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35년 만화에 담아…목숨 던진 ‘무명의 독립운동가’ 기억하길”
박시백 화백은 일제 강점 35년의 역사를 다루려 미리 예견한 듯 했다. 서른 후반에 시작해 쉰이 되어서야 완간한 대하역사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마지막 권(20권) ‘망국’편은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을 담은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독립전쟁의 길은 고문과 투옥, 총살과 교수대 그리고 가족의 고난과 곤궁이 예정된 길이었다. 그 모든 걸 감당하며 역사 앞에 이름 없이 사라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선조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가 있다.”전작에서 예고한 후속작 ‘35년’은 일본에 강제 병합된 1910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일제강점기 35
최문순 “올림픽에 손님 초대해놓고 싸우는 건 예의 아냐”
인터뷰가 한창인데, 참모들은 시계를 연신 가리켰다. 빨리 끝내달라는 메시지였다. 빡빡한 일정을 비집고 인터뷰 약속을 잡은 터에 독촉까지 받으니 마음이 급해졌다. 취재진의 이런 마음을 엿보았는지 원주로 가야할 시각이 지났지만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일어서지 않았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최 지사의 하루는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인터뷰가 있던 지난 2일만 해도 춘천 강원도청에서 원주, 원주에서 기차를 타고 강릉, 평창 겨울음악제로 이어지는 일정을 소화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단 규모는 얼마나…
이 가족의 제보로 최순실 게이트 빗장이 풀리다
‘최찾사’. 최순실을 찾는 사람들을 줄여 부른 것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취재한 한겨레 특별취재반을 말한다. 최찾사의 치열한 취재가 없었다면 대통령과 재벌의 검은 거래, 특정 문화·예술인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하는 ‘블랙리스트’ 등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최찾사는 최순실을 추적하면서 100명이 넘는 취재원을 만났다.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취재원은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을 지낸 정현식씨 가족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취재는 아무리 유능한 기자라도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내밀한 사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 노래로 달래며 살았죠”
차량이 망월동 5·18묘역 입구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김종률씨의 기억은 35년 전 봄날을 더듬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을 부여안고 살던, 그야말로 황폐한 시절이었다. 1982년 4월쯤, 광주항쟁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의 혼령과 그의 들불야학 시절 후배 박기순의 혼령이 만나 결혼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선후배들은 두 남녀의 혼백을 위로하는 노래극을 만들기로 했다. 대본은 소설가 황석영씨가 맡고, 그는 작곡을 담당했다. 노래극 8곡 중 7곡은 그가 작사 작곡해 놓은 걸 가사만 바꿨는데, 영혼결혼식을 하고 하늘로 올라
“월급이나 명함 두려워해선 기자 못하죠”
기사 많지만 제대로 된 기사 없어뉴스 순서·전달방식 모두 판박이정보가 아니라 가공이 중요맥 짚어주는 뉴스 있었으면인터뷰 끝난 뒤에도 사실관계 꼼꼼히 확인하던 기자 기억나이제석씨를 만나러 망원 한강공원 한 카페에 도착했을 때 성산대교에 어둠이 막 내리고 있었다. 막힘없이 흘러가는 저 강물처럼 그는 주류에 도전하고 권위를 뒤틀며 ‘광고쟁이’의 꿈을 키워왔다. 그는 세계 유수 국제광고공모전을 휩쓸어 ‘광고천재’로 불린다. 그런 그에게 70년 역사의 경향신문은 기꺼이 1면을 내줬고, 그는 컵라면과 삼각 김밥의 파격적인 이미지로 고달픈 청춘
장강명 “난 지금도 기자, 현장의 울림 전하고 싶어”
기자 5년차 ‘뭐하고 있나’ 자문스스로 위로하기 위해 소설 집필하루에 8시간 이상 쓰고 또 써한겨레문학상으로 소설가 등단어느 날 ‘울컥해서’ 회사에 사표1년 수입 30만원, 맥주병 팔기도문학상 4개 당선으로 필명 날려20~30대 초반 청년들에게 주목간판에 집착하는 한국사회 문제신문, 공급자 위주·정파성 강해기자, 다른 직업 비해 기회 많아틈틈이 책 쓰고 커리어 쌓아야장강명 소설가와 인터뷰를 하면서 알았다. 그가 이달 중순 출간 예정인 에세이 ‘5년 만에 신혼여행’을 온라인에 사전연재하고 있다는 걸. 그동안 올라온 연재물을 몇 편 읽
우리 이야기가 신문에 나왔다고 태일이는 활짝 웃었다
버스에서 근로기준법 읽어주던똑똑하고 순수했던 친구 전태일기사 나왔을 때 흥분했던 기억태일의 전신이 불길에 휩싸였을 때점퍼 벗어 불길 끄면서 들었던“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못 잊어종인씨 전태일 재단에 1억 기부승철씨 캄보디아에 학교 지어줘“태일이의 정신 계속 간직할 것”이승철(68)씨는 46년 전이지만 전태일과의 첫 만남을 똑똑히 기억했다. 1970년 9월 중순, 추석 대목이 끝나 평화시장이 잠시 한가하던 때였다. 먼 친척이자 친구인 최종인과 국민은행 앞길에 있는데 전태일이 다가왔다. 최종인은 이승철에게 “참 재미있는 친구”라고 전
조정래 작가 “동료기자들 내쫓기는데 왜 가만있나”
긴 기다림 끝에 이뤄진 인터뷰다. 4년 전 이맘때, 인터뷰 시도는 새 소설 집필 준비와 겹쳐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다 기회를 잡은 터라 빨리 뵙고 싶은 마음은 줄달음쳤다. 하지만 영동고속도로는 휴가철 차량으로 넘쳐났다. 아침부터 기다렸을 두 분을 생각하며 가슴을 졸여 달리길 5시간여, 마침내 강원도 평창의 한 리조트에 도착했다. 왜 이렇게 늦게 왔냐는 지청구를 들을까 살짝 겁이 났다. 사실 휴게소에 들러 점심을 때우고 있을 때 어디까지 왔냐는 전화를 한 차례 받은 터였다. 숨을 돌리고 있는데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씨가 부인 김초
“언론, ‘고시원 사는 친구’에 관심…그 너머 청년을 봐달라”
청춘(靑春). 한때 그것은 낭만의 언어였다. 젊음은 특권이었고, 시대는 청년의 저항과 도전을 넉넉히 받아 주었다. 그런데 요즘의 청춘은 우울의 표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고 기록을 경신 중인 청년실업률과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청년자살률 때문만은 아니다. 88만원 세대의 우울은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를 넘어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오포세대’로 확장되고 있다. 기성세대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다독였지만, 돌아온 것은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라는 반문과 ‘아프면 환자지 뭐가 청춘이냐’는 조소였다
“제대로 밝혀진 게 없는데 세월호 왜 잊으라고 하나”…
“상처만 남은 1년, 달라지겠다던 약속 지켜달라”“민성이와 많이 놀러왔던 곳인데….” 민성 아빠 김홍열씨는 화랑유원지를 두리번거렸다. “롤러장도 있어요. 여긴 공연장이고, 저쪽에 매점도 있고….” 어린 민성이가 환하게 웃으며 뛰어놀았던 기억이 살아나는 듯 아빠의 눈동자는 조금씩 흔들렸다. 단원고 2학년 학생 김민성군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3박4일간의 제주도 수학여행을 마치고 금요일에 돌아오기로 했던 민성이와 친구들은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 영정 사진으로만 남았다.아들을 먼저 보내고11달남짓살아왔을 뿐인데 잔인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