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와 마틴 스코세이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한국 영화 역사에 길이 남을 큰 잔치 뒤에는 거장 감독의 많은 명언이 남았다. ‘기생충’의 수상만큼 기쁜 일은 봉준호 감독의 작품과 발언들, 봉 감독이 헌사를 바친 많은 선배 거장들의 작품과 발언이 재조명되는 일이다. 국내 관객들도 함께 손에 땀을 쥐며 ‘오스카 레이스’를 응원하면서 자연스레 다양한 감독들의 명작이 알려지고 관객들은 더욱 풍요로워진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특히 봉 감독이 감독상 수상 소감으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명언을 언급하며 헌사를 바치자 스코세이지의
기상청을 위한 변명
“기상청도 체육대회 날 비 맞았다는데 뭐.”날씨 예보가 빗나갈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우스갯소리다. 최고 기상 전문가가 모인 기상청 직원들이 체육대회 날에 비를 맞았다니 사실일까. 1994년 5월5일자 경향신문 기사 ‘기상청 비 피해 바꾼 행사날 또 비 내려 망신’에 따르면 1993년 10월과 1994년 5월 체육대회 때 비를 맞았다. “하필이면 우리 행사날 이렇게 비가 자주 오는지 모르겠다”는 관계자 인터뷰도 실렸다.날씨 예보가 와장창 틀리는 날이면 포털 사이트에는 불신의 댓글들이 쏟아진다. 여론의 뭇매도 피할 수 없다. 중계청,…
버핏의 투자, 페북의 지원
전설적인 투자자 워렌 버핏은 자신의 투자회사인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주총회에서 2012년부터 매년 작은 이벤트를 해왔다. 신문 던지기(newspaper tossing) 대회다. 약 10여 미터 떨어진 가정집 현관문 모형 앞으로 신문을 가장 정확하게 던지는 사람이 우승자다. ‘컴퓨터 두뇌’ 빌 게이츠도 사방팔방 신문 속지를 흩뿌리며 실패한 이 미션을, ‘신문배달 소년’이었던 버핏은 왕년의 실력을 뽐내며 완수하곤 했다. 주총에 이런 깜찍한 행사를 진행할 정도로 버핏의 신문 사랑은 유명하다. 어릴 적 투자 종잣돈의 원천이었기 때문만은 아니
전지적 검찰 시점과 불가지론 사이에서
‘조국 사태’ 이후 한국 저널리즘과 관련된 여러 질문이 공론장에 제기됐다. 그 중에서도 법조 담당 기자들에게 가장 큰 고민을 안긴 문제는 ‘수사 중인 사건 관련 기사를 어떤 관점에서 보도할 것인지’이다.지난해 12월 한국기자협회 등이 주최한 ‘조국 보도를 돌아보다’ 세미나에서 권석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전지적 검찰 시점’의 문제를 제기했다. 권석천 논설위원은 피의사실 공표나 보도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검찰 취재가 그 자체로 문제는 아니다. 검찰 관점만으로 보는 것이 문제다. 전지적 검찰 시점은 국민의 알 권
2020 남북관계, 과감한 민간 교류로 정면돌파 해야
지난해 12월 초 북한이 ‘성탄선물’을 보내겠다고 한 뒤로 우리 국민은 매일 조심스럽게 택배함을 열어보는 심정으로 싱숭생숭한 연말을 보냈다. 선물은 없었고 2020년 새해는 그럭저럭 평온했다. 아무도 원치 않는 선물은 안 보내는 게 진짜 선물이다.나흘 간 열린 북한 조선노동당 전원회의 결정문에 23번 등장한 ‘정면돌파’를 놓고 해석이 분분했는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해 첫 공개행보로 비료공장을 방문함으로써 정면돌파가 자력부흥의 다른 표현이라는 분석에 무게를 실어줬다. 풀어쓰자면 ‘미국과의 대화에만 매달리지 않고 사회주의 경제강국…
“보도자료 쫌 쉽게 써주세요!”
지난해 9월입니다. ‘주택시장 안정대책 정부 합동 브리핑’이 있었습니다. 핵심은 종부세율 인상입니다. 부동산 대책에 세율까지 더해져 내용이 어려웠습니다. 관련 기사를 하나 쓰고 퇴근하는데 편집부에서 전화가 왔습니다.제 기사에 ‘인상된 종부세율 3.2%가 적용되려면 주택 가격이 181억원을 넘어야 하는데’라는 부분에서 ‘18억원이 181억원’으로 잘못 써진 것 아니냐는 겁니다(오타라고 생각한 듯~). 하지만 181억원이 맞습니다. 인상된 3.2%의 종부세율이 적용되려면 다주택자면서 과표가 94억원을 초과해야 합니다. 과표가 94억원이
젠더 관점에서의 언론개혁, 더는 미룰 수 없다
“허허, 그럼 기자들을 대표해서 박 기자님이 사과하시죠.”‘20대 남성의 반 페미니즘’을 주제로 강의하는 자리였다. 나는 질의응답 시간에 언론이 반 페미니스트 집단을 과대대표하며 오히려 ‘젠더 갈등’을 부추긴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내 말을 듣고 있던 한 중년 남성이 내게 농담조로 던진 말이었다.얼떨결에 고개를 꾸벅 숙여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웃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다. 최근 남성의 페미니즘 수용에 관한 책인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을 내고 페미니즘 관련 강의나 행사에 몇 차례 초청받은 적이 있
‘임금님 은혜’ 특별사면
“OOO를 석방하라!”사면의 계절이다. 이번엔 누가 풀려난다느니, 누구는 틀림없다느니 하며 광장에서 시끄럽게 자가발전 중인 것을 보니, 벌써 겨울이다. 연말연시를 맞아 대대적인 사면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다. 사면의 종류는 ‘일반사면’과 ‘특별사면’ 두 가지다. 정부가 하는 사면은 보통 후자다. 일반사면은 죄의 종류를 정해 여기 해당되는 모든 범죄자를 사면해주는 사면이다. ‘국회 동의’를 필요로 한다. 반면 특별사면은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특정한 자에 대한 특별사면·감형 및 복권을 상신하는 행정부 내 절차로 이뤄져 비교적…
영화 ‘결혼 이야기’
같이 사는 사람이 있다. 아이는 없고, 없을 예정이며, 고양이 한 마리를 같이 키운다. 5년 전 내가 먼저 ‘결혼하자’라고 했을 때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다시 생각해봐.” 나는 그 대답이 좋았다. 결혼을 인생의 목적이나 목표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을 대단한 일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해보고 아니면 그만둘 수 있는 인생의 ‘과정’으로 생각했다. 되도록 실패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이 관계의 결말이 좋지 않더라도 그 실패가 각자의 인생을 흔들도록 두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결혼한 사람
‘진영논리’서 독립한 새 언론을 갈망하며
최근 언론단체의 연례 송년모임이 있었다. 이른바 보수·진보 등 여러 성향의 기자들이 함께 자리했다. 한 해 동안 수고 많았다는 덕담을 주고 받다가, 그만 “우리 모두가 마치 패잔병 같다”는 넋두리가 나왔다. 공연한 소리를 했는가 싶었는데, 한 동료 기자가 공감을 나타냈다. 다른 기자들도 착잡한 표정이었다. 2019년 한국 언론은 위기다. 언론인 중에 이를 부정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기자를 ‘기레기’라고 부르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세상이 됐다. 언론의 생명인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최근 미국방송인 ‘폭스뉴스’에서 중견기자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