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근한 할머니 밥상… 계란초밥·제육볶음 한입에 와앙~
입 짧은 미식가. 신문사에 입사하고 처음으로 생긴 별명이다. 겨우 수습을 뗀 후배에게 숨겨진 맛집을 알려주겠다며 초밥집에 데려간 선배는 내 젓가락질이 몇 번 가지 않아 멈추는 것을 보고 잊지 못할 별명을 지어줬다.애석하게도 미식가는 아니지만 입이 짧은 것은 맞다. 먹는 과정에 수고 들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에 갑각류도 잘 먹지 않는다. 한 마디로 식사에 큰 흥미가 없다는 뜻이다. 백반은 다 비슷하고 제육볶음이라면 으레 같은 맛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편협한 생각은 수원 행궁동 할머니네집을 방문하면서 깨졌다. 행리단길, 우영
[기슐랭 가이드] 전주 완산구 들깨삼계탕
날도 더운데 몸보신이나 하러 갈까?35도가 넘는 푹푹 찌는 여름날 가만히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흐른다. 밥을 먹어도 허전함을 느끼고 온몸이 축 늘어진 채 기운이 없다. 머릿속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뜨끈하고 기름진 국물에 야들야들한 닭고기를 소금에 찍어 먹으면 없던 기운도 솟아날 것만 같다. 맛의 고장이라고 불리는 전주에서 토박이로 살아온 기자도 여름철만 되면 떠오르는 집이 있다.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에 위치한 청학동들깨요리다. 복날을 앞두고 가게 안은 이미 대기 손님으로 꽉 찼다. 들깨 삼계탕과 일
매일 전주서 콩나물 직송… 서울서 느끼는 얼큰한 국밥
정 반장, 오늘 점심때 해장이나 합시다.국회를 출입했던 5년 전 여름으로 기억한다. 모 의원실 보좌관의 이 한마디 덕분에 인생 해장국을 만났다. 국회 본청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간 곳은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인근 전주본가 콩나물국밥(서여의도)이었다. 맛의 고장 전라북도 전주 출신인 기자를 배려한 이 보좌관의 식당 선택일까. 기자는 나름 콩나물국밥 전문가라 자부한다. 전주에선 세 곳의 콩나물국밥 식당이 유명하다. 담백한 삼백집, 얼큰한 현대옥, 깔끔한 왱이콩나물국밥집. 삼백집은 팔팔 끓인 콩나물국밥의 대명사고 현대옥은 무한리필
즉석에서 갈아낸 콩, 두툼한 면발과 함께 후루룩
경남신문 뉴미디어부 기자가 지난 2월부터 연재를 시작한 동네 맛집 소개 코너가 있다. 기획명은 이먹반먹. 이건 먹어야지 반드시 먹어야지란 뜻이다. 이 코너에선 창원 토박이인 기자가 감히, 실패가 없을 만한 동네의 숨은 맛집을 소개한다. 때론 선후배 기자의 추천 맛집도 함께 찾아간다. 보통 기자와 VJ가 함께 식당을 방문하는데, 식당 사연을 인터넷 기사로 전하고, 영상도 경남신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싣는다. 밝힌 적은 없지만 모두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이다. 일절 대가는 없다.최근 찾은 식당 중 한 곳은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
경북 추어탕의 한결같은 맛… 단골들과 삶의 여정 같이해
대구 상주식당은 경상도식 추어탕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노포(老鋪)다. 대구 동성로 뒷골목 전통 한옥을 개조한 상주식당은 고풍스러운 멋을 잘 간직하고 있다. 상주식당 추어탕의 매력은 경상도식 추어탕이 가진 깔끔한 맛 그 자체다. 달콤한 배추와 갈아 넣은 미꾸라지, 마늘, 집간장으로만 맛을 냈다. 초기에는 소곱창을 3~4점 넣어 영양보충을 하도록 했으나 요즘에는 소고기 사태살을 갈아 넣어 영양가를 높였다. 배추는 얼갈이배추로 고랭지 배추만 쓴다. 미꾸라지도 당연히 최상급 국내산이다.추어탕과 밥, 양념김치, 백김치, 제피가루, 다진 풋
조개크림스튜·야채카레 리조또... 석양 보며 와인 한 잔 곁들이면?
허기에도 속도가 있다. 이 식당은 다급하고 절박한 허기에는 적당하지 않다. 사장님이자 셰프는 한 사람. 빠르고 신속한 것이 없는 가게,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끄트머리에 위치한 가고 싶은 선리네다. 또 없는 게 있다. 이 메뉴 주세요라는 손님들의 말소리가 없다. 메뉴판 대신 벽에 분필로 적어 놓은 음식은 다섯 가지. 하지만 이곳을 몇 번 와본 손님이라면 메뉴판에서 음식을 고르는 대신 사장님에게 추천받는 게 좋다는 걸 안다. 얼마 전 방문했을 때는 조개크림스튜 조금과 야채카레 리조또를 준비해보겠다는 사장님의 추천대로 식사를 했다. 감태
봄나물·홍합밥 기막힌 조화… 건강 밥상의 진짜 매력
마라탕, 매운 떡볶이 등 자극적인 음식들이 인기가 있는 요즘, 가끔은 담백하고 건강한 맛이 그리워진다. 거기에 운치가 더해지면 금상첨화. 한쪽으론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집무실 및 관저였던 청와대가 자리해 있고, 다른 한쪽으론 고풍스러운 북촌 한옥마을이 들어서 있는 맛집. 청와대와 한옥마을의 중간 지점인 서울 종로구 삼청동 88-23에 청수정이란 한식당이 있다.옛 주막을 떠올리게 하는 목재 간판에선 왠지 만만치 않은 맛집의 기운이 느껴진다. 역시나 입구 메뉴판에는 40년 전통의 맛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봄부터 초여름까지 특히 생각나
[기슐랭 가이드] 시원한 된장 육수 속 자리돔… 뼈째 씹어먹는 고소함
제주도 갈 건데 맛집 추천해줄 수 있어? 쉬는 날이 제법 껴있는 5월. 휴식을 취하고 싶지만 해외는 부담스러운 기자들이 선택하는 여행지는 제주다. 서울살이가 익숙해도, 본가를 제주에 둔 사람으로 맛집을 소개해달라는 질문에는 언제나 고심하게 된다. 단, 5월부터 7월까지는 예외다. 더워지는 날씨에 입맛과 일할 의욕을 잃은 기자들에게 추천할 자리돔 물회가 있기 때문이다. 5월부터 제주에선 자리돔 철이 시작된다. 산란기를 지난 자리돔은 뼈째 먹어도 될 정도로 연하다. 주로 물회로 먹는데, 초장 대신 된장을 푸는 것이 특징이다. 요새는 육
세숫대야 만한 그릇에 가리비·물총조개 가득… '조개 반 칼국수 반'
식도락가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맛집을 하나만 추리는 건 매우 어렵다. 먹는 사람의 기호와 식성, 알레르기 여부는 물론 그날의 조명, 온도, 습도, MBTI까지 고려해 10개를 추려도 변덕스러운 입맛을 만족시킬까 말까여서다. 고민 끝에 최대한 호불호가 적은 대중적인 음식들을 후보로 올렸다. 이 중 어디서든 찾기 쉬워야 하고 줄을 오래 서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조건을 추가했다.해운대31cm해물칼국수는 지름 31cm의 세숫대야 같은 넓은 그릇(2인분 기준)에 홍합, 가리비, 물총조개 등 온갖 조개류를 아낌없이 넣은 칼국수 집이다.
[기슐랭 가이드] 서울 용산구 모로코코
경사진 해방촌의 긴 골목을 걸어올라가다 보면 다음번엔 꼭 택시를 타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모로코코가 나타난다. 칠판에 분필로 휘갈겨 쓴 영어 메뉴판에서 모로코 오버 라이스를 찾아 주문하면, 잠시 후 정직하게 밥 위에 채소와 닭다리를 얹은 음식이 나온다.이 음식의 또 다른 이름은 망각일 거다. 먹고 나면 다음에 또 와야겠다는 기억만 남아 다시 올 때 택시를 타야 한다는 걸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모로코코의 모로코 오버 라이스는 말 그대로 찰기가 없는 쌀 위에 채소와 메인 디쉬를 올린 음식이다. 메인 디쉬는 치킨과 양고기, 새우, 비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