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질문의 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노벨문학상의 계절이 다시 지나갔다. 올해 수상자는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 수상 직후 소설가 조경란은 “내가 아무에게도 빌려주지 않은 몇 권의 책이 있다”로 시작하는 글을 조선일보에 보내왔다. 평론가와 소설가 글의 매력이 다른 법이지만, 이번에는 작가의 글을 선호했던 이유가 있다. 노벨상에 대한 관심과 질문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에 대한 두 가지 생각 때문이다. 우선 하나는 ‘노벨상 콤플렉스’의 극복. 2년 전 김기덕 감독이 베네치아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을 때 그런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칸·베네치아·베를린 등 세계 3대…
KB금융에 장기집권을 許하라
KB금융지주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하기야 시가총액 15조원, 총자산 300조원 금융회사의 수장을 뽑는 일이니 ‘나 몰라라’ 할 일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KB금융 회장은 한번도 순탄했던 적이 없었다. 황영기, 강정원, 어윤대, 임영록 역대 회장들이 모두 금융 당국의 징계를 받으면서 불명예 퇴진을 했고 새로 선임되는 과정에서도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나름 금융에 대해서 좀 안다고 하는 전문가들은 금융규제, 낙하산 인사, 관치금융, 조직 내 파벌, 노조의 월권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여기에 한 가지 이유를 더 보
정명훈의 피아노
물방울이 피아노 건반 위를 또르르 굴러간다.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음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집중했다. 아름다웠다. 익숙한 멜로디였지만 전혀 새로운 듯 방안의 공기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드뷔시-달빛’ 달빛이 은은히 비치는 창가, 고요하게 일렁이는 물에 비친 달이 영롱하게 빛나는 순간으로 시작해 ‘쇼팽-녹턴’으로 빛을 뿌리더니 ‘베토벤-엘리제를 위하여’에 이르러 첫 마디에서 그만 숨이 막힌다. 체르니 30번쯤 치게 되면 누구나 친다는 그 흔한 ‘엘리제를 위하여’에서 가슴이 내려앉는 감동을 받다니 어찌 놀랍지 않
중국인의 제주 땅 매입과 무책임한 선동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한 시민단체가 지난 14일 제주도 전체 외국인 소유 토지의 40% 이상이 중국인 소유로 드러나자 원희룡 제주도 지사에 “더욱 거세지고 있는 중국인의 제주도 땅 매입 열풍을 잠재우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다.중국인들이 우리의 소중한 땅을 쓸어담고 있으며 이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큰 일’이 날 수 있다는 우려가 한국 사회에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언론 보도도 이런 기류에 편승하고 있다. 제주도의 중국인 소유토지가 2009년 2만㎡에서 2014년 6월 현재 592만2000㎡로 급증하자 이
검사와 기자의 동병상련…
둘 다 심각했다. 한 바탕 말다툼이 있은 뒤 술잔이 깨질 것 같은 건배. 지난달 한 검사와 가진 저녁 겸 술자리는 서로를 험담하는 목소리로 가득했다. 적어도 그 자리에서는 그에게 나는 ‘기레기’(기자+쓰레기)였고, 나에게 그는 ‘정권에 휘둘리는, 도덕성마저 바닥인 못 믿을 검찰의 조직원’이었다.먼저 포화를 날린 건 나였다. 마침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이 음란행위로 적발돼 검찰이 여론의 뭇매를 맞을 때였다. “하다하다 이제 음란 행위냐”는 게 소위 ‘선빵’(선제 공격)의 요지였다. 섣부른 공격은 반격의 빌미. 지난 몇 년 동안의 일들을
삼성·현대차, 한전부지 인수전 언론 보도 유감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를 겨냥한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인수전을 둘러싸고 언론의 취재경쟁이 뜨겁다. 투자비가 입찰금액과 개발비를 모두 합쳐 10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초대형사업인데, 재계 1·2위 간 경쟁이라는 흥행요소까지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의 흥미위주식 보도가 과연 바람직한지는 따져볼 일이다. 금호는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재계 5위권 진입의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남의 돈을 빌려 대우건설을 비싸게 인수하면서, 금호의 안정성까지 훼손했다. 결국 금호는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무리한 기업
소셜리스트 아닙니다, ‘소설리스트’입니다
‘소설리스트’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소셜리스트(Socialist)가 사회주의자라면, 소설리스트(Sosullist)는 소설주의자라고 우스갯소리를 할 수 있겠네요. ‘소설의 리스트’라는 중의적 의미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글은 ‘소설리스트’에 대한 응원입니다. 소설가 김연수·김중혁, 번역가 김현우·박현주, 서평가 금정연·이다혜, 팟캐스트 라디오 제작자 준, 독자 김준언 등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소설리스트입니다.
DTI 규제완화, 서민·중산층 먼저 생각해야
애초에 서민과 중산층은 안중에 없었다. LTV, DTI 규제를 두고 하는 소리다.LTV는 담보 가치에서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고 DTI는 소득과 부채 비율로 대출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다. DTI 규제는 소득이 없으면 아무리 비싼 담보를 내놓더라도 대출을 못받게 한 제도다. 금융권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던 DTI라는 용어를 국민들이 접하기 시작한 건 2006년 참여정부 시절에 집값을 잡겠다고 DTI를 제한하는 이른바 3.30 대책을 내놓으면서부터다.당시 정부는 DTI 규제를 도입하면서 시가 6억원 이상 주택에만 적용한다
수상한 뮤지컬
공연 시작 전 갑자기 클래식 음악회에서나 만날 법한 ‘헛기침 세레나데’가 펼쳐졌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공연이 시작되자 멀쩡하던 나는 갑자기 사레가 들렸다. 눈물을 흘리며 홀로 가슴을 치다 김준수의 노래, 고음이 폭발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세차게 기침을 하고 말았다. 바로 그때! 일제히 주변 어둠 속에서 나를 향해 꽂히던 싸늘한 시선들. 아니나 다를까. 1막이 끝난 뒤 인터미션, 불이 밝자 이번엔 더욱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내가 무언가 굉장히 잘못했구나. 나중에 알았다. ‘준수님’
군함명(軍艦名)에 담긴 동북아의 상처
동북아 바다가 또 다시 격랑에 휩싸였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열강의 해군들이 치열하게 싸웠던 구한말을 연상시킨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거침없이 군사대국화를 추진하는 일본과 경제굴기에 이어 군사굴기를 노리는 중국, 옛 소련의 영광을 못잊는 러시아, 그리고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를 외치는 미국이 틈만 나면 우리의 주변 해역에서 막강한 해군력을 과시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동북아 강대국의 최신 군함 이름에서 구한말 제국주의 시대의 자취가 강하게 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