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닉’과 ‘월스트리트 저널’ 사이에서
지난 5월 미디어 스타트업 뉴닉을 방문해 김소연 공동대표를 만났다. 철지난(?) 이메일 뉴스레터로 사람들의 반향과 호응을 끌어냈다는 점이 신기했다. 2018년 12월 서비스를 시작해 불과 5개월 만에 3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확보했다. 직원은 5명이다. 10년 전쯤 기존 언론사들이 앞다퉈 이메일 뉴스레터를 보낸 적이 있다. ‘아침마다 주요 뉴스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며, 대략 5~15개 정도의 기사를 모아서 신청자에게 보내줬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스팸이 됐다. 지금 많은 언론사들은 뉴스레터 프로그램을 접었다.뉴닉의 김 대표와 이
정정보도, 신속하고 책임감 있게 이뤄져야
지난달 22일 조선일보가 정정보도를 냈다. 수업시간 ‘퀴어축제’ 보여준 여교사…그 초등교선 “야, 너 게이냐” 유행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는 2017년 8월25일 게재되었는데, 헤드라인부터 악의적으로 왜곡되었다. 정정보도문을 보면 첫 보도는 가짜뉴스 수준이다. 해당 교사가 초등학교에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고 발언한 사실과, 허위사실로 밝혀진 ‘부적절한 언행’,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일부 학부모의 주장’을 섞은 배치에서 이 기사의 의도가 투명하게 드러난다. 교사의 인격과 발언의 신빙성을 훼손하
정치인 ‘막말’과 기자의 역할
정치인의 ‘막말’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접하면서 기자의 역할과 저널리즘의 기능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된다. ‘막말’은 민주적 시민성에 위배되는 지극히 무례한 행동이다. 그럼에도 엘리트 정치인들의 ‘막말’이 연일 계속된다. 참여적이고 당파적인 유권자의 정치 담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될 때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 ‘막말’은 비롯된다. 정치 엘리트들의 ‘막말’은 언론의 뉴스생산 관행을 이용하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행위이다. 갈등에 주목하고 정치를 게임으로
100년의 불신
소셜미디어에는 날마다 언론보도를 팩트체크하는 글들이 올라온다. 팩트를 점검하는 것은 언론의 기능인데, 다른 무엇도 아닌 언론이 점검의 대상이 돼버렸다. 팩트가 틀린 기사가 너무 많으니 이젠 기자들이 어떤 의도로 뭘 어떻게 틀렸는지 시민들이 체크한다. 정치적 분열과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언론 기사와 팩트체크가 한쌍으로 묶여버렸다.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에서 한국의 언론 신뢰도가 38개국 중 최하위로 나타났다는 보도를 봤다. ‘뉴스 대부분을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 비율이 한국에선 22%에 그쳤다. 5명 중 4명은
기업 보도자료 ‘토씨’ 정도 바꿔서 낸 연합
정보공개청구를 강의하면서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이 제자의 ‘정보공개청구’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시 전통시장과 기업형 슈퍼마켓(SSM) 현황’을 알아내고, 조례 개정까지 끌어낸 건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심장이 쿵쾅댔다. 지난달 31일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연합뉴스가 삼성그룹 보도자료(지난 2월1일~5월9일 기준)를 기사로 내는 비율이 98.9%라고 밝혔다. 이에 뉴스 도매상이면서 소매상인 국가기간뉴스통신사가 새로운 내용 없이 요약하는 수준으로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며 일침을 가했다. 앞서 민언련은 언론사별 삼성 보도자료의 기사화 비율을 보
‘그냥’ 저널리즘
저널리즘은 사전적으로 사안을 취재하여 보도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사안은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일이나 안, 취재는 보도를 위하여 필요한 자료를 찾거나 모으는 것, 보도는 신문이나 방송 등 매체를 활용하여 일반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실을 알리는 것으로 정의된다. 교과서적 의미에서 저널리즘은 민주주의 공동체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 권력을 감시하며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사안들을 취재하여 보도하는 행위 전반을 말한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저널리즘 앞에 수식어가 자주 붙고 있다. 데이터 저널리즘, 알고리즘 저널리즘, 컴퓨터 저널리즘,…
조폭 닮은 ‘언론사 노동 문화’
얼마 전 한 신문사 부국장의 칼럼이 회자됐다. ‘칼퇴근 판사’의 ‘워라밸’ 풍조(?)를 개탄했다. 기자 초년 시절 자신의 살인적 노동을 풀어놓기도 했다. 예상대로 수많은 비난이 달렸다. 그보다 2년 늦게 기자가 됐다. 비슷한 날들을 지났다. 지금도 큰 아이 어릴 때 기억이 별로 없다. 얼마전까지 부장을 할 때는, 저녁 약속이 없으면 그냥 회사에 있었다. 그러니 집에는 늘 밤 11~12시에 도착했다. 별로 힘들지 않았다. 힘든 일을 계속하긴 힘들다. 내 또래 기자들이 다 그리 살았다. 그런데 그리 지나온 삶이 자랑스럽기보단 민망하다.
가정의 달과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
나에게는 나이 터울이 많이 지는 동생이 두 명 있다. 내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일 때 혼자서 동생을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은 곤혹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니~는…아닌 것 같은데…?” 동생이라고 말하면 그제야 눈에 띄게 안도했다. 눈 앞의 내가 ‘어린 나이에 혼자 아기를 낳아 키우는 여자애’가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듯이. 나에게는 해프닝에 불과하지만 엄연히 누군가를 찌르는 폭력인 이런 태도는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에 기반한다. 김희경의 이상한 정상가족(동아시아, 2018)을 인용한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는 결혼제도 안
언론, 민의 반영되는 정치체제 작동에 기여해야
7일 오전 8시 즈음 자유한국당(180만38명)과 더불어민주당(31만408명) 정당해산청원 참여인원이 20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정당이 민의를 반영하는 채널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적인 여론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자 규모가 ‘역대급’이고 참여인원의 크기가 정당에 따라 큰 격차를 보여 그런지 지상파방송, 종이신문, 인터넷언론은 너나할 것 없이 사설과 의견기사 그리고 사실보도를 통해 관련소식을 다룬다. 그런데 보도내용이 영 마뜩잖다. 청원인 숫자, 예상되는 청와대 답변, 정당 청원에 대한 보수언론의
기자의 윤리, 기자의 범죄
기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윤리의식 혹은 도덕성이 필요할까. 윤리의식의 절대적인 양을 측정할 수는 없으니 질문을 좀 다듬어보자. 기자에게는 ‘보통 사람들’ ‘독자들’보다 더 높은 윤리의식이나 도덕성이 필요할까. 기자의 윤리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보편적인 윤리의식이 있는가 하면, 취재와 보도를 하면서 지켜야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윤리가 있다. 둘은 분리될 수도 있고, 때로는 하나일 수도 있다. 기자들이 취재나 보도를 하면서 금품을 받아선 안 되고, ‘취재 편의’라는 명목으로 합당하지 않은 대우를 요구하거나 받아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