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보도와 언론사의 생존 전략
탄핵 후에도 광장에선 매주 토요일 촛불이 켜지고 있다. 맨 처음 발언엔 여전히 세월호 유가족들이 마이크를 잡고 있고 이야기를 듣는 집회 참가자들의 눈시울은 거의 예외 없이 붉어진다. 탄핵은 되었으나 광장의 분위기는 탄핵 이전과 달라지 게 거의 없다. 그런데 언론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너나 할 것 없이 세월호 인양을 적극적으로 보도한다. 참사 당시 정부의 보도자료에 근거하여 현장과 동떨어진 보도를 하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상금을 원하는 이들로 묘사했던 언론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언론의 극적인 변신을 보자니 두 가지 생각이 든
탄핵 후에도 광장에선 매주 토요일 촛불이 켜지고 있다. 맨 처음 발언엔 여전히 세월호 유가족들이 마이크를 잡고 있고 이야기를 듣는 집회 참가자들의 눈시울은 거의 예외 없이 붉어진다. 탄핵은 되었으나 광장의 분위기는 탄핵 이전과 달라지 게 거의 없다.그런데 언론의 태도는 확연히 달라졌다. 너나 할 것 없이 세월호 인양을 적극적으로 보도한다. 참사 당시 정부의 보도자료에 근거하여 현장과 동떨어진 보도를 하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상금을 원하는 이들로 묘사했던 언론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 언론의 극적인 변신을 보자니 두 가지 생각이 든다
탄핵 이후, 기자들은?
헌법재판관들은 만장일치로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다. 대통령의 위법 행위보다 위법 행위가 밝혀진 이후에도 헌법 수호나 법치 의지가 안 보인다는 점에서 불가피하다고 보았던 것 같다. 탄핵은 대통령이 저지른 행위에 책임을 묻는 것 못지않게 그런 오류가 다시 반복되지 않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그 논리를 원용하면, 다시 이런 악폐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무능하고 위법한 대통령과 그런 대통령을 앞세워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던 질서를 청산해야만 한다. 촛불 시민들의 ‘이게 나라냐’와 ‘탄핵 이전
우리가 저널리스트에게 바라는 것
지난해 여름, 파리에서 에드위 플레넬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20세기 초의 위대한 르포기자, 알베르 롱드르의 계보를 이어받았다고 평가받는 프랑스 최고의 탐사저널리스트로 1985년 레인보우 워리어호의 침몰에 프랑스 정보기관이 개입한 사실을 밝혀내 당시 국방장관, 샤를르 에르뉘의 사임을 이끌어낸 인물이기도 하다. 2008년 프랑스 최초의 인터넷 유료 독립 매체인 메디아파르트를 창간한 그는 현재 이 매체의 대표이자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온라인 매체의 유료독자는 지난해 12만명에 육박했다. 불과 60명가량으로 구성된 소규모…
헌재는 존재가치를 입증할 것인가
신문과 방송 뉴스를 보기 괴롭다. 어느 결엔가 헌법을 수호하자는 ‘촛불집회’와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자는 ‘반탄집회’는 같은 반열이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80%에 달하지만, 언론은 두 집회를 거의 같은 비중으로 다룬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진영논리로 뭉개졌다. 이것조차 문화적 상대주의인가. 친박세력이 ‘군대여 일어나라’거나 ‘계엄을 선포해야 한다’고 발언하면 고스란히 인용 보도하는 것이 ‘객관적 보도’인가. 박 대통령측 법률대리인 김평우 변호사가 ‘내란’을 언급하거나 헌재 심판 불복을
가짜뉴스에 대항하는 힘
2017년 지구촌 저널리즘의 첫째 화두는 무엇이 될까? 다들 모바일 실시간 방송, 이에 따른 기획 아닌 즉흥적인 모바일 콘텐츠의 개발…. 이렇게 예상했다. 하지만 지구촌 저널리즘의 최대 화두는 현실정치와 맞물리며 엉뚱하게도 ‘가짜 뉴스’로 굳어지고 있다. 미국에 이어 올해 전국적인 선거를 치루는 나라들-한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이 나라들에서 번져나갈 허위보도와 혐오성 막말 파문에 지구촌 언론들은 긴장하고 있고 그 시작은 불행히도 대한민국이다. 가짜뉴스와 관련한 국회 토론회 소식을 전하는…
‘미움 받는 자’의 숙명과 대선 검증
TV드라마를 보다보면 아쉬울 때가 있다. 기자라는 직업이 ‘멋있게’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멋있지는 않아도 좋으니 심하게 나쁘지 않게만 나오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남의 약점이나 캐며 돌아다니는 사이비 기자, 권력이나 자본에 야합해 작은 떡고물을 챙기는 구악 기자가 종종 드라마에 등장하곤 해서다. 반면 사회정의를 위해 고민하는 기자는 최소한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자주 제법 실제보다 그럴듯하게 묘사되는 의사나 검사 등과 비교된다. 전직 기자로서 가족들 보기에 민망해 드라마 PD나 작가들에게 “
가짜뉴스와 미디어 수용자 교육
프레임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모든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프레임에 맞는 사실만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심지어 자신의 프레임과 맞지 않는 사실일 경우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더라도 받아들이지 않고 튕겨낸다고 하니 사실, 즉 ‘팩트’라는 걸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언론계의 입장에선 대단히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가짜 뉴스’는 그런 면에서 아주 새로운 일이라고 보긴 어렵다. 어차피 자신의 프레임에 부합하는 정보를 선호하고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인지 특성상 해당 뉴
내적 자유 확보가 시작이다
1883년 근대식 인쇄신문인 한성순보가 등장한 이후 한국 언론의 역사는 참 불행하게도 통제의 역사였다. 일제강점기가 지나고 1948년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제헌 헌법에 따라 정부를 수립한 이후에도 그 탄압은 그치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들 중 일부만 언급해도, 이승만 정권 당시 경향신문 폐간 사건, 5·16 쿠데타 정권 당시 민족일보 폐간과 조용수 사장 사형 사건, 3공화국 당시 신동아 탄압 사건, 유신 정권 당시 동아일보 광고 탄압에 이은 동아·조선 기자 강제 해직 사건, 80년 신군부의 기자 대량 해직 그리고 5공의 보도지침에 이
대한민국의 68혁명을 기대하며
지난 17일,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 영장을 기각하자 많은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번 결정으로 한국의 사법부는 정경유착의 질긴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기회를 차버렸고, 법 앞에 만인이 결코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여전히 변치 않는 일부 언론의 ‘삼성 지키기식’ 보도였다. 조·중·동을 비롯, 매일경제나 한국경제, 서울경제와 같은 일부 언론은 특검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부터 마치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이 삼성의 몰락으로 그리고 종국에는 대한민국 경제의 몰락으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