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회가 ‘낙태죄 폐지’를 조명하는 방식
지난달 30일, 팟캐스트 말하는 몸 녹음에 참여했다. 록산 게이의 ‘헝거’에서 원하는 부분을 낭독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작업이었다. “우리 사회는 여성이 자신의 몸을 가부장제가 승인한 방식으로만 사용하도록 강요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단죄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했다. 가임기 여성이 결혼해서 출산하지 않거나, 스스로 임신을 중단하고자 하는 경우 말이다. 전자가 인구절벽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 당하고 비난 받는다면 후자는 명료하게 법적인 처벌을 받는다. 그날은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가 열렸고, 잇따른 영유아 유기 소식이…
왜곡된 제목 편집관행과 저널리즘 신뢰 퇴행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의 후폭풍이 거세다. 외신 기사를 인용했다고 해명했지만 해당 기사의 제목에 등장한 ‘수석대변인’은 취재원이 언급한 단어가 아니었다. 근거 없는 주관적 해석을 제목으로 삼아 논란이 되고 있다.기사의 제목은 기자와 데스크 간 협업의 결과물이다. 이들의 협업은 뉴스 생산 관행과 기자의 역할이라는 맥락 안에서 발생한다. 먼저, 제목 유형만으로 저널리스트의 역할을 추론한다면 기자는 단순전달자일 가능성이 높다. 거의 모든 영역의 뉴스에서 취재원의 발언을 인용부호로 처리해 제목에 배치하는 편
불편해져라, 민감해져라
‘미투’가 뜨거운 이슈였던 지난해, 기획시리즈의 하나로 ‘남성의 탄생’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만들었다. 학교에서, 군대에서, 직장에서 한국 남성들이 여성을 ‘물건 취급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을 담은 글이었다. 그 뒤 1년, 더 나아진 사회에 대한 희망적인 소식 대신 버닝썬과 연예인들의 불법촬영이 사회를 달군다. 버닝썬 클럽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술집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그런 일을 당한다니. 하지만 이 뉴스의 ‘밸류’를 평가하는 데에서 확실히 여성과 남성의 체감도는 다른 것 같다.언론은 어떤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떤 매
기자를 기자라 부르지 않는 나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직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TV를 지켜보다가 동아일보 워싱턴 특파원의 질문에 내 귀를 의심했다. “북한 지도자가 언제 또 회담장에 나와서 필요한 조치를 취할지 아직까지 알 수 없다고 했는데 대북 제재를 더 강화해서 더 신속하게 움직이도록 할 생각입니까?” 트럼프 대통령은 “그건 답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현재 굉장히 강력한 제재가 있는 상황에서 더 필요하지 않고 북한 주민들도 생계는 이어가야 한다”고 답했다. 더 부끄럽게 느낀 것은 다음 날 동아일보 기사였다. ‘아이돌급 외모로 인기…트럼
뉴스 구독 모델의 목표
나는 미디어 연구자다. 연구자로서 다양한 미디어들을 연구하려면 직접 경험을 해야 한다. 또한, 제값 주고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 위해 나부터 제대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신문을 구독하고 있다. 월 1만5000원. 실시간 TV 시청을 위해 IPTV를 이용하고 있다. 인터넷까지 결합상품으로 월 3만7200원. 여기에 한 달에 한 번 정도 최신 영화 등 VOD 비용으로 1만원 가량이 더해진다. 나는 잘 듣지 않지만 고등학생 딸을 위해 무제한 내려 받기가 가능한 음원 서비스를 구독하고 있다. 월 1만1900원. 놓친 TV 프로그램
21세기 민중과 지식인
1980년대에대학을다닌사람은다들비슷한경험을했을것이다.대학들어오자마자,선배들이맨처음내민책이민중과지식인이다. 지식인은 사회와민중에대한책임을가져야한다는내용이다. 이 책이처음나온1978년,고등학교졸업생의대학진학률은 18.4%였다. 당시로선‘대학생=지식인’이라는말이어색하지않을때이기도했다.그러나청년이란 말도 아직 낯선 스무 살짜리가 갑자기 지식인의 책무를 요구받는다는 게 다소당혹스런 기억으로 남아있다.90년대초반,기자가됐을때도비슷한분위기를경험했다.지적수준은 그대로인데, 하루아침에 ‘사회의 공기(公器)’의 일원이 되어, 언론인의책무를 되새겨야…
디지털 소외라는 문지방
얼마 전 일이다. 70대 후반의 한 선생님이 나에게 카카오톡 화면을 보여주며 도움을 요청했다. 자동 업데이트 이후 화면 레이아웃 등이 바뀌면서 사용에 어려움을 겪으셨다. 아이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각 이해하는 나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었다. 몇 번 터치만 하면 되는, 단순하고 사소한 변화. 그러나 선생님은 며칠을 씨름해도 풀 수 없었던 난제. 행사용 플래카드를 손으로 쓰던 시절을 거쳐 PC 통신, 인터넷, 스마트폰 시대까지 겪은 선생님은 매번 새로운 기술을 적절하게 습득해온 분이다. 능숙하게 어플을 다루는 모습은 나에게 노년층에…
뉴스 만족도, 저널리즘 생존의 핵심 필요조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2018 언론수용자 의식조사(보고서 ①)에 의하면 모바일 기반의 미디어 이용률 및 이용시간만이 증가추세를 보인다. 텔레비전 이용률(93.1%)이 가장 높긴 했지만 이용시간은 2017년에 비해 10.1% 포인트 줄어든 반면 모바일인터넷(86.7%)과 메신저서비스(81.9%) 이용률이 80%를 넘어섰고 이용시간도 전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 둘째, 매일 뉴스를 이용한다는 응답률은 텔레비전(50.5%), 스마트폰인터넷(44.7%), 포털뉴스(40.6%)가 40%를 넘었고, 미디어별로 뉴스를 전혀 이용하지 않는다는…
불과 글, 기자와 글
뉴미디어로 뉴스의 형태가 바뀌며 신문기자들도 영상을 고민하고, ‘인터랙티브’한 ‘콘텐츠’를 고민해야 한다. 20여 년 동안 글 쓰는 것으로 먹고살았지만 글이 아닌 무언가 다른 형태로 생각을 내놓는 것에 아직 나는 익숙하지 않다. 그렇다 해서 딱히 ‘글쓰기’를 놓고 고민을 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내가 말하는 ‘고민’은 대학 시절 일본 적군파 다미야 다카마로가 책에 썼던 것처럼 ‘일주일 동안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면서 생각하는’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글쓰기를 치열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고, ‘글쟁이’라든가 ‘글을 쓰는…
‘가짜뉴스 폭식’ 기성언론은 책임 없나
기숙사 룸메이트와 함께 학생식당으로 점심 먹으러 간다. “오늘 메뉴 함박스테이크네.” “선택은 했지만 좀 작지 않을까?” 다른 테이블을 둘러본다. 함박스테이크를 배식받은 학생들의 젓가락은 한식을 택한 친구의 식판을 기웃거린다. 아침을 먹지 않아 점심에 기대를 걸었던 우리 둘은 아쉬움을 안고 교실로 향한다. 방금 식사를 했는데, 여전히 배고프다. 이건 식사가 아니라 요기 수준이다. 학부 졸업하고 1년간 공백기를 보낼 때는 체중이 급격히 불었다. 소속감도 없이 막연한 불안감에 날마다 공허함과 ‘가짜 배고픔’을 느끼며 자꾸 먹었다. 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