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보다 중요한 물신 숭배로부터의 해방
경남 의령에 갈 일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을 한 백산 안희제 선생과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물리친 의병장 망우당 곽재우 두 분 생가를 찾아서였다. 그런데 가장 먼저 눈에 띈 안내판은 ‘호암 이병철 선생 생가’였다. ‘이병철’은 많이 들어봤는데 ‘호암’은 아는 이가 많지 않을 듯 싶다. 뒤에 ‘선생’이라는 존칭까지 붙어 있으니 어쩌면 영웅적 인물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알고 보면 삼성 재벌을 창업한 바로 고(故) 이병철 회장이다. 그는 법적
‘검찰 특검’ 내곡동 특검,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이른바 ‘내곡동 특검’의 수사 속도가 빠르다. 개청식 다음날 주요 관련자들을 일제히 출국 금지했다.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검찰은 얼굴도 직접 못 봤던 대통령 아들을 수사 개시 열흘 만에 소환해 조사하는 등 발걸음이 신속하다. 솔직히 국민들 사이에 특검 수사 결과에 큰 기대는 없을 것이다. 비슷한 상황을 많이 봐온 탓이 크다. 그렇지만 이번 특검은 이미 상당히 성공적이다.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반적이고 정상적으로 보이는 수사 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 결론을 뒤집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IT 일자리 만들기’와 대선후보들의 자가당착
대선의 시기다. 모두 정치 얘기를 한다. 그중에서도 첫째 화두는 ‘일자리’다. 주요 후보들 모두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한다. 그것도 정보기술(IT)을 이용해서 혁신을 하고, 스마트한 경제 발전을 이루겠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그들이 진지하게 IT를 생각해 보기나 한 건지 잘 모르겠다.일자리와 기술은 애증의 관계다. 기술 발전에 따른 생산성 향상은 풍요와 함께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낸다. 하지만 급격한 기술 발전은 필연적으로 그 과정에서 변화에 뒤처지는 사람을 만들고 그들의 일자리를 뺏는다.역사적으로 이런 시기가
국민통합과 일자리의 급소는 재벌개혁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는 대한민국대통합위원장을 직접 맡았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는 일자리혁명위원장을 맡았다. 대선후보가 직접 나선 것은 그 자리가 이번 대선에서 그만큼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는 직접 특정 자리를 맡지는 않았다. 하지만 집권하면 대통령 직속의 ‘재벌개혁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대통합과 일자리, 재벌개혁은 모두 중요한 과제들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새로운 시대를 여는 급소는 무엇일까? 우리 시대의 국민대통합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은 양극화다. 따
마흔, 벌써 불혹의 나이라니
많지도 적지도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올해처럼 나이를 실감한 적은 없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에 걸리더니, 날이 흐리기 전날은 무릎도 조금씩 시큰거린다. 건망증이 생겼다. 회사일은 손에 익었지만 대신 업무량이 엄청 늘었다. 선배 눈치는 기본이고 이제는 후배 눈치까지 슬슬 봐야 하는 어정쩡한 중간 관리자. 아껴 쓰고 절약해도 애들 교육비에 허리가 휘청거리며 노후대책이 걱정된다. 드라마에서 이별을 앞둔 남녀 주인공이 눈물을 펑펑 흘려도 마음이 동하지 않지만, 굴러다니는 낙엽을 보니 싱숭생숭해지는 나는, 올해 마흔이다. 그래서일까…
한국 경찰관, 미국 경찰관
워싱턴 DC에 특파원으로 부임한 직후로 기억한다. 외곽으로 뻗은 66번 고속도로에서 추돌사고를 당했다. 러시아워에 이슬비가 내리고 있을 때였다. 목과 상반신에 큰 충격이 왔다. 구입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은 자동차 후미에는 흠집이 났다. 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심리적 이유 때문일까. 목 주변의 통증이 심해졌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불과 5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다. 경찰차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185㎝를 훌쩍 넘는 키의 미국 경찰관이 다가왔다. 앞뒤로 오가며 사고 상황을 살펴봤다. 내 설명도
인간은 원숭이·앵무새보다 못하다?
“주가 예측은 신도 못한다.” 주식으로 돈 버는 사람이 전체 투자자의 1%도 못 되는 현실에 대한 레토릭이다. ‘사면 내리는’ 기막힌 ‘머피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인데도 주식에서 손 떼지 못하는 인간에 대한 위안이기도 하고.레토릭은 실험으로 입증됐다. 2000년 미국 월스트리트에서는 펀드매니저와 일반인, 원숭이가 주식투자 대결을 벌였다. 결과는?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걸 보면 눈치챘겠다. 원숭이가 이겼다. 2000년 7월~2001년 5월 원숭이는 -2.7%, 펀드매니저
미셸 여사와 명품연설
국제국에 근무하다 보니 미국 대선전을 더 가까이 들여다 볼 수 있다. 지금은 굳이 공화당과 민주당 전당대회장에 직접 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후보들의 연설은 유튜브를 통해 직접 들어볼 수 있다. 모처럼 영어 공부 겸해서 한번쯤 정견이 압축된 연설을 들어보실 것을 강추한다. 우리가 다른 나라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바로 우리 정치를 되돌아보고 비교할 수 있는 좋은 준거가 되기 때문이다.이번 미 공화·민주 전당대회 연설 가운데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퍼스트레이디인 미셸 오바마의 찬조 연설이었다. 앞서 열린 공화 전당대
경남에서 출판기념회가 왜 잦을까?
곳곳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예전에는 문인들이 주로 했는데 요즘은 정치인들이 많이 한다. 경남은 더하다. 도지사 선거가 보궐로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러지기 때문이다.도지사 보궐선거 출마 예상자가 스무 명을 웃돈다. 3일에는 박완수 창원시장이 도지사 선거에 나서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면 창원시장 보궐선거까지 함께 하는 수도 생기겠다.이런 가운데 도지사 보선 예비후보로 선관위에 등록한 새누리당의 하영제 전 농림수산식품부 차관이 8월 29일 창원 한 호텔에서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하 예비후보는 독특하게도 그 날 두 가지 책의 출판
제2의 ‘카카오스토리’ ‘라인’을 위하여
구글은 대단한 회사다. 세계 최대의 검색 업체로 모바일 시장도 애플과 함께 양분한다. 온갖 놀라운 신기술을 하루가 멀다 하고 선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거기까지다. 사람들은 구글 검색은 열심히 쓰지만 구글의 다른 제품들은 영 쓰질 않는다.이유는 단순하다. 구글 제품들은 혁신적이긴한데 좀 지나치게 앞서 간다. 구글이 야심차게 만든 ‘크롬북’이란 노트북은 컴퓨터는 컴퓨터인데 전원을 켜면 달랑 웹브라우저 하나만 나온다. 모든 걸 인터넷으로 할 수 있는 시대이니 인터넷만 되면 된다는 논리지만 결국 이 노트북은 구글 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