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권력이라고 침묵하나
얼마 전 서울고등법원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국가정보원법 및 공직선거법위반죄로 유죄를 선고했다. 앞서 국방부 보통군사법원도 지난해 말 정치관련 댓글 작성 의혹으로 기소된 연제욱·옥도경 전 국군사이버사령부 사령관에 대한 1심 판결에서 군형법상 정치관여 금지죄를 적용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가 이들 공직자들의 지휘를 받아 지난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불법적인 선거운동을 하였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의혹의 시선이 당시 행정부의 수반인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정보원법에는 “국가정보원은 대통
언론의 존재 이유
언론인이라면 언론의 존재이유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고 고민해봤으리라 믿는다. 이에 대한 언론인들의 결론이 자못 궁금하다. 특히 최근 총리 인사청문회 같은 사건을 겪으면서 더욱 그렇다. 언론을 협박한 총리 후보자국무총리 후보자가 기자들 앞에서 TV에 나온 패널을 빼게 만들었다거나 언론사 간부에게 압력을 넣어 기자들의 인사를 좌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수, 총장도 만들었다 하고, 언론인들을 포함시킨 김영란법 통과를 자신이 막아 왔는데 통과시켜야겠다고 협박도 했다. 범부의 발언이 아니라 실세 총리가 되겠다는 후보자의 발언이라서 흠칫하
무엇을 보도하고 무엇을 킬(kill)할 것인가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4000억원’을 폭로한 인물을 흔히 박계동 민주당 의원으로 기억한다. 박 전 의원이 1995년 10월 19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신한은행 서소문 지점에 차명으로 300억원을 예치하고 있다’면서 예금잔고조회 문서를 흔들던 모습을 선명하게 떠올리는 탓이다. ‘노태우 비자금 4000억원’의 폭로의 시작은 ‘상도동계 맏형’ 격인 서석재 전 총무처 장관이었다. 서 전 장관은 1995년 8월1일 정치부 기자 대여섯 명과 저녁 술자리를 했다. 서 전 장관은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소통과 청와대, ‘블룸버그의 불펜’
소통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래서 ‘소통의 구조’를 어떻게 짜놓느냐가 중요하다. 형식이나 틀이 내용을 규정할 때가 많으니 그렇다.그런 면에서 언론사 편집국이나 보도국의 업무공간 구조는 ‘꽤 괜찮은 소통의 틀’이다. 개방된 넓은 공간에서 전체 기자들이 함께 일하는 구조이니, 부서나 직급이 달라도 오며가며 수시로 마주치게 된다. 잡담도 하고 즉석 업무 협의도 한다. 조율도 되고, 아이디어도 나온다. ‘벽 없는 소통’을 위해 몇몇 기업들도 이런 뉴스룸 구조를 벤치마킹하기도 했다.지난주 박근혜…
박근혜 코퍼러티즘과 언론인 특보
청와대가 특보단을 꾸려 언론인을 영입했다. 결코 반갑지 않다. 국정의 중추인 청와대에 검찰, 경찰, 언론, 정계의 엘리트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는 것이 왜 싫은가에 대해 설명해 보자. 우선 문고리 3인방, 십상시, 7인 모임이 뒤엉켜 있고 이를 해소하지 않겠다며 버티는 불통의 청와대에 언론인 특보가 들어가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것이 설득력도 의미도 없어 보인다. 이것이 첫째 이유다.두 번째는 박근혜 정권의 구조적 성격이다. 박근혜 정권은 악성 코퍼러티즘으로 가고 있다. 코퍼러티즘(Corporatism), 협동조합주의는 국가가 자본과 노
국제시장과 아메리칸 스나이퍼
영화 ‘국제시장’을 둘러싼 논란은 이제 잦아든 상태다. 대충 정리된 논쟁의 결과는 ‘이념으로 영화를 바라볼 필요는 없다’ 정도인 것 같다. 동의한다. 하지만 영화 국제시장은 애초부터 이념이 논란의 중심인 영화는 아니었다. 언뜻 정치성향이 다른 세대 간 대결로 비춰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중 하나였을 뿐, 영화의 내용 자체에 대한 논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제시장의 내용을 두고 벌이는 논쟁이라면 ‘역사를 적절하게 다루고 있는가’로 보는 것이 옳다. 영화의 설정 자체가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나열하는…
현실은 명명을 통해 구축된다
현실은 명명을 통해 인식되는 것이다. 우리는 객관적 실체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실체는 명명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표현하는 어휘가 몇 단어 안 되지만 에스키모인들은 수백 가지의 표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동일한 눈을 보면서 우리와 에스키모인들은 다른 실체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대중들이 서로 다른 경험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수없이 많은 의미화 투쟁이 이루어진다. 학생 인권 침해의 대표적인 사례인 체벌은 ‘사랑의 매’라는 이
정당해산 결정을 바라보는 시각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과 소속 국회의원의 자격상실 결정은 한마디로 이 사회의 법치주의의 수준을 보여준 사건이다. 347쪽에 달하는 결정문은 방대하긴 하지만 해산의 근거에 대한 논리와 사실근거는 빈약하다. 고심의 흔적은 묻어나지만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자주파 중심의 정당’이므로 위헌정당이라는 결론의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위 결론이 합리적이지도 않지만 위 결론을 이끌어내는 근거도 빈약하다. 일부 소속 정당원의 활동을 곧바로 정당의 활동으로 대체하는 논리적 비약은 처음부터 결론을 정해놓지 않고서는 이뤄지기 힘들다고 본다.더
언론은 과연 사슴을 사슴이라 불렀나
대학교수들은 12월에 ‘올해의 사자성어’를 뽑는데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선정됐다. 착잡했다. 지록위마는 사슴을 가리켜 사슴이라 부르지 않거나, 또는 사슴이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인데 올해 한국 정치가 그러했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 4월 세월호 참사나 11월 ‘비선 실세 국정논란’ 의혹 문건에서 밝혀져야 할 수많은 진실이 ‘법치주의’라는 명분으로 또는 ‘대통령의 발언’에 눌려 가려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2월 둘째 주부터 3주 연속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했다. 진나라 시황제를 모신 환관 조고는 진시황이 죽자…
소셜네트워크 세상과 ‘땅콩 회항’
요즘 미디어를 장식하고 있는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은 우리에게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사건이다. 이번 일의 전개 과정은 지금이 소셜네트워크 세상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땅콩 회항’이 가져온 파장은 컸다. 신문과 방송은 물론이고, 특히 인터넷상에서 더 컸다. 왜 대한항공과 조현아 전 부사장은 이런 ‘악몽’ 같은 일을 겪게 된 걸까. 원인을 생각해봤다. 미디어라는 측면으로 국한해서 보았을 때 무엇보다 대한항공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 세상이 도래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