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業)의 재정의
지난 8년간 워싱턴 포스트(WP)의 격변기를 이끈 마틴 배런(Martin Baron) 편집국장이 보름 전 퇴임했다. 2013년 말 그의 취임 당시 WP는 지역 신문을 고수하고 있었다. 로컬 수익 모델을 가진 글로벌 신문이라는 기묘한 정체성은 그 후 반년 만에 깨졌다. 제프 베조스가 WP 인수 직후 글로벌 뉴스 기업을 표방했기 때문이다.업(業)의 재정의는 어느 기업에나 중요하지만 언론계에서 제기되는 일은 드물었다. 신규 진입자가 거의 없는 과점 체제에서는 별 쓸모없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팩트 기반의 보도 불편부당 같은 직업 윤리가 모
포털, 뉴스에서 손을 떼라
최근 MBC 스트레이트는 포털 네이버와 다음 뉴스가 보수매체에 편향되어 있고 진보매체 배제 성향을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네이버 모바일 마이뉴스 추천에서는 보수언론 48%, 통신사 24%, 방송-중도언론 24%, 진보언론 3.6% 비중으로 기사를 보여준 것으로 나타났다. 포털이 보수편향일까? 포털 뉴스의 장점을 살펴보자. 다양한 언론 기사를 한 곳에서 볼 수 있다. 진보, 보수, 중도의 관점을 두루 접할 수 있고 다른 성별/세대가 어떤 뉴스에 관심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시사, 연예, 스포츠 등 모든 종류의 기사를 볼 수 있다.…
백신 접종, 등수 매길 일인가
먹고 사느라 시사평론가 직함으로 이런저런 방송 출연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분장을 해야 하는 일이 많다. 어느 날은 분장사들이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질문을 하는 거였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우리나라만 맞는 거죠?, 부작용이 상당하다는데 괜찮을까요?당신네 방송에 연일 의사들이 나와 백신은 안전하다고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려다(아마도 분장사들은 비정규직일 것이다) 말았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아는대로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이미 해외에서 수천만명이 맞았고 접종을 미룰만큼의 부작용은 확인된 바 없다, 오히려 특정…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시대정신
학부 마지막 학기가 끝났던 2019년까지 필자는 기후변화에 관심 많은 언론사 지망생이었다. 본격적인 수험생 생활 시작을 앞두고 언시생들이 한 번쯤 찾는다는 한터(한겨레 배움터)에서 기초 강의도 듣고, 신문 스터디도 시작하며 마지막 학기를 보냈다.수험 생활을 포기하기까지 거창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해 9월21일 대학로 앞에서 기후위기 비상행동의 집회가 개최됐다. 기후정상회담을 앞두고 전세계적으로 400만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던 대규모 시민 운동의 일환이었다. 이날 국내 기후관련 집회 중엔 처음으로 5000명이…
투명성,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1월28일 SBS 끝까지 판다 팀의 월성 원전 관련 단독보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내용 못지않게 취재과정에서 검증한 자료를 공개한 방식이었다. 취재진은 검찰의 산업통상자원부 직원 3명에 대한 공소 사실과 이들이 삭제한 파일 530개 목록을 누구나 접근해서 확인할 수 있도록 SBS 뉴스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취재 기자는 앵커와의 대화 말미에 “해당 내용은 검찰이 아닌 적법한 통로로 입수했다는 점을 분명히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라고 언급했다. 최근 몇 년간 특히 검찰 관련 보도를 둘러싸고 취재경위에 대해 뉴스 이용자들이…
한국 언론이 말하는 일본 '우익'이란?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를 그만둔 지 4년이 됐지만, 지금도 프리랜서로 아사히신문GLOBE+라는 온라인판에 한국 문화 관련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아사히신문GLOBE+에서 동아일보 기사 번역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우익은 일본어로 그대로 右翼(우요쿠)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뭔가 뉘앙스가 다른 듯하다.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의 이임 인사차 면담을 거부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일본 측 외교 소식통이 “스가가 우익의 비난을 받을 수 있어서 면
내가 사장이 된다면…
두어 달 전, 한국언론진흥재단으로부터 패널 조사 설문지를 받았다. 질문 중에 ‘사장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내용이 있었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었던지라, 즉흥적으로 적었다. “기자 수를 늘리겠다. 기자들에게 실무 역량 교육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겠다. 기자라면, 스스로 기획하고, 취재하고, 기사 쓰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기사를 데스크가 매번 오랫동안 고쳐야 한다면, 그는 독립된 기자가 아니다. 기사를 그대로 실을 정도로 모든 기자들의 실무적 수준이 올라가야 한다. 그 기본 위에 정파성을 쌓든, 의견을 펼치든…
저널리즘과 '먹고살리즘'
스포트라이트나 포스트처럼 저널리즘을 다룬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 가슴이 벅차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 속 기자들은 주인공은커녕 협잡꾼이거나 세상 물정 모르고 설치는 철부지 조연이다. 하도 답답해 1억원 정도 상금을 걸고 훌륭한 기자를 주인공으로 한 시나리오 공모전이라도 열자고 기자협회에 건의할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런데 그런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는 드라마가 나왔다. 정진영의 소설 침묵주의보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허쉬.16회 이상의 장편 드라마는 첫 인상이 중요하다. 이를 업계 용어로 “멱살 잡는다”고 한
10년 전 미국 언론이 겪은 시행착오
언론사의 2021년 신년사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콘텐츠와 디지털이었다고 한다. 작년과 똑같다. 되돌이표 총론 속에서 한 발 나간 각론이 눈길을 잡았다. ‘구독 모델 뉴스 플랫폼 완성’. 딱 10년 전인 2011년의 미국 언론계를 떠올리게 하는 신년사 제목이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미국 레거시 언론사들의 운명은 2011년에 갈렸다. 그해 3월28일 뉴욕 타임스(NYT)는 페이월을 도입했다. 기사 20건까지는 무료로 읽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을 읽으려면 월 15달러를 내야 하는 정책이었다. 소위 구멍이 숭숭 뚫린(porous) ‘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언론
2020년에도 수없이 많은 오보가 쏟아졌다. 주요 오보의 특징을 살펴보자. 조선일보는 지난해 8월28일 조민,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일방적으로 찾아가 “조국 딸이다, 의사고시후 여기서 인턴하고 싶다”는 제목의 기사를 초판 지면에 실었다가 삭제했다. 조선일보는 8월29일 정정보도문을 게재하고 취재경위를 밝혔다. 세브란스 관계자 등 4명과 식사자리에서 들은 얘기를 기사로 썼는데 정작 당사자는 취재하지 않았다. 조국 전 장관은 오보를 낸 조선일보 기자들을 형사고소했다. 한겨레는 2019년 10월 ‘과거 윤석열 총장이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