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잘 만들수록 손해인 구조 벗어날 수 있을까

[언론 다시보기]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어떤 산업은 잘할수록 손해를 본다.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수록 적자가 쌓이는 한국 방송이 지금 그렇다. 19일 공표된 2025년 회계연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을 살펴보면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2025년 방송사업매출은 18조6495억원으로 3년 연속 줄었고, 방송광고매출은 한 해 만에 12.3% 빠졌다. 지상파는 3년 연속 영업손실에 적자 폭마저 커졌다. 방송이라는 산업을 지탱하던 광고라는 기둥의 붕괴가 가파르다.

홍정도 중앙홀딩스 부회장이 15일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빌딩에서 중앙그룹 계열사 기업회생절차 신청 관련 기자회견을 한 뒤 퇴장하고 있다. /뉴시스

따져 보면 방송 콘텐츠는 그 자체로 돈을 벌어 본 적이 드물다. 좋은 프로그램이 사람들의 주목을 모으고, 그 주목이 광고 수익으로 환산되어 돌아왔다. 문제는 이 선순환의 고리가 깨지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회수하지 못한 비용은 모두 적자로 남는다. 이런 판에서는 가장 의욕적으로 투자한 사업자부터 먼저 벽에 부딪힌다.


무엇보다 제작비 투자 규모가 2021년 이후 증가세가 꺾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인건비 등 콘텐츠 제작 비용의 상승 압력이 큰 상황에서도 투자가 둔화된다는 것은, 이미 방송사들이 제작 투자를 줄이는 방식으로 생존 전략을 짜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합리적인 경영을 위한 답이 콘텐츠를 덜 만들기로 수렴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콘텐츠 제작이라는 위험을 떠안던 국내 주체가 줄어든다는 점이다. 글로벌 플랫폼이 일정 부분 대안이 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수혜의 범위는 좁고, 많은 경우 국내에 지식재산권(IP) 같은 핵심 자산을 남기기 어려운 조건이 따라붙는다. 당장의 위기를 넘기려 더 큰 미래 위기의 씨앗을 키우는 형국이다.


이러한 변화는 그동안 우리가 당연히 여기던 몇 가지 전제를 흔들고 있다. K-콘텐츠는 지금의 K-컬처 확장을 가능하게 한 핵심 기반이다. 그중에서도 한국 문화를 가장 매력적으로 보여주었던 드라마와 예능의 생산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다른 축을 세우지 못한다면, 우리가 누려온 K-컬처의 성장도 허상처럼 사라질 수 있다. 개별 사업자가 축소된 시장에 적응하는 사이, 그동안 쌓아온 전문 인력의 암묵지는 제한된 제작 기회 속에서 약해질 수 있다.


더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후발 주자의 매서운 추격이다. 중국 사극이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고, 소셜미디어에는 중국 숏드라마 클립이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고 있다. 중국 배우를 향한 국내 팬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이미 우리는 모바일 게임에서 중국 기업에 경쟁력의 열위를 경험한 바 있다. 영상이라는 생태계에서 주목과 비즈니스의 구조 자체가 다시 한번 바뀌는 시기에, 우리가 숏폼 전환에는 한발 늦은 후발 주자라는 점을 뼈저리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안적 축은 결국 주목이 옮겨간 자리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시선은 유튜브와 숏폼, 소셜미디어로 옮겨갔고, 그곳에서는 누가 얼마나 보았는지가 방송보다 또렷하게 측정되고 거래된다. 광고비도 그 측정 가능한 주목을 따라 움직였다. 그 흐름에 ‘IP’라는 이름이 붙는다. 다만 이를 ‘IP로 돈을 벌자’는 말로 좁히면 길을 잃는다. IP 굿즈로 거두는 수익은 방송 영역에선 아직 미약하기 때문이다. IP가 말해주는 것은 차라리, 산업의 무게중심이 개별 콘텐츠 성과에서 그것이 모은 주목의 연계와 확장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송이 다시 살아날 자리가 있다면, 무엇을 만들 것인가 만큼이나 콘텐츠가 IP 생태계 안에서 어떻게 성과로 돌아오는지를 다시 설계하는 일 안에 있을 것이다.


미디어는 늘 변해 왔다. 한동안 신문의 위기를 말했지만 지금은 그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옛 모습 그대로는 아니어도 저마다 살아남을 자리를 찾아갔기 때문이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하면 기존 미디어는 자기 기능을 다시 짜며 제자리를 찾는다. 변할 여지를 주지 않은 채 옛 모습에 묶어두고 살아남으라 하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 지금 방송이 처한 곤경의 뿌리에는, 토대가 무너지는 동안에도 그 변화를 제도와 정책이 따라가지 못한 시차의 문제가 놓여 있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물론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방송산업이 성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채널에 모이던 주목이 줄어들었다는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미국에서도 이미 ‘피크(peak) TV’ 시절을 추억하듯, 한국의 TV 방송 사업 역시 높은 제작비를 투입하며 성장하던 시기는 지났음을 인정해야 한다. 기존의 과잉과 과열을 덜어내고 몸을 가볍게 한 뒤에야, 주목이 옮겨간 자리에서 새 쓸모를 더해 다른 형태로 살아남는 길이 열린다. 이를 위해 제도와 정책 역시 과감한 재편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 손해가 아니라 이익이 되도록 셈법을 다시 짜야 한다. 그 출발점에 서기까지, 우리는 이미 너무 오래 미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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