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숨의 기록
회사 개인 메일함에 한 통 독자 편지가 왔다. “저출생 대책만 세울 일이 아니네요. 태어난 아이를 어떻게 지킬지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각도에서 볼 수도 있구나’, 머리를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지난 7월23일 ‘관악구 영아 살해’ 용의자 남녀가 체포됐다는 단독 기사를 쓴 뒤 짧은 숨의 기록을 구상했다. ‘천륜을 저버린 부모의 행동에도 이유는 있지 않을까’ 의문이 들었다. 구청은 이들과 경제적 어려움 등 이유로 총 29건 상담·사례관리하며 만났다. 학대 정황을 발견한 이는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던가.취재를 하며 처음 알았다. 영아
故 최숙현 사태, 그 후 60일
기자를 시작하고 강산이 한번 바뀐 시간, 대체 몇 번의 스포츠 (성)폭력을 목격한 걸까. 경기력 향상을 빙자한 군기 잡기나 욕설·손찌검, 단체 합숙소 생활에서 불거진 성폭력과 가혹행위 등 대서특필된 사건만도 열 손가락에 꼽기 어렵다. 그때마다 여론은 들끓고, 체육 기관들은 고개 숙이고, 얼렁뚱땅 급조한 대책들을 쏟아냈다. 스포츠 폭력이 훑고 간 자리엔, 구별도 어려운 비슷한 이름의 기관이 우후죽순 생겼다. 스포츠인권센터, 스포츠 4대악(惡) 신고센터, 클린스포츠센터…. 반짝 태어난 기관들은 용두사미, 어김없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고
기초의회 의장단 업무추진비 분석
“기자님, 아직도 하세요? 정말 징하네요” 한 기초의회 사무처 직원의 불만 섞인 농담이 기억납니다. 시작은 기억나지 않지만 3년 전부터 분기마다 기초의회 의장단 업무추진비를 정보공개청구로 감시해오고 있습니다. ‘왜 하필 국회도 아니고 기초의회를 감시하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 국회의원은 이미 언론과 시민단체로부터 업무추진비, 정책개발비, 정치후원금 등 대부분의 예산 집행을 감시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실생활과 맞닿아 있는 기초의회는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기초의회는 감시의 사각지대에 숨어서 혈세인 업무추진비를
돌고 도는 폐기물… '불법의 고리' 추적
지금, 포털에 ‘불법 폐기물’을 검색하니 6만5000개 넘는 기사가 쏟아집니다. 이 중엔 제가 쓴 것도 꽤 있습니다. 사실 불법 폐기물은 어디나 널려있고, 대충 규모가 된다 치면 그때마다 부단히 쓰레기 산에 기어올랐습니다.‘불법 폐기물에 불이 나고, 투기범은 달아나고.’ 문득 든 기시감에 처음엔 사건을 낮잡았습니다. 거기서 거기인 폐기물 기사가 떠올라, 참고하려, 예전 쓴 기사들을 죽 훑었는데 어쩐지 조금 부끄러웠습니다. 화면 속에서 저는 한껏 찌푸리고 쓰레기를 들어 올렸으나, 늘 그러고는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작정하고 ‘김…
고적과 식민지 관광
취재는 ‘왜 우리 성은 사라져가고 왜성은 살아남았을까’라는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자신들의 전승지 위주로 고적(古蹟)을 지정해 문화재로 보호했고,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우리의 많은 성들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혼란기에 사실상 거의 다 파괴됐습니다. 이번 방송은 광복절을 맞아 우리 문화재 속 일제 침략 유산을 주제로 마련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문화재 체계의 근간이 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고적 지정 과정을 쫓았습니다. 더불어 식민지 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성찰과 연구 없이 관광자원화라는 근시안적…
JTBC '이스타항공 이상직 일가' 보도… 편법증여 의혹, 배임 등 문제점 입체적으로 보여줘…
359회 이달의 기자상은 근래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언론사간, 중앙과 중앙, 지방과 중앙, 지방과 지방간 수상 경합이 치열했다. 코로나 2차 팬데믹 조짐과 그로부터 파생된 정치·경제·사회 이슈들, 잇따른 수도권의 수돗물 파동, 늘 문제로 대두되는 비리 의혹 사건 같은 기본적인 이슈들 외에도 일선 기자들의 이슈에 대한 속보 취재와 언론사로 날아드는 제보들, 신선하면서도 밀도 있는 기획취재까지 더해져 지면과 방송전파를 통해 다뤄지는 기사량이 어느 때보다 풍성했던 탓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취재보도와 기획보도 등 이달의 기자
검찰·국세청 고발 이끈 '이상직 일가 의혹'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달의 기자상 시상식 순간에도, 노동자들은 국회 앞에 모였습니다. 나 몰라라 하던 이상직 의원에게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했습니다. 상식의 문제입니다. 2015년 말, 당시 10대와 20대였던 이 의원 아들딸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습니다. 직후 사모펀드 등에서 약 100억원을 빌려 이스타항공 경영권을 인수했습니다. 누가 한 걸까요.이스타항공 2대 주주 역시 페이퍼컴퍼니였습니다. 회사 대표는 이 의원의 형입니다. 그는 자신이 대표란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유명 갈비업체 송추가마골 고기 빨래
영상 내용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습니다. 버려야 할 고기가 새 고기로 둔갑하는 과정이 담겼습니다. 폐기해야 할 고기를 소주와 새 양념에 헹궈 파는 행위를 직원들은 ‘빨아 쓴다’는 은어로 불렀습니다. 대형 갈비 체인 송추가마골의 지점에서 벌어진 ‘고기 빨래’ 사건은 한 직원의 용기 있는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생생한 제보 영상들을 손에 쥐고도 쉽사리 보도하지 못했습니다. 큰 파장이 내다보였기에 정확한 보도를 위한 고민이 깊었습니다. 영상이 만들어진 경위, 영상에 담기지 못한 ‘고기 빨래’ 과정의 전모, 이런 재가공 행위의
국내 첫 수돗물 유충 사태
욕실에서 5살 첫째가 물었다. “아빠 치카 물 마셔도 돼?” 아이는 양치 후 입을 헹구고도 수돗물을 머금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망설임 없이 “안 된다”고 했다. 나조차 수돗물을 작정하고 마셔본 기억이 없었다. 어릴 때 양치를 하다가 수돗물이 식도로 잘못 넘어간 적은 있다. 커서는 매달 돈을 내며 쓰는 정수기가 집에 있는데 굳이 수돗물을 들이켤 이유가 없었다. 내가 하지 않은 행위를 딸에게는 해도 된다고 할 아빠는 없다.요즘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고도정수 과정을 거친 수돗물은 안전하니 마셔도 된다고 홍보한다. 서울시는 ‘아리수’를,…
내일의 대학, 대학의 내일
예상치 못한 때,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온라인강의는 대학가를 점령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국내 4년제 대학 10곳 가운데 9곳이 온라인강의만으로 한 학기를 마쳤다. 대학마다 혼란이 이어졌고, 학생들은 급기야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잦은 접속 불량과 과제 폭탄, 시험에서의 부정행위까지 온라인강의로 맞닥뜨린 현실은 부정적인 것 투성이다. 그러나 과연 온라인강의가 문제일까? 코로나19가 장기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고, 온라인강의의 효용성과 낮은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반복해서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