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도 5월 광주가 있다
살가운 회사 후배가 자카르타 특파원 부임 전 다큐멘터리영화 한편을 소개했다. 2007년 5월 공개된 미국 중앙정보국(CIA) 보고서에서 ‘20세기 최악의 집단학살 가운데 하나’라고 밝힌, 인도네시아 1965년 대학살을 다룬 ‘액트 오브 킬링(Act of killingㆍ2012)’이다. 학살 가담자들이 당시 살인을 재연하는 내용이다. 영화는 자막과 함께 시작한다.‘인도네시아 정부는 1965년 (수하르토) 군부가 장악했다. 군부 독재에 저항하면 공산주의자로 몰렸다. 노조원, 무전 농민, 지식인, 화교가 그들이다. 1년도 지나지 않아 서
수석침류와 오월동주
중국 진(晉)나라 때 손초(孫楚)라는 사람이 당시 유행하던 청담사상(淸談思想·염세적 세계관)에 심취해 속세를 등지고 은거하려 했다. 이 같은 결심을 친구에게 전하며 “흐르는 물을 베개 삼고 돌로 양치질을 하겠다(漱石枕流·수석침류)”고 말했는데, 사실은 돌을 베개 삼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을 하겠다(枕石漱流·침석수류)는 걸 잘못 말한 것이다. 친구가 핀잔을 주자 손초는 “돌로 양치질하겠다는 건 모래로 이를 단단하게 한다는 뜻이고 물을 베개 삼겠다는 건 되지 않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귀를 씻겠다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잘못된 논리나 실수를
코로나보다 위험한 트럼프의 ‘직관주의’
“바이러스를 1분 안에 없앤다는 소독제를 인체에 주입해 환자의 폐에 있는 바이러스를 씻어낼 방법이 없을까?”코로나19의 치료법으로 누군가가 이런 제안을 했을 때,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은 이성주의자(rationalist) 에 속한다. 반면, 솔깃했거나 그럴듯하게 들렸다면 당신은 직관주의자 (intuitionist)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지난 23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정례 브리핑에서 던진 제안이다. 일각에서는 브리핑 분위기를 밝게 하고자 던진 농담일 수 있다는 반응도 있지만, 지금까지의 행보와 당시 정황으로 미루어볼…
‘가짜뉴스’라는 유령
‘가짜뉴스’는 어디에나 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자신이 가짜뉴스를 보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마치 유령처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다.지난 미국 대선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굵직한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가짜뉴스가 생성되고, 또 사회각계에서 회자되는 것을 보면 그 파급력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독일에서도 가짜뉴스는 여러 정보창구를 통해 생성되고 소비되며 위력을 떨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난민신청을 위해 임시체류를 허가받은 피난민들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담은 가짜뉴스가 확산되었다. 현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아베 스타디움’과 3루 기자들
“질문 아직 남았습니다.”2월29일 주말 저녁,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작은 소동이 일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코로나19와 관련 첫 기자회견. 사회를 본 내각 공보관이 회견 종료를 알리려는 순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에가와 쇼코씨가 손을 번쩍 들었다. “왜 제대로 답하지 않나요?”, “물을 기회를 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총리는 못 들은 척 그대로 회견장을 나가 버렸다.회견은 36분짜리였다. 회견문 읽는데 19분, ‘관저 기자클럽’ 질문 5개에 답하는데 17분을 썼다. ‘관저 기자클럽’은 우리로 치면 청와대 출입기자단이다. 전반부가…
핀란드 ‘올해의 기자상’은 TV로 중계한다
핀란드에서도 좋은 언론 보도를 선정해 시상한다. 기자협회는 좋은 보도나 기획물을 찾아 기사와 기자를 소개한다. 평소엔 언론계 소식을 전하고, 주요 사회적 현안에 맞춰 알고 있어야 할 취재 윤리 가이드라인과 안전수칙을 발 빠르게 안내한다. 특히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를 위한 고용 관련 정보, 이를테면 코로나19 상황 속에 예고 없이 업무 계약이 취소되어 소득 타격을 입은 회원들을 위한 정보는 유용하다. 연초에는 임금협상 및 파업예고와 관련한 내용이 많이 올라오기도 한다. 딱딱한 언론계 소식 가운데 ‘올해의 기자대상’ 수상작 발표가 눈에…
코로나19 위기보다 더한 ‘대통령 스트레스’
전 세계를 휩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남미대륙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브라질도 덮치고 있다. 지난 2월 말에 첫 확진자가 보고된 이후 상황이 빠르게 악화하면서 3월 들어서는 2~3일마다 확진자 수가 배 이상 규모로 늘고 있다. 철저한 방역과 주민 이동 제한, 대규모 격리 등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4월 초순에 확진자가 20만여명, 사망자는 5천여명에 달할 것이라는 보고서도 나왔다. 결국 브라질 정부는 하늘과 바다, 육로를 통한 외국인 입국을 막았고, 지역사회 확산을 막기 위해 상가의 영업 활동과 학교 수업을 금
문재인 대통령, 홍준표 장관
지난해 4월 인도네시아 대선 유세 현장 취재는 고역이었다. 체감온도 40도를 넘나드는 유세장을 쫓아다니느라 살점이 3㎏ 떨어져나갔다. 7㎞가 넘는 유세 구간을 챙기려고 오토바이 뒷좌석에 2시간 앉아 ‘모터사이클 르포’도 시도했다. 연설을 마친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에게 몰려가는 군중에 떠밀려 밟히기도 했다. 땀에 젖고, 비에 젖었다.선거 당일 동네 투표소는 신선했다. 얼굴이 훤히 보이는 골판지 칸막이로 만든 기표소, 후보자들 증명사진을 모두 넣은 A2 남짓 크기의 총선 투표용지, 기표용 대못, 투표 후 손가락에 묻히는 중복 투
태세 전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지 두 달 넘게 지난 2월10일에야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국가적 위기를 맞았는데 최고 지도자가 두문불출하고 있다는 비판에 못 이겨 나온 시 주석은 “부족한 부분이 수없이 많았다”고 자인했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이 경과한 지난 10일 코로나19 발원지로 꼽히는 후베이성 우한에서 의료진과 만난 시 주석은 형세가 전환됐다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시 주석이 태도를 바꾼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우한을 다녀간 이틀 후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트럼프식 코로나 대응의 치명적 위험
코로나19 감염자가 중국을 넘어 한국, 이탈리아 등지에서 속출하면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미 전세계 90여개국에서 10만여명의 감염자가 나왔다. 사망자수도 3000명을 넘어섰다. 최근 호주를 비롯, 99개국은 한국발 여행자의 입국을 제한했다. 이탈리아는 감염 경로 차단을 위해 밀라노와 베네치아를 사실상 봉쇄했다. 그야말로 전세계적 위기다. 그런데 미국 텍사스에 사는 필자에게 그동안 코로나19는 외신으로 접하는 먼 나라의 분쟁 소식만큼이나 체감되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가족·친지들 중 다행히 감염자가 없고, 아직 지역 내 확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