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 받는 자’의 숙명과 대선 검증
TV드라마를 보다보면 아쉬울 때가 있다. 기자라는 직업이 ‘멋있게’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멋있지는 않아도 좋으니 심하게 나쁘지 않게만 나오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남의 약점이나 캐며 돌아다니는 사이비 기자, 권력이나 자본에 야합해 작은 떡고물을 챙기는 구악 기자가 종종 드라마에 등장하곤 해서다. 반면 사회정의를 위해 고민하는 기자는 최소한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주 제법 실제보다 그럴듯하게 묘사되는 의사나 검사 등과 비교된다. 전직 기자로서 가족들 보기에 민망해 드라마 PD나 작가들에게 “
가짜뉴스와 미디어 수용자 교육
프레임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모든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프레임에 맞는 사실만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의 프레임과 맞지 않는 사실일 경우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더라도 받아들이지 않고 튕겨낸다고 하니 사실, 즉 ‘팩트’라는 걸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언론계의 입장에선 대단히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가짜 뉴스’는 그런 면에서 아주 새로운 일이라고 보긴 어렵다. 어차피 자신의 프레임에 부합하는 정보를 선호하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인지 특성상 해당 뉴
내적 자유 확보가 시작이다
1883년 근대식 인쇄신문인 한성순보가 등장한 이후 한국 언론의 역사는 참 불행하게도 통제의 역사였다.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1948년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제헌 헌법에 따라 정부를 수립한 이후에도 그 탄압은 그치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들 중 일부만 언급해도, 이승만 정권 당시 경향신문 폐간 사건, 5·16 쿠데타 정권 당시 민족일보 폐간과 조용수 사장 사형 사건, 3공화국 당시 신동아 탄압 사건, 유신 정권 당시 동아일보 광고 탄압에 이은 동아·조선 기자 강제 해직 사건, 80년 신군부의 기자 대량 해직 그리고 5공의 보도지침에 이
대한민국의 68혁명을 기대하며
지난 17일,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영장을 기각하자 많은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번 결정으로 한국의 사법부는 정경유착의 질긴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기회를 차버렸고, 법 앞에 만인이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여전히 변치 않는 일부 언론의 ‘삼성 지키기식’ 보도였다. 조·중·동을 비롯, 매일경제나 한국경제, 서울경제와 같은 일부 언론은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부터 마치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이 삼성의 몰락으로 그리고 종국에는 대한민국 경제의 몰락으로 이
곤조 저널리즘 시대, 언론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나
“독일 경찰이 정유라를 잡아서 한국으로 돌려보낼 일은 있겠냐. 독일 국내도 테러 발생 등으로 할 일이 적지 않은데 적극적으로 외국 정부의 요청에 협조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지난해 12월9일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소추한 뒤로 1인당 2만9000원의 망년회의 화제는 대개 ‘최순실 게이트’였는데, 한 고위 공무원은 저렇게 분석했다. 한국 경찰이 정유라씨를 인터폴 적색수배 명단에 올렸다는 뉴스를 보면서 시민의 기대와 달리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의 주요 책임자로 지목된 유병언의 딸 섬나씨가
대통령의 정치소통, 공간과 시간의 틀 선진화해야
2015년 2월이니, 2년 전이다. 필자는 이 ‘언론 다시보기’란에 ‘소통과 청와대, 블룸버그의 불펜’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화를 ‘기대’하며 쓴 칼럼이었다. 그 후 2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최순실 사태로 그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청와대는 필자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 글이 기억나 아쉬움과 허탈함 속에 다시 찾아보았다. 칼럼은 이렇게 시작했다. “소통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래서 ‘소통의 구조’를 어떻게 짜놓느냐가 중요하다. 형식이나 틀이…
촛불이 보여주는 새로운 저널리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및 촛불집회 보도를 지켜보며 저널리즘의 새로운 국면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떠올린다. 심사숙고를 거치지 못한 생각이라 거칠지만 양해를 구하며 열거해 보자. 1. “기계적 중립이 아닌 철저한 중립이 강점”이라는 한 앵커의 인터뷰를 읽었다. 월드컵 축구 한일전, 독도 영유권,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보도에서 한국 언론의 중립은 어딘가? 축구는 이겨야 하고 독도는 우리 땅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막아야 한다. 국정농단으로 지지율 4%에 이른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혁명 앞에서 철저한 중립은 어디인가? 버티려는…
YTN 해직 삼천일
YTN 해직 삼천일.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써내려가기란 예상과 달리 썼다 지웠다를 몇 시간 째 반복하고 있다. 굉장히 많은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막상 내뱉으려면 아무 말도 마무리가 되지 않는 난감한 상황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이 행사는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해직한 때부터 날짜를 세는 건 삼천일까지 와서는 안됐던 것이다. 심지어 이번 행사에선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데, 다큐 내용 중엔 작년에 이 다큐멘터리의 가편집본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그들의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언론도 새로운 질서를 고민해야
국회는 예상을 뛰어넘는 찬성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촛불의 힘이었다. 그래서 지난 10일 촛불집회는 축제였다. 사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 불리는 국정농단을 벌인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촛불들의 비폭력 주장은 세계가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 많은 시민들이 모여 그 정도로 질서 정연하게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시민들이 저항권을 행사하는 동안 또 다른 놀라운 경험을 한 사람들은 기자들이 아니었을까?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절을 통 털어 이런 언론자유를 누린
단군 이래 최악의 정치 추문에 맞선 촛불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표결에 부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 171명은 지난 3일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30일 “야당이 탄핵을 강행하면 장을 지지겠다”고 비아냥댔다. 그는 증거도 있는데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고 있다.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여당의원 29명을 끌어와 국회의원 200명을 채워야 한다. 새누리당의 비박의원들 40명은 흔들리는 갈대 같다. 박 대통령의 제3차 담화에 탄핵 참여를 철회했다가 3일 촛불민심에 놀라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