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 후일담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행사에서, 마치 혼자 일을 한 것처럼 얼굴 팔리는 일은 곤혹스럽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 첫 방문지 핀란드에서 내가 그런 일을 겪었다. 헬싱키에 대통령이 오신다고 하니 당연히 교민 사회는 몇 주 전부터 웅성거렸다. 다 합쳐야 삼사백 명밖에 안 되는 교민 사회라, 소문이 안 퍼질 수 없었다. 일손이 부족할 테니, 담당 업무가 없어도 가서 응원이라도 하자며 아내와 의견을 모았다. 서둘러 집 정리를 마치고 로바니에미를 나섰다. 침대칸이 있는 밤 기차에 타자, 아이는 설레어 잠도 안 자며 웃었다.
‘브렉시트 3년’ 뉴스 피하는 영국인들
지금으로부터 꼭 3년 전인 2016년 6월23일, 영국은 유럽연합(EU)에서 탈퇴 여부를 묻는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에서 탈퇴를 선택했다. 과반수의 투표 참가자가 찬성한 만큼 영국이 맺어 온 국제 관계에 어떤 파장이 미치더라도 돌이킬 수는 없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스스로 EU 잔류를 주장했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곧바로 총리직 사임을 발표했다. 그 후임은 전 내무부 장관이자 영국은행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테레사 메이였다. 메이 총리는 취임 후 국민투표의 “결과를 존중하기 위해” 2017년…
스포츠로 하나 된 캐나다
최근 몇 주 캐나다인들은 꿈을 꾸었다. 온 나라가 열기에 들떠 하늘을 날았다. 절정의 순간은 물론 지난 13일, 미국프로농구(NBA) 2018-2019 시즌 챔피언 결정전 6차전 경기 종료 부저가 울린 그 때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홈 경기장인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의 오라클 아레나에서 열린 이날 경기에서 토론토 랩터스가 마침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114 대 110으로 누르고 새로운 챔피언이 된 순간, 토론토 스타디움에 모여 함께 관전한 수천명의 시민들, 어린 자녀도 재우지 않고 TV 중계를 함께 지켜본 많은 가족들이 전
궁서설묘(窮鼠齧猫)
예상 밖 전개다. 일단 봉합될 것 같던 미·중 갈등, 휴전이 임박해 보였던 무역전쟁이 다시금 격화하고 있다. 양측이 무역협상 합의 무산을 놓고 네 탓 공방 중이지만, 본질은 ‘궁서설묘(窮鼠齧猫)’ 즉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문 것이다. 애초에 중국 수뇌부는 미국과 본격적으로 맞서는 것을 원치 않았다. 중국은 과거부터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것을 싫어했다. 안정적인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탓이다. 특히 1980년대부터 지속돼 온 고도 성장기가 끝나고 빈부 격차 등 내부 모순이 표면화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중
‘페르소나 논 그라타’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의 행보를 둘러싼 논란이 꼬리를 물고 있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취임 후 미국과 칠레, 이스라엘을 잇달아 방문했다. 관례를 깨고 남미 국가가 아닌 미국을 첫 방문지로 선택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축구 유니폼을 교환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칠레와 이스라엘 방문에서는 적지 않은 구설을 낳았다.칠레에서 보우소나루는 우파 정상들과 함께 새로운 지역국제기구인 프로수르(PROSUR) 창설 선언문에 서명했다. 좌파 주도의 남미국가연합을 무력화하는 이벤트였다. 이어진 칠레 대통령과의 회담
언론자유지수 176위의 나라
베트남에서 지내며 여러 대목에서 놀라고 있지만, 외신기자로 살면서 접하는 이곳 현지 기자들에게도 적지 않게 놀란다. 여러 가지 있지만 우선 취재경쟁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회주의 영향도 있겠거니 하지만 다른 분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언론계의 ‘무경쟁’은 유독 심하다.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 현지 공항 등지에서 촬영한, 눈에 띄는 단독 사진ㆍ동영상 기사들이 나왔지만, 특정 사안에 대한 보도는 대부분 비슷하다. 당국이 발표하는 내용을 주로 싣는다. 북미 간 회담이긴 했지만, 베트남 기자들은 자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페이스북은 시대적 소명이 끝날 때 사라진다
“이제 페이스북을 해체해야 할 때다.”마크 저커버그와 함께 하버드대 기숙사에서 페이스북을 창업한 크리스 휴즈가 지난 9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이 같은 주장이 담긴 장문의 기고문을 게재해 실리콘밸리 안팎에서 큰 화제가 됐다. 페이스북이 개인정보 보호, 가짜뉴스 확산 등에 문제가 있으니 정부가 규제해야 하고 심지어 인위적으로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크리스 휴즈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미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들이 페북 해체를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크리스 휴즈는 저커버그 개인은 물론, 페이스북을 가장
어벤져스와 해커톤, 그리고 미디어
뉴스보다 훨씬 흥미로운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에 언론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세간의 화제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대사처럼 ‘모든 걸 걸고’(Whatever it takes) 달려든다면 과연 살길이 있긴 할까? 현실에는 인피니티 건틀렛만큼 강력한 무기도 없거니와, 시리즈를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팬도 없다. 무엇보다 뉴스 미디어가 그동안 나름대로 구축한 ‘세계관’이 통째로 흔들리는 상황이니, 누구도 생존비법을 찾지 못하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 얼마 전 핀란드 로바니에미에서 열린 해커톤(hackathon) 대쉬 라플란드(Dash La
21세기 이민자들
“한국에서 행사무대 디자인을 했어요. 시장이 큰 건 아니지만, 그 분야에선 큰 회사였어요. 그 경력을 살려서 여기서 취직을 하려고요. 와보니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는 않네요. 캐나다에 왜 왔냐고요?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여자에 대한 장벽도 많고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캐나다에서는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잖아요.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생각이었고, 취직 해서 눌러 살 생각이에요.”30대 초반의 A씨를 밴쿠버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그런가보다 했다. 먹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마지막 기회’였던 이민의 개념이, 이제는 취업
영국 극우주의 집단·정당, SNS서 ‘아웃’
앞으로 영국에서 극우주의 집단과 정당들의 소셜미디어 활동이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8일 페이스북은 영국국민당(BNP)을 비롯한 극우주의 단체, 이들 단체와 연루된 주요 인사들의 계정을 영구적으로 삭제했다. 증오와 폭력을 조장하는 게시글을 올렸다는 이유에서다. 이어 이들을 “지지하거나 칭찬을 남기는” 계정의 활동까지 규제 범위를 확대할 계획을 밝혔다.물론 페이스북이 영국 내 극우 인사의 계정 활동을 금지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 2월 백인방어연맹(English Defence League)의 창립자로 페이스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