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의 죽음과 ‘르상티망(복수심)’
자살은 생명체 내부의 아득한 프로그램 중 하나다. 발생과 분화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없애야 할 때, 또는 세포가 훼손되어 암세포로 바뀔 수 있을 때 세포자살(apoptosis)이 일어난다. 더 큰 이익, 몸 전체를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사람의 자살은 세포 수준과는 사뭇 다르다. 매우 극단적인 ‘공격’이다. 남은 이들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안긴다. 에밀 뒤르켕이 ‘자살론’(1897)에서 “자살은 개인적인 요인이기보다 사회적인 사실 때문이다”라고 쓰기 전까지 자살은 죄악으로 치부되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스스로 목숨
침묵하는 대법원
“변호사 7명을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가 나왔습니다.” 13일 저녁 진보 성향 변호사단체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서울고등검찰청 기자실 브리핑대에 섰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고위 법관들의 인사적체 해소와 이들에 대한 대법원장 영향력 강화를 위해 ‘상고법원’ 설립을 총력으로 추진하고 있었고, 이에 반대하는 변협과 민변 등에 대한 대응문건을 작성했다. 이날 변호사들은 대법원 법원행정처 문건들에 실린 방안이 실제 실행됐는지 피해자 입장에서 조사를 받았다.검찰에서 민변 변호사들에게 제시한 문건은 지
‘불온한’ 영화 ‘파도위의 여성들’
네덜란드 산부인과 의사인 레베카 곰퍼츠와 그의 동료들은 논란을 일으키는 자들이다. 이들은 임신중절을 결정함에 있어 여성 자신의 허락만 있으면 되는 공간을 만들기 원했다. 그래서 배를 띄운다. 임신 초기라면 복용만으로도 임신중절이 가능한 유산유도약을 잔뜩 실은 채였다. 해안에서 20km 떨어진 국제수역에서는 선박이 등록된 나라의 법을 따르면 된다는 점에 착안했다. 임신중절이 금지된 국가의 항구에 배를 대고, 임신중절을 원하는 여성들을 태워, 임신중절이 합법인 네덜란드 법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공해상으로 나갔다. 2001년 네덜란드 로
‘휴대폰 위치추적 위헌’ 판결 톺아보기
미국 연방대법원과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흥미로운 판결을 연이어 내놨다.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휴대폰 위치정보 추적 관행에 제동을 건 판결이다. 두 판결은 휴대폰 위치 정보도 중요한 개인정보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수사기관이 수색영장 없이 휴대폰 위치정보를 수집한 관행을 문제 삼았다. 특히 휴대폰 정보는 ‘제3자 원칙’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점이 눈길을 끈다. 제3자 원칙이란 자발적으로 넘긴 정보에 대해선 프라이버시 보호를 기대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유선전화에 적용했던 이 원칙을 휴대폰 위치정보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과 미국의 이익
한반도 정세 격변은 지난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더욱 활발한 양상을 띠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의 전통적인 엘리트 집단은 줄잡아도 90% 이상이 북미 관계 개선을 향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들의 반응은 현재는 소극적 회의론에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 적극적인 반대 행동으로 돌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대로 방치한다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워싱턴 엘리트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혐오감이…
포스코 내부 기득권 세력의 담합 경계한다
포스코 차기회장 선임 작업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포스코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승계카운슬과 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는 앞으로 열흘 정도 남은 6월말까지 5명 내외의 면접후보 선정→면접→이사회에 최종후보 추천이라는 숨가쁜 일정을 진행한다. 최종 후보는 이사회 승인을 거쳐, 7월말 임시주총에서 차기회장에 선임된다.차기회장 선정 작업은 극비리에 진행되지만, 포스코 안팎에서는 진작부터 하마평이 무성하다. 후보군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뉜다. 한 그룹은 5~6명의 포스코 전현직 사장 출신이다. 또 다른 그룹은 1~2명의 산업자원부 출신 등…
지지율 유지를 위한 문재인 정부의 화두
흔히 지지율로 불리는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도’ 혹은 ‘대통령 직무 수행 만족도’는 국정 운영을 평가하는 바로미터로 통한다. 지난달 취임 1주년을 맞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80%를 웃돌았다. 노태우 전 대통령 이후 실시된 대통령 취임 1년 직무 수행 평가 중 최고 기록이다. “국민들이 국정 운영에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여당 관계자)는 평가도 과언은 아니다. 대통령 지지율 조사는 여론조사기관 갤럽을 창립한 심리학자 조지 갤럽에 의해 미국 32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재임시절인 1937년 최초로 실시됐다. 이후 국정
장사익이 하는 말
가수 장사익은 2016년 초 성대에서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8개월 동안 발성 연습을 하며 노래로 가는 길을 되찾아야 했다. 지난봄에 만난 그는 “희망과 절망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보낸 세월”이라고 했다. “수술하고 쉴 때는 다리 부러진 마라톤 선수처럼 앞이 안 보였어요. 영영 노래를 못 하게 되면 운전을 해야 하나 경비를 서야 하나. 막막했어요. 노래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알았지요. 내가 세상에 나온 이유가 이거구나. 노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어요.”열여섯 번째 직업으로 가수가 된 이 남자, 웃음이 참 많다. 자연스럽게
판사 사찰
입바른 판사는 늘 사찰 대상이었다. 노무현 정부 초대 법무부장관을 지낸 강금실 변호사도 국가안전기획부의 사찰을 당한 적이 있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쓴 ‘사법부-회한과 오욕의 역사’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1984년 10월 5일자 ‘시위학생 즉심, 형 면제 선고자 남부지원 강금실 판사 성향 등 내사보고’에 따르면 안기부는 ‘강금실 남부지원 판사가 1984년 9월 22일부터 같은 달 28일 사이에 두 차례에 걸쳐 남부 즉결심판소에 회부된 서울대생에게 형 면제 선고를 했다’며 그 경위를 내사했다.안기부는 강 판사의 친정과…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고된 훈련을 반복하다 지친 딸에게 아버지는 ‘역시 딸이라 (운동은) 안 되겠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순하고 당연한 해결책을 찾는다. 단백질을 보충해주는 식이다. 어머니가 종교를 이유로 닭을 요리할 수 없다고 반대하자, 아버지는 요리책을 펴놓고 냄비를 꺼내 직접 닭을 조리한다. 인도영화 당갈 속 많은 장면에서 아버지는 딸을 ‘여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한다. 스치듯 지나간 이 장면이 ‘딸’인 나에게만 인상적이었던 걸까. 영화를 함께 본 남편은 그 장면에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아마 남성인 그는 생의 많은 시간을 긍정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