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대비하고 있나
흑사병의 재앙은 르네상스를 꽃피우는 계기가 됐다. 고매한 사제도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걸 보며 교회 권위와 신앙에 회의를 가지게 됐고, 점차 합리적 이성에 눈뜨기 시작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의 탁월한 대가들이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도 마련됐다.코로나19는 언론사에도 위기와 동시에 기회를 가져왔다. 잃었던 뉴스 신뢰를 회복하는 데 코로나19가 반전의 계기가 됐다. 확진자가 급증하자 사람들은 빠른 정보보다 ‘믿을 만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특히 안전이나 건강과 직결된 정보는 소셜미디어보다 전통 미디어에
故 최숙현 선수의 명복을 빌며
스포츠 스타에게 어떻게 기량이 늘었느냐 물어보면 “먼지나게 맞으며 배웠다”는 대답이 으레 돌아온다. 남녀 불문, 종목 불문이다. 스포츠 기자를 하면서 1990년대를 휩쓴 연·고대 농구부 오빠들과 2002년 월드컵 태극전사들이 복날 개처럼 두들겨맞으며 컸음을 상세히 알게됐다. 베테랑 여자배구 선수 A는 늘씬한 요정같은 외모와 실력을 겸비했는데 “손찌검은 폭력도 아니다”라고 과거를 웃으며 들려줬다. 열살 때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형태의 막대기의 마찰력을 경험했고, 프로 진출을 눈앞에 둔 고등학교 때는 ‘리시브 1개 놓치면 귀싸대기…
정말 아름다운 것들
영화 ‘찰리와 초콜렛 공장’에서 찰리의 초콜릿 속에 들어있던 마지막 황금 티켓,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해리가 받아 든 호그와트의 입학 허가서. ‘그랜드 부다페스트호텔’의 멘들스 케이크 상자. 어떤 소품은 단 한 장면 스쳐 지나가더라도 관객에게는 영화 그 자체가 되곤 한다. 매주 신간 수십 권이 쌓이는 문화부 공용 책상에 최근 특별한 책이 한 권 도착했다. 윌리 웡카의 비밀스런 초콜릿 공장으로 초대하는 황금 티켓처럼 비밀스런 초대장이 들어 있는 책이었다. 영화와 드라마 전문 그래픽 디자인 아티스트로 활약하는 애니 앳킨스가…
이 비는 장맛비일까
지난 8일, 곧 장맛비가 내릴 것 같아 ‘제주 역대 가장 이른 장마’란 기사를 냈다. 기상청에서 제주도가 10일부터는 장마철에 들어설 거란 전망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세 거짓말을 한 꼴이 돼버렸다. 제주지방기상청에서 장마 시작 시점을 12일로 미뤘고 곧바로 16일로 또 한 번 수정한 것이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다시 10일로 변경되긴 했지만 장마 초입부터 시작 시점이 오락가락하면서 오류 기사를 쓴 건 아닌지 진땀을 뺐다.장마철의 본격 시작과 끝, 장마의 시종(始終)은 태풍과 함께 여름철 주요 관심사 중 하나이다. 그런데 올
물이 빠질 때, 누가 옷을 입고 있었나
위기가 오니, 또 터졌다. 불완전판매 이슈 말이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세계경제가 흔들린 지난해부터 독일국채연계증권(DLF), 라임펀드에 이어 각종 사모펀드들이 손실을 내면서 가입자들이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라임펀드의 경우 매니저가 펀드의 돈을 빼돌리고 수익률을 조작하는 희대의 불법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긴 하지만, 판매단계에도 문제가 있었음이 금융당국의 조사에서 드러나고 있다.2008년 금융위기 이후 키코사태를 계기로 ‘불완전판매’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누구나 아는 말이 됐지만 처음 이 용어를 접
재판 보도와 언론의 기준
지난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5부는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임성근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임 판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 개입해 청와대 입장을 반영하도록 한 사실 등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만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볼 수 없다.”라며 무죄로 판단했다. 이 판결이 나왔을 때 임 판사의 결백이 밝혀졌다고 보도한 기사는 없었다. 대부분의 보도는 임 판사의 행위, 즉, 서울중앙지법 형사
남북관계도 자전거처럼… 나아가야 넘어지지 않는다
4월 초에 근속휴가를 냈다. 일요일 밤에 진행하는 연합뉴스TV 북한 전문 프로그램 한반도는 지금이 결방되고 코로나19 특보로 대체되는 일이 반복되자 때는 이때다 싶었다. 막상 휴가를 내긴 했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해외여행은 아예 막혔고 국내 관광명소도 문을 닫은 곳이 많았다. 고민 끝에 자전거를 타고 부산에 가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소망목록(bucket list)’에 담아두었던 자전거 국토종주를 실행에 옮기기로 한 것이다.자전거길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4박 5일 여정에서 하루 평균 만난 사람은 3~4명. 식당 이모님과 모텔
샤넬 오픈런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샤넬 클래식 미디엄 백’은 715만원이었다. 며칠 전 846만원이 됐다. 하루 새 120만원이 올랐다. 저렴하게(?) 이 핸드백을 사려는 줄이 매장마다 길게 이어졌다. 이태원 클럽발 3차 감염이 처음 확인된 날이었다. 우리 주변에 715만원짜리 핸드백을 쉽게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살짝 드러난 날이었다.(시장경제가 유지되는 것은 진짜 부자와 진짜 가난한 자들이 서로의 넘침과 부족함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 아닐까...) ‘코로나19’는 새로운 일상이 됐다. 삶은 어떻게 바뀔까? 전망이 난무한다. 학자들의 전망은 맞을까? 코
오늘도 외롭게 뉴스룸서 싸우는 그대들에게
언론사에도 ‘위력’은 존재한다. 자기 주관이 강한, ‘대드는’ 후배가 더 좋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진심인지는 모르겠다. 선배들은 이왕이면 자신을 불편하지 않게 만들고, 회사의 분위기에 잘 맞춰가는 후배를 선호한다.그래서 저연차 기자들은 자연스럽게 ‘무조건 ~하라’라는 지시를 마다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회사의 논조를 지키려 한다. 미디어비평지나 시민단체에서 지적하는 ‘문제적 보도’는 그렇게 나온다. 언론사 조직이 수직적이고 위력이 강하게 작용할수록, 기자 개개인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피해를 끼치는 정도도 커지는 셈이다. 언론사
많이 본 뉴스에 걸리면 좋은 기사일까
2017년 아이폰X 공개 전, 일본행 티켓을 직접 끊었다. 도쿄 애플스토어 앞에서 밤을 꼴딱 지새우며 현장 스케치부터 1호 구매자 인터뷰를 했다. 아이폰X도 구매해 언박싱부터 체험기까지 재빨리 썼다. 이후 페이스 아이디가 물 속에서도 되는지 실험도 하고, 갤럭시S9과 비교 기사도 썼다. 이렇게 발품을 팔았는데 아이폰X 관련 기사의 ‘총’ 조회수는 고작 1만5000. 고장 위험을 감수하며 폰을 들고 수영장에 들어갔건만, 이 값비싼 기사의 조회수는 3726건에 불과했다. 반면, 유튜브에 올린 페이스 아이디 수중 실험은 4만7000 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