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영화, 좋아하세요?
만화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는 채소연의 “농구, 좋아하세요?” 한 마디에 농구를 시작한다. 전설의 시작이다. 그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9년 전의 나는 “여성영화,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으면서 여성영화제와 처음 만났다. 강백호는 무작정 농구를 좋아한다고 외쳤다가 농구의 매력에 빠진다. 나는 부족한 ‘밑천’을 들킬까봐 의무적으로 여성영화제에 출석 도장을 찍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그동안 우리가 눈만 돌리면 보이던 영화들, 상영관을 독식하거나 모 영화제의 수상작, 거장의 역작이라고 찬사를 받던 작품들이 얼마나 남성중심적이고…
포털은 뉴스 알고리즘 공개해야
‘드루킹’의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하여 주류 언론사들은 포털이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만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포털의 댓글 관련 정책과 감시 소홀이 댓글 조작을 유도하거나 방치한 책임이 있다는 지적(중앙일보 4월 27일자 30면)은 옳다. 하지만 언론과 정치권이 제기하는 포털 단독 책임론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주류 언론이나 인터넷언론사 모두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를 ‘숙주’삼아(한겨레 5월 9일자 4면) 현장을 취재하지 않은 채 연관 뉴스를 손쉽게 만들어 시간과 비용을 절감
언론의 대북 보도 더 신중해야
4월27일, 마치 한편의 드라마와도 같은, 믿기 힘든 역사적 사건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오랜 갈등 상황을 종식시키고 한반도에 새 시대,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을 남북 두 정상이 제공해 준 것이다. 이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은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지만, 동시에 이 기회를 한 순간에 날려버리지 않도록 온 민족이 지혜를 모아야 할 텐데 하는 초조함도 앞선다. 그 초조함의 한켠에는 언론에 대한 우려가 존재한다. 오랫동안 우리 언론의 북한 보도가 억측과 오보, 왜곡 보도로 점철됐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의 폐쇄성 때문이기도 하
남북정상회담과 저널리즘
평화통일과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보도제작준칙 (1995) 전문에서 “우리는...화해와 신뢰분위기 조성에 기여하기보다는 불신과 대결의식을 조장함으로써 ‘반통일적 언론’이라는 오명을 씻어내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러고도 우리는 냉전저널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해왔다. 그 이유는 시장에서 잘 팔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타파할 결의와 노력이 부족해서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건 민족이었고 진실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의 저널리즘에게 물어보자.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한반도 정세 변화에 대한 보도는 아직도 분쟁 보도
공유자전거 비즈니스와 언론사
중국에 모바이크라는 기업이 있다. 공유자전거 회사다. 요금을 내고 시내 여기저기 있는 대여 장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탔다가 반납하는 모델이다. 대기오염과 교통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서비스라는 의미가 있지만, 이 비즈니스는 사실 그 자체만 보면 돈을 벌기가 쉽지 않다.대여료를 보면 알 수 있다. 30분 빌리는 데 우리나라 돈으로 100~200원 수준이다. 고객에게 받는 돈은 그렇게 적지만, 비용은 많이 든다. 수백만 대의 자전거를 갖춰야하고, 사물인터넷(IoT) 등 최신 IT 기술로 시스템도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불구
여자들은 집에 가지 않는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란의 여성 인권변호사 시린 에바디는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는 투사다. 하지만 그 자신이 1970년대에는 지금의 이란 체제를 만든 이슬람혁명에 동조했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이지만,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한 대부분의 사회가 그랬듯 가부장적이었던 이란에서 에바디는 테헤란국립대학을 졸업하고 법관이 됐다. 회고록에 당시를 회상하는 내용이 나온다. 샤(국왕)를 비판하는 공개성명에 이름을 올린 그에게, 이슬람주의자인 남성 법관이 묻는다. 혁명 뒤의 국가에서는 당신같은 ‘여성’들의 자리가 없을텐데 왜 이 혁명에 동참하느냐고.…
창작과 기사쓰기의 ‘잘못된 만남’
전공을 밝혔을 때 상대가 높은 확률로 전공자의 진을 빼놓는 과가 있다. 철학과라고 하면 어르신들이 ‘사주’를 봐달라고 하거나, 컴퓨터공학과면 상대가 갑자기 컴퓨터 A/S를 문의하는 고객으로 돌변한다.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소설을 전공한 내 앞에서는 왕년의 문학 청년들이 자신의 습작을 고백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썼고 쓰고 싶어한다. 서사 붕괴의 시대라지만 여전히 이야기의 힘은 세다. 그래서일까? 문학적이고 극적인 기사가 연일 쏟아진다. 이런 기사들은 건조한 사실 나열보다 매력적이고 호소력이 짙어 보인다. 그러나 문학적인…
구독률 9.9%와 종이신문의 생존 전략
종이신문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 이를 말해주는 지표들은 많다. 먼저, 종이신문 가구구독률 감소 추세가 멈추지 않는다. 1993년 63.0%였지만 2017년에는 9.9%로 하락했다(1993·2017언론수용자 의식조사). 연령별로 살펴보면 50대(13.7%)와 60대 이상(16.1%)은 두 자리 수를 기록한 반면 30대(4.0%) 20대(3.9%)는 평균값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40대(9.4%)만이 평균값에 근접했다. 둘째, 종이신문 열독률과 열독시간도 감소 추세를 보인다. 2002년부터 2017년 사이에 열독률은 65.4
위베르 뵈브 메리와언론사 사장의 자격
“진실을, 모든 진실을,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 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 르몽드의 창간자, 위베르 뵈브-메리가 한 말로 알려진 이 문구는 실은 논객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샤를 페기가 1889년 쓴 Lettre du provincial에 실린 표현이다. 누군가는 뵈르 메리가 이 말을 평생의 신조처럼 여겼다고 하는데, 그건 확실치 않다. 다만 그 역시 진실을 중시했다. 뵈브 메리는 이렇게 말했다. “저널리스트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존재한다. 비록…
‘미투’를 대하는 언론의 자세
최근의 ‘미투’운동을 취재보도하는 과정에서 언론은 오보를 내거나 2차 피해를 일으키는 등 혼란을 겪고 있다. 어떤 점이 문제인지 간략히 열거해 보자. 1. ‘미투’고발은 본인의 처지에 맞추어 본인 의지로 실행되어야 한다. 언론이 압박해서는 안 된다. 2. 고발자를 찾아 나서고 그 주변을 탐문하는 행위 역시 2차 피해를 불러온다. 3. 피해자의 신원을 밝히진 않지만 사건 장소나 당시의 직업·직무, 피해과정을 소상히 설명해 신원을 노출시켜선 안 된다.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의 사생활은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대상이지 국민의 알 권리의 대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