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계란판’이 되는가
최근 언론계에서 ‘계란판’이 화제가 됐다. 계란판(종이난좌)은 신문지로 만든다. 폐지가 아니라 윤전기에서 인쇄를 막 끝낸 신문이 밀봉된 채로 옮겨져 ‘계란판’이 된다. 지구촌 어디에서건 마찬가지다. 신문들의 콘텐츠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내용은 더 세련되고, 글은 더 리드미컬하고, 사진과 그래픽도 나날이 발전했다. 다만 세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시청률 최고의 방송들이면 방송사의 온라인 사이트 역시 최상위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는 잠깐의 기대는 정말 순진했다.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이 대단한 수준의 기술과 노하우
네이버, 뉴스 놓고 ‘진정한 모험’ 할 때
인터넷 플랫폼 기업에게 ‘뉴스’란 무엇인가. 네이버가 지난주 모바일 첫 화면 개편안을 공개했다. 검색창과 개인화 추천 서비스를 연결하는 그린닷만 남기고 뉴스 등 다른 콘텐츠는 뒷단에 배치했다. 우리 사회를 뒤흔든 드루킹 사태에 대한 네이버의 공식 대응 방안이 드디어 나온 것이다.개편안에는 정치적 여론 조작에 ‘이용’될 소지를 줄이려는 노력이 보인다. 평가할 만하다. 사실 네이버 입장에서 자사의 최대강점인 ‘뉴스 유통’을 약화시키는 것은 말 그대로 ‘모험’이다. 뉴스를 보러 네이버에 오는 고객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선택. 한성숙 대
기자는 누구에게 공감하나
“나는 사업주와 과학자, 행정가들이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상태로 여러 노동조건과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지켜봤다. 과학자나 정책 결정권자가 노동자의 입장에서 역지사지하려는 의지나 능력이 없는 것을 가리켜 나는 ‘공감 격차’라고 부른다.”캐나다 여성 ‘인간공학자’인 캐런 메싱의 보이지 않는 고통(김인아 외 옮김. 동녘)이라는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반도체 공장 백혈병이나 타워크레인 사고 같은 ‘사건’이 아니더라도, 노동자들은 늘 혹은 자주 아프다. 뭔지 모를 유해물질을 다루다가 병에 걸리기도 하
독자와 소통하는 건 선택 아닌 필수
“어떤 사안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일하는 방식 역시 설명해야만 한다. 뉴스 생산 과정에서 우리의 선택, 우리가 주저했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우리가 쓰고자 했던 방향은 무엇이었는지...과거보다 훨씬 더 투명한 방식으로 설명하고 시민들의 질문과 비판, 의견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지난 달, 스위스 공영방송 RTS의 보도국장 크리스토프 쇼데(Christophe Chaudet)가 ‘엥포 베르소(Info Verso)’를 런칭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엥포 베르소는 TV와 라디오, 페이
저널리즘의 본질과 본령
최근 저널리즘의 본질을 지켜야 한다는 걱정과 함께 여러 담론들이 펼쳐진다. 본질[本質]의 사전적 정의는 “사물을 그 자체이도록 하는 고유한 성질”이다. 비슷한 말로 본령[本領]이 있는데 이는 “근본이 되는 강령이나 요점”이라는 의미이다. 우리가 저널리즘의 본질이라 일컫는 건 본질과 본령을 포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논하기 전에 우리가 저널리즘의 본질을 논하는 것이 적절한가?를 고민해야 한다. 저널리즘의 본질과 본령을 타 주체가 정해서 내려 보내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다. 공산
‘팩트’의 50가지 그림자
지난 8일 토요일, 나는 성대한 결혼식에서 축사를 했다. 사람들은 ‘선남선녀’의 결합을 축복했고 신부와 신랑은 환하게 웃었다. 같은 시각, 동인천역 북광장 일대에서는 퀴어 문화축제에 참여한 이들이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하 반대 세력)의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었다. 성소수자의 인권과 성적 다양성을 위한 퀴어 문화 축제는 2000년 서울에서 처음 개최되었고 부산과 대구 등지에서 열렸다. 인천에서는 처음인 이번 퀴어 문화 축제는 그러나 반대 세력의 방해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현장의 상황들을 전해 들으면서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았
매케인과 미국, 그리고 CNN
요 며칠, CNN을 켜두고 지냈다. 그러고 싶었다. 존 매케인을 기억에 오래 넣어두고 싶었고, TV에 출연한 공화당과 민주당 인사들의 간만의 ‘사이좋은 모습’도 신기했다. 사실 언론의 당파성은 미국도 별로 다르지 않다. CNN을 보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가 폭스TV를 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나온다. 양극단으로 가고 있는 미국의 정치와 같은 모습이다.그런 미국의 정치와 미디어를 잠시나마 바꿔놓은 이가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다. 그는 81세를 일기로 8월25일 별세했다. 지지난 토요일,
가난은 날씨가 되어 온다
태풍이 지나가고 비가 오니 무더위가 그래도 좀 수그러들었다. ‘기상 관측 이래 최고기온’을 경신하던 8월 초의 그날, 스포츠 중계하듯 기상청의 공식 측정치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었던 여름. 서울역 근처 쪽방촌을 취재하고 온 기자의 기사엔 찜통 더위 속에 방안에 누워 선풍기 한 대 틀어 놓고 하루를 보내는 어떤 이의 코멘트가 들어 있었다. “그래야 하루가 가니까 억지로 잠을 청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거죠.” 잠을 자야만 시간이 가니까 잔다는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그 더운날 오체투지를 하던 쌍용자동차 사람들, 그
대통령 지지율 뉴스와 민주주의 훼손
여론조사회사는 특정 사안들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리얼미터는 8월 3주차 주중동향(2018. 8. 16)에서 경제 및 복지정책의 실패, 집권여당의 특활비’ 폐지에 관한 모호한 태도 및 당대표 후보들의 네거티브 전략,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무죄 판결에 따른 정부·여당에 대한 불신감 상승이 지지율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런데 조사회사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사이트에 업로드한 설문지에는 이러한 요인들을 묻지도 않아 긍정적 혹은 부정적 영향력을 측정할 수도 없다. 그럼에
에밀 졸라를 그리워하는 이유
프랑스의 대문호, 에밀 졸라는 자연주의 문학의 효시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뛰어난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다. 25세의 나이에 저널리즘에 뛰어든 졸라는 그 스스로 말했듯 적어도 책 150권 분량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의 기사를 작성했다. 이제 막 작가의 길로 들어선 시절, 궁핍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는 무려 16년 동안 저널리스트로서 살았다. 그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당시는 언론 경쟁이 치열했다. 1881년 언론 자유에 관한 법이 제정되자, 언론에 대한 각종 탄압들이 중지되면서 신문사도 발행부수도 급증한 것이다.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