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조 저널리즘 시대, 언론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나
“독일 경찰이 정유라를 잡아서 한국으로 돌려보낼 일은 있겠냐. 독일 국내도 테러 발생 등으로 할 일이 적지 않은데 적극적으로 외국 정부의 요청에 협조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 지난해 12월9일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소추한 뒤로 1인당 2만9000원의 망년회의 화제는 대개 ‘최순실 게이트’였는데, 한 고위 공무원은 저렇게 분석했다. 한국 경찰이 정유라씨를 인터폴 적색수배 명단에 올렸다는 뉴스를 보면서 시민의 기대와 달리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의 주요 책임자로 지목된 유병언의 딸 섬나씨가
대통령의 정치소통, 공간과 시간의 틀 선진화해야
2015년 2월이니, 2년 전이다. 필자는 이 ‘언론 다시보기’란에 ‘소통과 청와대, 블룸버그의 불펜’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박근혜 대통령의 변화를 ‘기대’하며 쓴 칼럼이었다. 그 후 2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최순실 사태로 그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청와대는 필자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 글이 기억나 아쉬움과 허탈함 속에 다시 찾아보았다. 칼럼은 이렇게 시작했다. “소통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래서 ‘소통의 구조’를 어떻게 짜놓느냐가 중요하다. 형식이나 틀이…
촛불이 보여주는 새로운 저널리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및 촛불집회 보도를 지켜보며 저널리즘의 새로운 국면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떠올린다. 심사숙고를 거치지 못한 생각이라 거칠지만 양해를 구하며 열거해 보자. 1. “기계적 중립이 아닌 철저한 중립이 강점”이라는 한 앵커의 인터뷰를 읽었다. 월드컵 축구 한일전, 독도 영유권,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보도에서 한국 언론의 중립은 어딘가? 축구는 이겨야 하고 독도는 우리 땅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막아야 한다. 국정농단으로 지지율 4%에 이른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혁명 앞에서 철저한 중립은 어디인가? 버티려는…
YTN 해직 삼천일
YTN 해직 삼천일.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써내려가기란 예상과 달리 썼다 지웠다를 몇 시간 째 반복하고 있다. 굉장히 많은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막상 내뱉으려면 아무 말도 마무리가 되지 않는 난감한 상황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니 이 행사는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란 걸 깨달았다. 해직한 때부터 날짜를 세는 건 삼천일까지 와서는 안됐던 것이다. 심지어 이번 행사에선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데, 다큐 내용 중엔 작년에 이 다큐멘터리의 가편집본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그들의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
언론도 새로운 질서를 고민해야
국회는 예상을 뛰어넘는 찬성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촛불의 힘이었다. 그래서 지난 10일 촛불집회는 축제였다. 사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 불리는 국정농단을 벌인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촛불들의 비폭력 주장은 세계가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 많은 시민들이 모여 그 정도로 질서 정연하게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시민들이 저항권을 행사하는 동안 또 다른 놀라운 경험을 한 사람들은 기자들이 아니었을까?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절을 통 털어 이런 언론자유를 누린
단군 이래 최악의 정치 추문에 맞선 촛불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표결에 부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소속 국회의원 171명은 지난 3일 탄핵 소추안을 발의했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30일 “야당이 탄핵을 강행하면 장을 지지겠다”고 비아냥댔다. 그는 증거도 있는데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고 있다.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여당의원 29명을 끌어와 국회의원 200명을 채워야 한다. 새누리당의 비박의원들 40명은 흔들리는 갈대 같다. 박 대통령의 제3차 담화에 탄핵 참여를 철회했다가 3일 촛불민심에 놀라 다
저널리즘의 길은 팩트(fact)에 있다
“역시 팩트(fact)다.”인터넷 등 테크놀로지의 영향으로 앞길이 잘 안 보이는 언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요즘,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와 조선일보의 ‘우병우 검찰청사 사진’을 보며 든 생각이다. TV조선의 첫 보도로 시작된 최순실 사태. 국민들을 허탈감과 분노 속에 빠뜨린 이 사태는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갈등 국면 속에 잠시 잠복해 있다가,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로 ‘태풍‘으로 급변했고, 조선일보 1면에 실린 검찰에 조사 받으러 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사진 한 장으로 사실상 ’종결‘됐다. 팩트의 힘
피의자 대통령과 청와대 기자들
'언론이 촉발한 범죄의 파도'(Media Crime Wave)라는 개념이 있다. 특정 범죄에 대해 언론이 집중보도를 하면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그 유사한 범죄가 증가한다. 그러면 언론은 그것 보라며 이후에 등장한 유사범죄를 다시 연이어 보도한다. 그렇게 보도의 홍수와 모방범죄, 범죄신고가 맞물려 돌아가며 사회 전체가 쓰나미에 휩쓸린다. 언론이 선정적이고 과장된 보도를 통해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내면 그 트렌드는 허구의 세계를 형성하고 그 허구의 세계는 권력과 자본, 미디어의 메커니즘에 의해 실체를 가진 정치사회적 현실로 환생할…
내가 본 MBC와 YTN, 그리고 공영언론 정상화
기억은 잊힌다.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의 발발이 됐던 PD 수첩 PD들에 대한 법정시비가 최근 판결이 났지만 여기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는 거의 없다. 당사자인 조능희 PD가 판결 관련하여 중앙일보 모 기자의 왜곡 기사에 대해 피를 토하는 성토를 페이스북에 올린 걸 봤다. 스크롤을 내리자 얼마 안돼 광장에서 쫓겨나는 MBC 기자와 관련한 내용에 달린 엄청난 수의 좋아요가 보인다. MBC 구성원들은 사측의 왜곡보도를 규탄하기 위해 4년 만에 MBC 사옥 앞에 모였다. 4년만이라는 의미는 2012년 파업 이후를 의미한다. 170일…
언론, 전문가 정신이 필요하다
최순실 게이트가 나라를 흔들고 있다. 시민들은 대통령 하야를 외치면서 특검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히고 관련자,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주장한다. 대통령을 호가호위해서 개인의 이득을 취한 정도가 아니라 국정을 농단하고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었으니 국민들이 받았을 충격을 말로 다하기 어려울 것이다. 철옹성 같던 30% 대의 지지율이 5%까지 떨어졌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그런데 이런 최순실 게이트가 가능했던 것은 전문가 정신 또는 전문주의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거대한 권력을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