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정치자금 데이터 다운받으세요"
10년도 더 전에 모 국회의원의 정치후원금 회계보고서를 정보공개청구한 적이 있다. 수수료를 내니 선관위가 개인정보 등을 지우고 스캔한 PDF 파일을 공개했다. 파일을 열어보니 이상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주유소에서 이틀에 한 번꼴로 기름을 넣는 데다, 특정 주유소에서 한 번에 50만원, 100만원씩 결제하기도 했다. Ctrl+F를 눌러 주유소에서만 얼마나 썼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PDF 파일이 글자 검색이 안 되는 이미지 스캔이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100장이 넘는 보고서를 종이로 인쇄해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체크
AI 뉴스요약시대, 모노컬처 기사로는 안 된다
인공지능(AI)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산업군에서 기대와 낙관, 우려와 불안이 뒤섞인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향후 10~20년 안에 노동(일자리)은 선택사항이 될 것이며 화폐는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일론 머스크의 최신 발언부터 우리나라 교육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대학가 발(發) AI 커닝 사태에 이르기까지 이슈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칠 정도다. 뉴스생태계도 예외는 아니다. 읽는 인간이 클릭하는 소비자로 바뀐 지 오래고, 독점적인 정보제공자로 군림하던 레거시 미디어가 안정적인 수익처를 잃은 지도 오래다. 근
위기의 시대 우리 언론을 응원한다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은 불안의 기원에서 우리 대다수가 나 혼자만 고통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만 빠르게 달리는 차량에서 떨어져 나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뒤처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배제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더하여 이런 두려움이 단지 상상의 산물만은 아니라고, 실제로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상황이 권위를 자랑하는 미디어를 통해 생생하게 실감할 수 있는 현실이 된다고 말한다.그렇게 현실이 된 불안은 우리의 삶을 집어삼킨다. 우리는 불안 앞에 깊이 절망하거나 크게 분노한다. 심지어 우리
"당신은 누구의 편이냐?"
이데올로기(ideology)란 사회를 설명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이해하도록 도와주며 사고와 행동을 연결해 행동강령을 제공하고자 하는 이념 체계를 말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세계관, 인간관과 같은 이데올로기의 일관된 체계를 통해 사회 문제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잣대(규범)를 제공받는다. 이 말은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였던 트라시 백작이 펴낸 이데올로기의 요소(Elements dideologie)란 책에서 처음 등장한다. ~ology로 끝나는 대개 낱말들이 사회학, 심리학, 생물학 등 과학적 연구…
취재 회피에 관하여
얼마 전, 기자 대상 교육에서 질문을 하나 받았다. 취재 요청을 할 때는 불응하거나 회피하다가 나중에 가서야 소송이나 조정으로 반론보도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악의적인 경우에도 반론보도를 해야 하냐는 것이다. 기자의 문제의식에 공감했고, 그 난감함 역시 충분히 이해됐다. 그렇다고 해서 반론권 행사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는 없는 일이어서 권리남용의 법리에 대한 설명으로 답변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그 후 우연히 취재 요청에 불응하거나 회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요지는 이렇다. 취재 요청을 해오는 기자에게…
힘내라 언론!
한국판DSA 나온다더니. 결국 개악안이 공개됐다.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최민희)가 내놓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그것이다. 시민사회단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정보를 넘어 유해정보까지 심의하며 온라인 게시물을 삭제하는 행위가 검열에 가깝다고 비판해 왔다. 그보다는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실질적인 자율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요구해 왔다. 유럽의 디지털서비스법(DSA)은 그런 취지를 담고 있다. 민주당이 한국판DSA를 만든다고 했을 때 기대했던 이유다. 하지만 결론은 실망스럽
우리 사회 청소년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언론 보도
현재 우리 언론에서 청소년이 주요 의제가 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 최근 한국일보에서 10대와 정치 특집을 통해 10대들이 전반적으로 보수화되고 있다는 점, 보다 능력주의적 세계관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을 통계적으로 보인 바 있다. 이 기획 기사에서는 극우 유튜버들이 반 페미니즘을 무기로 극우적 세계관을 전파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교실의 문제에 대해 지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 된 점 등이 학교 관계자 및 청소년 문제 관련 활동가,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됐다. 이렇게 문제적인 청소년 문화는 작년 8월 이후 딥
주민들이 가장 늦게 알게되는 구조를 바꾸는 일
한 달 전, 충남 예산군 신암면 조곡리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조곡산단 반대 주민대책위 주민 세 분을 만났다. 2021년 SK에코플랜트는 이곳에 산업단지 건설을 추진했다. 산업단지 안에는 자원순환시설이 포함됐다. 하지만 언뜻 친환경적으로 보이는 이 시설의 실상은 산업폐기물 처리장이었다. 지하 35미터, 지상 15미터 규모에 석유, 페인트, 시너와 같은 산업폐기물을 처리하는 매립장이었다. 이들은 자기가 살고 일하는 지역에 환경오염 시설이 들어온다는 것을 한참 뒤늦게야 알았다. 누구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주민들은 뒤늦게 사안
방미통위 정상화를 둘러싼 리얼리티쇼
리얼리티쇼(Reality Show) 프로그램에 우리가 생각하는 리얼리티(현실 세계)는 없다. 인기리에 방영되는 각종 연애 프로그램만 하더라도 실제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로맨스 감정과 과정을 담기 어렵다. 아니 담지 않는다. 연애에 이르는 설렘과 갈등, 성장 과정이 묘사되지만 그것은 개연성을 가진 프레임일 뿐이다. 때로는 출연자들마저 자신이 말한 스토리와 방송 내용이 다르다며 악마의 편집을 호소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보는 허구의 리얼리티마저 또 다른 허구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알고도 속아준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기대하는 것
검은 화면, 검은 배너, 민주주의에서도 언론이 침몰하고 있다
9월1일, 50여개 국가에서 250여개 뉴스 채널이 검정색 화면을 30초간 내보내거나 1면에 검은 배너를 내걸었다.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죽어가고 있는 언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경없는기자회(RSF)와 시민운동단체 아바즈(Avaaz)가 주도한 글로벌 미디어 행동이었다.국경없는기자회에 따르면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 군대의 공격으로 사망한 언론인이 220명을 넘어섰고, 유엔에 따르면 247명에 이른다. 비영리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는 2024년에만 124명의 언론인이 살해당했으며 그중 70%가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