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미, 출입처 제도, 기자 갈아넣기
엎치락뒤치락하던 미국 대선 동안 오랜만에 CNN을 자주 들여다봤다. 뉴스 중간에 광고를 할 때마다 CNN의 자체 캐치프레이즈가 흘렀다. ‘사실이 먼저다(Facts First)’는 몇 년 전부터 보았던 구호지만, ‘그곳에 가라(Go There)’ 는 새로웠다. 뉴스가 벌어지는 ‘현장에 있겠다’는 다짐이었다. 현장을 지키는 데는 비용이 든다. ‘Go There’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보며 나는 지난 여름, 연구를 위해 만났던 한 국회 출입기자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출입기자는 현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출입처에서 현장은 오히려 실종되고
신문을 왜 보니?
지난 추석 방송인데, 아직도 간간이 회자된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 탤런트 김광규씨가 아파트 문을 열고 신문을 집는 장면이다. 다른 출연자들이 “종이신문”에 경악한다. 그 경악에 경악했다. 김광규는 “(노안 때문에) 눈이 너무 아프고”라고 변명한다. 종이신문은 ‘노안’ 온 사람들만 보는 건가.신문 칼럼에서 여러 기자들이 언급했다. 강준만 교수는 이 장면을 인용하며 종이신문을 변호했다.(한겨레 11월23일치, “설마 종이신문 보겠어?”) 앞서 한겨레 시민편집인 홍성수 교수도 칼럼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런 글은 슬프다.…
AI 들어오라고 하세요
개인적으로 스마트폰 뉴스 구독 경로는 크게 4가지다. 첫째,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 ‘친구’들이 링크를 걸어 공유하는 뉴스들을 많이 접한다. 자기 이름 걸고 추천하는 뉴스이니 보통 양질의 뉴스들이 올라온다. 다만 아쉬운 점은 ‘친구’들이 나와 정치적 성향이나 사회적 이념이 비슷해서인지 ‘확증 편향’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다. 둘째, 구글. PC 화면은 안 그런데, 모바일 구글은 전면에 뉴스를 배치한다. 정확한 알고리즘은 모르겠으나, 경험상 구글은 내가 검색한 내용을 바탕으로 절반, 사람들이 많이 보는 뉴스 절반 정도를 노출하는…
디지털 경제와 뉴스 플랫폼
뉴스는 시장 상품으로서 태생적 결함을 안고 있다. “내용을 모른 채 값을 정하기 어렵고, 일단 내용을 알고 나면 돈 낼 이유가 사라진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가 말한 이 ‘정보의 역설’ 탓이다. 뉴스 한 건마다의 정확한 값어치를 매기는 것도 난제지만, 같은 뉴스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가치는 제각각이다. 이 ‘값어치의 불확실성’은 전자의 경우 구독, 후자의 경우 번들링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됐다. 즉 뉴스 기사를 한 건씩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주요 기사를 묶어 신문 한부에 담아(번들링) 정기 구독
김어준은 저널리스트다
예전 신문사에 다닐 때 선배가 저널리스트(언론인)와 기자의 직함 차이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답은 싱거웠다. 언론사에서 부장을 달면 언론인이고, 그 아래로는 기자라는 얘기였다. 기자 10년 정도 한 뒤 다른 직종으로 옮긴다면 ‘전직 기자’는 될 수 있어도 ‘전직 언론인’은 될 수 없다는 의미다. 딱히 동의하진 못했지만, 전문직으로서의 언론인에 대한 자부심은 인상적이었다.그렇다면 ‘한국의 유력 언론인’ 중 이 기준에 부합하는 언론인은 몇 명이나 될까.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신뢰도 조사에 따르면 올해…
자본에 포섭된 주류 언론
삼성 이건희 회장이 사망했다. 언론은 이건희 회장의 일생을 짚으며 명과 암을 논하고 있다. 빛과 그림자를 균형있게 다루려는 노력도 있지만, 오직 빛에만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평소의 논조에 따르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말하고 끝내기엔 삼성과 언론의 관계가 복잡하다.최근 삼성과 언론의 관계가 주목받은 것은 류호정 정의당 의원의 폭로 사례다. 삼성전자 대관 담당 임원이 인터넷 언론사 기자출입증을 갖고 국회를 자유롭게 출입해온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삼성전자는 해당 언론사의 존재를 전혀 몰랐고 광고 등을 명목으로 한 지원도 이뤄진 바 없다고
기사 배열 알고리즘의 공정성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저널리즘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 기사 배열 알고리즘을 개발해 공개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그 중 하나는 제시된 기사들에 대해 사람이 평가하는 작업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평가한 기사들을 찾아내 좋은 기사들이 갖고 있는 공통적인 속성을 추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 결과는 혼란스러웠다. 좋은 기사들에 대해서는 합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표적 사례 중 하나는 여성 속옷의 기능성을 다룬 기사에 대한 평가였다. 남성 평가자들은 기사 내 삽입된 속옷 사진을 이
ESG, 언론, 지속불가능성
네이버(모바일)로 기업명을 검색하면 나오는 ‘기업정보’란 맨 밑에 ‘비재무정보’라는 게 있다. 지속가능발전소가 제공하는 정보다. 각 기업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Environment, Society, Governance) 부문 성과(performance)를 알려준다. 가령, 임원이 직원 연봉의 몇 배를 받는지 보여준다. 삼성전자는 50.4배다. 업계 평균은 9.4배, 미국 학계에서 정한 합리적 기준치는 12배 이하다. 알고 보니 전 세계 투자시장에서 운용하는 자산의 30%, 약 3경5000조원이 ESG를 기준으로 투자된단다.
군중 검열 시대의 기자와 공론장
‘밧줄, 나무, 기자. 조립이 필요함(Rope, Tree, Journalist. Some assembly required).’ 트럼프 미국 대통령 유세장에 모인 청중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이 구호는 교수형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인들을 목매달고 싶다는 극단적인 위협이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에 대해 “가짜뉴스”라거나 “민중의 적”이라고 거리낌없이 낙인 찍어온 트럼프 대통령 지지 진영 안에서는 이런 혐오발언이 우스갯소리처럼 소비된다. 미국의 상황이 유별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언론
기자란 무엇인가?
기자가 된 뒤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의 능력에 비해 과도한 영향력을 갖는 게 기자와 방송작가’라고.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한다. ‘자신이 한 일에 비해 과도한 욕을 얻어먹는 게 기자’라고.과도한 욕은 과도한 영향력 때문이다. 이전 같진 않다 하나, 여전히 언론은 실재하는 권력이다. 과거 기자들은 정보의 유통을 독점했다. 언론을 통해야 공적인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은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기자보다 더 똑똑한 독자들이 너무 많다. 기자의 위상과 권위가 추락하는 건 당연하다.이제 기자가 살 길은 거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