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순환(雙循環)
중국인들의 짝수 사랑은 유별나다. 축의금을 낼 때나 술자리 순배가 돌 때도 짝수 여부를 따질 정도다. ‘좋은 일은 겹쳐 온다(好事成雙)’는 믿음이 강력히 작용하기 때문인데, 음양론으로 대표되는 2수 분화 세계관의 영향이라는 등 설(說)은 다양하다.정치 슬로건이나 기업 마케팅 등에도 짝수가 종종 활용되곤 한다. 중국이 북핵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한 쌍궤병행(雙軌竝行·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평화협정 논의 동시 추진)이나 쌍중단(雙中斷·핵 도발과 한미 연합훈련 동시 중단)이 대표적이다. 해외 직구에 익숙한 젊은층에게는 중국판 블랙프라이데
둘로 나뉜 타운홀 미팅, 분열된 미국의 단면
지난 15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의 타운홀 미팅(town hall meeting·주민 간담회 형식의 공개토론)이 ‘동시에 따로’ 열리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이애미에서 NBC 방송과, 바이든 후보는 필라델피아에서 ABC 방송과 대담을 가졌다. 두 후보의 타운홀 행사는 이날 같은 시간 각 방송사를 통해 따로 생중계됐다.사정은 이렇다. 이날은 원래 대선후보 2차 TV토론이 예정된 날이었다. 2차 토론은 시민들이 대선 후보에게 직접 질의를 하는 타운홀 방식으로 열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트
슈피겔사건과 언론의 책임
1962년 10월 독일의 주간지 슈피겔은 ‘제한적 방어’ 제하의 기사로 서독과 나토의 군사훈련 작전 ‘팔렉스 62’에 관한 분석기사를 보도했다. 기사는 62년 가을에 진행된 ‘팔렉스 62’ 훈련 결과 연방군은 유럽 내에서 전략적 핵무기가 사용된 전쟁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며 이로 인해 동유럽 국가들의 군사행동이 발생하면 수백만명의 독일인이 희생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슈피겔 측은 이 기사가 정치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해 10월10일에 배포될 예정이던 잡지를 이틀 앞당겨 대중에 공개했다. 독일 언론자유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한 사
포스트 아베, 포스트 이와타
NHK 문자속보-아베 총리, 사임 의향 굳혀. ‘딩동!’ 휴대전화 알람이 울렸다. 제대로 본 게 맞나? 두 눈 씻고 다시 읽었다. 맞다. 몇 군데 전화를 돌리며 부리나케 사무실로 뛰어갔다. 주변 사람도 순식간에 물안개처럼 흩어졌다. 8월28일 오후 2시7분의 일이었다.아베 총리 회견은 오후 5시였다. 애초 건강에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코로나19 대응책을 내놓을 거란 예측이 많았다. 도쿄신문 조간 제목은 총리, 오늘 저녁에 직무 연장 의욕 표명이었다. 오전에 확인한 내각 각료들과 자민당 지도부 발언도 그랬다. 반(反) 아베이건, 친
'어린이 신문'이 대통령을 인터뷰했다
“처음 어린이 뉴스 코너를 만들 때, 5년 안에 우리가 독자 수만 명을 확보한 종이신문까지 만들게 될 거라고 누군가 주장했다면 나는 정신 나간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핀란드 최대 종합일간지 헬싱긴사노맛 편집장 까이우스 니에미(Kaius Niemi)가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리며, 신문사의 새로운 ‘상품’을 소개했다. 2016년부터 신문 속 주간 코너로 운영해오던 ‘어린이 뉴스’ 라스뗀 우우띠셋(Lasten Uutiset)의 인쇄판이다. 이미 전국 어린이 독자(주로 초등학생)와 교사들에게 널리 사랑받
지폐 디자인에 갇혀 있는 환경보호
브라질에서 최근 새로운 지폐가 선보였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9월2일부터 200헤알짜리 고액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우리 돈으로 4만5000원 정도 가치다. 브라질에서 새 지폐가 발행된 것은 2002년 20헤알짜리 이후 18년 만이며, 이로써 지폐는 2헤알, 5헤알, 10헤알, 20헤알, 50헤알, 100헤알, 200헤알 등 7가지로 늘었다. 중앙은행은 올해 안에 200헤알짜리 고액권 4억5000만 장을 찍을 예정이다. 시장에 900억헤알, 우리 돈으로 20조원 가까운 돈이 공급된다는 의미다.새 지폐 발행은 상당한 화제가 됐다. 지폐
"역사를 잊으면 나라가 변질된다"
9월은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가연을 잇는 귀한 달이다. 1920년 9월20일 인도네시아에 한인이 첫발을 디뎠고, 1969년 9월10일 대표 한상기업 코린도그룹이 창업했고, 1973년 9월18일 양국이 수교했다. 이주, 경제협력, 외교 역사가 모두 9월 어느 날 뿌리내린 셈이다.특히 올해는 인도네시아 한인 이주 100주년이다. 그전에도 한인들이 인도네시아 여러 섬에 들렀다는 설들이 있으나 ‘정착’이라는 이주의 뜻에 충실한 기록을 쫓다 보면 1920년 9월20일에 닿는다. 그날 네덜란드령 동인도 바타비야(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한
우임금과 시진핑
먼 옛날 요임금이 중국을 다스릴 때 황허(黃河)가 자주 범람해 백성들의 피해가 컸다. 요임금은 곤에게 치수를 명했지만 9년이 지나도록 성과가 없었다. 요임금의 뒤를 이은 순임금은 곤에게 책임을 물어 죽이고 곤의 아들인 우(禹)에게 임무를 대신 맡겼다. 그는 십수 년간 노력한 끝에 수해 방지에 성공했다. 사회는 안정되고 번영을 누렸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대우치수(大禹治水·우임금이 물을 다스리다)’ 고사다. 농경사회에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재민을 구제하는 건 위정자의 당연한 본분이었다. 자연재해를 인재로 치부하
큐어넌과 언론의 딜레마
2016년 12월, 에드가 웰치라는 20대 남성이 워싱턴 DC의 한 피자가게에 소총을 난사했다. 소셜미디어에서 유통되던 가짜뉴스(힐러리 클린턴과 민주당 인사들이 이 식당 지하에서 아동성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음모론)를 ‘자체조사’하겠다는 명분이었다. 아동성매매 조직은 물론, 그 식당에는 지하실 자체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 사건은 가짜뉴스의 폐해를 보여준 사례로 국내에도 알려졌다. 이른바 ‘피자게이트’다.하지만 이 사건은 가짜뉴스에 속은 20대의 치기어린 실수가 아니었다. 미국 내 극우 음모론자 집단인 ‘큐어넌 (QAno
방송수신료, 새로운 개념으로 접근해야 할 때
독일에선 방송수신료를 ‘방송분담금’(Rundfunkbeitrag)이라는 명칭으로 징수한다. 2013년 이전까지는 ‘방송수수료’(Rundfunkgebuhr)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이후부터는 관련법 개정에 따라 용어를 변경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독일공법상 ‘수수료’와 ‘분담금’은 세금을 징수하는 명목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수수료가 ‘실제이용’을 전제로 요금을 청구하는 반면 분담금은 ‘(이용)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부과하기 때문이다. 명칭이 변경되면서 자연스럽게 방송분담금 징수대상도 확대됐다. 2013년 이전까지는 공영방송서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