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그룹이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12일 JTBC가 206억원 규모의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했고, 사흘 뒤 중앙홀딩스, 콘텐트리중앙, 메가박스중앙 등 중앙그룹 계열사들이 무더기로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220억원의 기업어음을 막지 못한 중앙일보 역시 기업재무구조개선(워크아웃)을 요청하는 등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한 것이다.
5월 사옥 매각 추진 등 위기설이 흘러나오더니, 끝내 그룹 주요 계열사들이 법원에 보호를 요청하는 상황에 이르자 내부 충격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JTBC와 중앙일보 임직원들의 법인카드도 사용이 중단됐는데, 올해 북중미 월드컵에 사운을 걸다시피 했던 JTBC의 현장 파견 인력들은 “자칫 거리에 나앉아 중계해야 할 판”이라며 술렁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전통 미디어 산업의 위기는 어제오늘 문제는 아니지만, 이른바 ‘조중동’의 한 축으로 여전히 큰 영향력을 가진 중앙일보와 JTBC 등이 재무적 위기에 빠진 상황은 체감 정도가 다르다. 미디어 산업 종사자들이 “올 것이 왔다”라며 위기감을 토로하는 이유일 것이다.
‘퍼스트 펭귄’이라 불릴 정도로 중앙그룹은 다양한 콘텐츠에 선도적 투자를 해왔기에 이번 사태는 더욱 뼈아프다. 중앙일보는 일찍부터 온라인 프리미엄 콘텐츠 유료화에 눈을 돌렸고, JTBC는 제작비가 저렴한 정치토크쇼에 집중하는 경쟁 종편들과 달리, 교양·오락프로그램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등 ‘고품질 기업가치 극대화 전략’을 구사했다. 세월호 참사와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JTBC의 굵직한 탐사보도들이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언론의 가치에 값하는 것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JTBC 콘텐츠 지식재산권(IP)을 넘겨받은 SLL중앙 상장 시도, 재판매 수익을 기대한 올림픽과 월드컵 등 스포츠 이벤트 중계권 매입 등 경영진의 공세적 투자가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졌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우리는 결과적으로 ‘오판’이 된 경영 판단의 책임을 묻기에 앞서 좋은 콘텐츠로 수익을 내겠다는 그룹의 전략이 도로(徒勞)에 그치게 된 환경 변화에 주목한다. 스마트폰 중심의 시청행태 보편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확산, 전통적 TV 광고시장의 붕괴 등 미디어 시장이 급변하는 과정에서 콘텐츠 흥행을 수익으로 연결할 수 없는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중앙그룹의 위기는 국내 미디어 산업 전체에 “투자하면 할수록 위기에 빠진다”는 딜레마를 각인시킨 셈이다. 이렇게 되면 양질의 콘텐츠보다는 투자 없이도 당장 돈이 될 수 있는 뉴스 콘텐츠 제작을 선호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기후위기나 노동 복지 같은 중요한 사회적 의제들도 주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언론의 공적 기능 약화는 민주주의 위기로 귀결된다. 또한 이른바 K-콘텐츠의 경쟁력 약화도 걱정되는 부분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제2, 제3의 중앙그룹 사태’가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광고와 편성규제 완화 등 국내 미디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불가피한 이유다.
무엇보다 우리는 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이 “고용안정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한 약속에 주목한다. 수많은 종사자의 생계가 달린 문제인 만큼 경영진은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된 경위와 회생절차 과정을 구성원들에게 투명하게 설명하기 바란다. 기업회생 과정에서 최우선 원칙은 종사자들의 일자리 보호가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