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용산공원 시범 개방
독성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중세시대 약리학자 파라셀수스는 모든 물질은 독이다. 중요한 것은 노출되는 양이라는 말을 남겼다. 500여년 전 파라셀수스가 남긴 말대로 독성이 강한 물질이라도 노출되는 용량이 적고, 시간이 짧다면 인체 악영향은 없거나 미미할 수도 있다.정부가 용산공원을 시범 개방하면서 주 3회, 하루 2시간, 25년간 누적 이용해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이 같은 독성학적 원리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용산공원 내의 유류오염 수준이 부지에 따라 다르며, 오염 정도가 높은 지점들에서도 단시간 머무는 것만으로는 인체 피해
'1000조 투자'의 역습
투자계획 발표를 건너뛰면 정부에 찍힐까 걱정됩니다. 그렇다고 쥐꼬리 투자를 발표하면 민망할 수도 있는 만큼 고민이 깊습니다.기업들이 지난달 윤석열 정부 출범과 맞물려 투자 보따리를 줄줄이 풀고 있다.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내놓은 투자계획만 줄잡아 1000조원을 웃돈다. 5년 동안 약속한 일자리 수도 40만개를 넘어선다. 경쟁적으로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푸념을 늘어놓는 기업인들도 늘었다. 살림살이가 팍팍한 기업들은 머리를 싸매고 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자금을 마련)해서 투자 금액을 짜고 있다는
파리바게뜨 노동자의 단식
전국 3400여 곳에 달하는 SPC 파리바게뜨 가맹점에 들어서면 흰색 작업복을 입은 채 반죽을 만드는 사람이 보인다. 매일 새벽 출근해 빵과 케이크를 굽는 제빵기사다. 커피 등 음료와 샌드위치를 만드는 사람은 카페기사라고 부른다. 이 기사들은 원래 파리바게뜨 본사나 가맹점주가 아니라 전국 11개 협력업체에 고용되어 있었다. 그런데 기사들의 채용과 교육을 관할하고, 근태를 관리하며, 지시하고 평가하고 임금을 결정한 것은 협력업체가 아니라 파리바게뜨 본사였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감독을 벌인 끝에, 2017년 9월 파리바게뜨 본사가 제빵카
'사회적 합의'란 말의 허무함
지난 3일(한국 시각), 수 개월 동안 실시간 전쟁 뉴스가 자리했던 뉴욕타임스의 온라인 톱 기사 편집이 별안간 미국 국내 소식으로 바뀌었다. 여성의 임신중지를 헌법적 권리로 보장한 1973년 로 대(對) 웨이드 판례를 뒤집는 미 연방대법원의 의견서 초안 유출 사건 여파는 그 정도로 파괴적이었다. 50년 가까이 절차적으로나마 유지해온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박탈하는 움직임에 분노의 목소리가 들끓지만, 안타깝게도 트럼프 정부 이후 대법원의 보수 우위 지형이 구축된 까닭에 결론이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다.구태여 임신중지권에 절차적이라는 수식
고교생 논문 저자 만들어주기
별것도 아닌 일로 난리를 친다. 때로는 불의를 보고 참는 용기도 있어야 된다. 2019년, MBC 탐사기획팀의 고등학생 논문 공저자 보도 이후 제가 교수님들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깁니다. 500여건이 넘는 고등학생이 쓴 논문과 발표문을 분석하고 취재해 보도했는데, 그 중엔 제가 박사과정 당시 고등학생과 함께 쓴 논문도 있었습니다. 제가 당사자기도 했기에 교수님들께서 저의 안위를 걱정해하신 말씀이라는 생각도 듭니다.보도 1년 후, 고교생과 논문을 공저한 교수가 소속된 대학에 연구윤리위원회 처분 내역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했습니다. 대부
봄철 꽃가루가 두려운 사람들
해마다 봄은 짧기만 하다. 눈부신 햇살과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1년 내내 봄이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봄은 금방 지나간다. 초여름인 6월만 돼도 햇볕은 따가워지고 장마가 시작된다. 그런데 찬란한 봄을 제대로 즐길 수 없는 사람들도 많다. 봄철 날리는 꽃가루 때문에 알레르기가 심해지는 환자들은 이 시기만큼 고통스러운 시간도 없다. 이맘때 사무실에서도 여기저기서 콧물을 훌쩍이거나 재채기하는 소리가 들려오곤 한다.알레르기의 주요 원인은 누런 먼지처럼 공중에 날아다니는 풍매화 식물의 꽃가루다. 삼나무와 참나무, 오리나무,
스마트폰으로 글쓰기
1주일에 수십 권씩 책 신작들이 쏟아진다. 그 중 가장 직관적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독특한 제목이나 표지, 두께 등 책의 외관이다. 지난달 8일 출간된 드래그 아티스트 모지민 작가의 에세이집 털 난 물고기 모어(은행나무)는 두께에서 확연히 다른 책들과 차별화됐다. 책은 무려 476쪽에 달했다. 통상 에세이는 250~300쪽 안팎이다. 에세이는 가볍게 읽는 장르인데다 MZ세대들은 긴 글을 읽는데 익숙지 않다는 출판사 판단 때문이다. 감히 에세이가 476쪽?이라는 호기심에 표지를 넘겨본 이가 필자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책 분량
한일월드컵 4강 신화 20주년
대한축구협회(KFA)는 2002 한일월드컵 개최 20주년을 맞아 A매치(국가대항전) 기간인 6월 1~6일을 풋볼 위크(가칭)로 정하고 4강 신화 주역과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20년 전 축구대표팀을 이끈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을 비롯해 안정환, 이천수 등 4강 태극전사가 모처럼 한자리에 모인다. 이런 모습은 10주년이던 지난 2012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에도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4강 태극전사가 재회해 과거 영광을 추억한 적이 있다.그런 만큼 이번 20주년 행사는 KFA와 축구인 모두 과거 영광 재조명보다 미래
김정은 정권 10년과 한반도, 그리고 앞으로 10년
북한의 2022년 4월이 흥성거린다. 평양에 80층짜리 초고층 아파트 등 송화거리 공사가 마무리되고 과거 김일성 주석이 살던 5호댁 관저가 있던 자리에는 고급 빌라가 들어섰다. 또 김정은 체제에서는 오랜만에 하루낮 하루밤이라는 영화가 제작돼 전국개봉에 들어갔다. 앞서 지난달 24일에는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또 16일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형전술유도무기 시험발사를 했다.사실 북한의 4월은 늘 축제다. 김일성 주석의 생일이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김 위원장의 집권 10년이 더해지
다시 위기에 처한 한국의 강
처음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것은 지난해 12월쯤이다. 중랑천의 풍경이 이전의 겨울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 내 3곳뿐인 철새보호구역으로, 산책만 해도 숱한 겨울 철새를 볼 수 있었던 중랑천과 중랑천한강 합수부에서 보이는 새들의 수가 예전 같지 않아 보였다.서울 도심에선 드물게 겨울 철새의 서식처 역할을 하는 중랑천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취재해 보니 최근 수년 사이 이 하천을 찾은 철새의 수가 급감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의 논문, 10여년치의 환경부 조류센서스, 시민과학 형태의 시민모니터링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