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자유’와 ‘민주’를 정쟁의 도마 위에 올리는가
보수와 진보 세력 간 갈등이 국정교과서를 놓고 폭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교육부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통해 마련한 역사 교과서 집필기준 시안에서 기존 ‘자유민주주의’를 모두 ‘민주주의’로 대체하면서다.시계 바늘을 7년 전으로 돌리면 정반대의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1년에는 교육과학부가 역사교육 과정을 수정하면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자유민주주의’로 고치는 내용으로 집필 기준을 바꿨다. 보수와 진보가 정권을 바꿔 잡을 때마다 ‘자유’와 ‘민주’를 입맛에 맞춰 역사 교과서에 넣고 빼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장민호·백성희를 기억하며
브라질 작가 파울루 코엘류가 트위터에 이런 글을 띄웠다. ‘Reality is different from fiction. In fiction, things need to make sense(현실은 소설과 다르다. 소설에선 모든 게 이치에 맞아야 한다).’ 그 문장을 보며 ‘세상은 왜 이렇게 무질서하고 엉망진창인가’ 하는 불평으로 읽었다. 지구 반대편도 현실은 으레 팍팍하구나 싶었다. 어쩌면 그래서 문학과 연극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문학과 연극의 풍경은 참담하기 짝이 없다.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고
법원행정처의 법관 사찰
'법관 사찰'은 사실이었다. 법원행정처가 행정처 심의관 출신 '거점 법관'들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법원 내부게시판, 포털사이트의 익명 카페 등을 총동원해 판사들을 광범위하게 사찰한 문건이 발견됐다. 행정처에 비판적인 법관들은 핵심그룹과 주변그룹으로 분류됐다. 2015년 사법행정위원회를 만들면서 그 위원 후보로 추천할 판사들의 성향·평판을 뒷조사해 빨강·파랑·검정으로 분류한 문건 리스트도 나왔다.법원 내 특정 연구회 소속 판사들의 학술행사를 막거나 축소하고, 심지어 특정 후보 당선을 위해 선거 전략과 지원단을 구성하는 식으로
영화 ‘공동정범’이 던진 질문
한때 외신 사진기자였던 홍진훤 사진가는 그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철저한 포토저널리즘 신봉자’였다. 사진으로 세상을 고발하고 어쩌면 바꿀 수도 있다고 믿었다. 2009년 1월20일 벌어진 용산참사 전까지는 그랬다. “내가 보고 느낀 것과 내가 찍은 사진과 이 사진이 언론을 통해서 보이는 게 너무 달랐어요.” 불이 나고, 사람이 죽고, 울부짖는 현장을 담은 사진은 그 자체로 불행의 스펙터클을 전시하는 용도로 활용됐다. 사진은 사람들에게 참사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대신, 참사의 의미를 정의했다. ‘여기까지만 생각하라’는…
페이스북 알고리즘 변화가 언론사에 던진 과제
페이스북 때문에 살짝 시끄럽다. 매체들의 신뢰도를 평가한 뒤 그 결과를 노출 알고리즘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때문이다. 독자들이 신뢰도를 평가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긴 했지만, 시끄럽긴 매한가지다. 언론의 신뢰도를 어떤 잣대로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는 게 비판의 골자다.올 들어 페이스북은 여러 가지 변화를 꾀하고 있다. 연초부터 언론사들의 콘텐츠보다 친구나 가족의 글을 더 우대하겠다고 밝혀 파장을 몰고 왔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알고리즘 변경으로 뉴스피드에서 뉴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5%에서 4%로 줄어들 것”이라고
남북 대화, K street, 공공 외교
미국 워싱턴 백악관 북쪽으로 세 블록을 더 올라가면 ‘케이 스트리트(K street)’가 나온다. 유명한 싱크탱크 사무실이 이 거리 주변에 포진해 있어서 ‘케이 스트리트’는 워싱턴 싱크탱크 여론을 통칭하는 대명사로 사용하기도 한다. 새해 벽두부터 진행된 남북 대화에 대해서도 ‘케이 스트리트’는 열띤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80% 이상 대다수 논의는 우려와 경계를 강조하는 것이고, 환영과 기대감 표명은 소수 의견일 뿐이다. 경계론은 북한의 평화공세가 한미 동맹을 이간하거나, 제재를 완화하거나, 또는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포스코·KT와 ‘블랙리스트’ 논란
최근 포스코·KT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시민단체들은 8일 황창규 KT회장의 비리의혹 수사와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난해 말에는 한 시민단체가 권오준 포스코 회장의 선임과 관련한 권력개입 의혹 등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경제계의 뒷얘기를 모은 이른바 ‘지라시’에는 두 총수가 곧 물러날 것이라는 소식이 단골메뉴로 오르고 있다. 포스코와 KT가 정권 교체기마다 몸살을 앓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로 집권한 권력의 압력으로 최고경영자가 임기 중간에 하차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권력의 요구에 순응하지 않으면…
금융시장을 뒤덮는 신 관치의 그림자
금융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금융이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을 이끌어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경쟁력 보고서 2017~2018’에 따르면 한국의 금융경쟁력 순위는 137개국 가운데 74위. 네팔 라오스 레바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한국 금융 경쟁력이 후진국 수준에 머무는 배경에는 ‘관치(官治)’가 자리 잡고 있다. 경제학자이자 정치이론가인 앨버트 허쉬만은 “경제발전은 주어진 재원과 생산요소의 최적 분배와 조합보다는, 활용되지 못한 채 흩어져 있는 재원과 능력을 발굴하고 동원
망중립성 공방 유감
지난 주 IT 쪽 최대 이슈는 미국 망중립성 폐기 소식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인터넷서비스사업자(ISP)들을 통신법 706조의 타이틀1(정보서비스)으로 재분류한 사건이다. 2015년 이후 미국에선 인터넷사업자에 대해 통신서비스에 준하는 의무를 부여해 왔다. 망을 오가는 콘텐츠에 대해 차별금지와 차단금지 의무를 부과받았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이 의무를 면하게 됐다. 대신 앞으론 연방거래위원회(FTC)를 통한 사후 규제를 받게 된다. 통신의 특수성을 감안한 망중립성이란 사전 규제 대신 시장의 보편적인 경쟁법의…
‘러빙 빈센트’, 95분짜리 그림을 만나다
지독한 편도선염으로 초겨울 몇 주를 꼼짝 못하고 지냈다. 누군가 온 몸을 쿡쿡 찌르는 것처럼 아프기 시작하더니 이내 침을 삼키지 못할 정도의 통증이 찾아왔다. 전염성은 없다지만 선약도 모두 취소한 채 집안에 박혀있으니 좀 낫는 듯 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지금도 콜록거리고 있는 건 순전히 이 영화 때문이라고 하겠다. ‘러빙 빈센트’라는 영화가 극장에서 내릴까 전전긍긍하다가 기어이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고백하건데 나는 그림을 잘 모른다. 영화를 보는 데에는 아낌없이 시간을 쓰고, 어떤 영화든 일단 보고 나서 자유롭게 감상평을 나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