었다. 인문 강연과 현지 답사를 병행하는 연간 프로그램인데, 8월 강연이 기자의 차례였다.일제강점기와 근대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대표적 개항지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8월의 공간으로 어울린다는 생각이 가장 컸지만, 군산을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는 한 잡지 때문이었다. LS네트웍스가 계간으로 발행하고 있는 무가지 ‘보보담’이다. ‘보보담(步步譚)’은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는 뜻. LS네트웍스가 프로스펙스, 몽벨, 잭 울프스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